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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7-21 (월) 11:3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90    
하나님의 사람입니까?(2) (고후 10:12-18)



어느 누구나 겸손이 좋은 덕목임을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덕목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그 본을 보이셨고,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겸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 마귀가 교만의 앞잡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어떤 모습이 겸손인지 혼동이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만한 모습이 무엇인지는 좀 알겠는데 말입니다. 그저 무작정 자기 자신을 비하하며 아무 것도 못하는 듯한 모습이 겸손인지, 자신이 오해를 받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아시니까 하면서 마냥 참는 것이 겸손인지 말입니다.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일에 참 하나님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우리 주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친밀하게, 가까이 교제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주님께 속한 사람으로, 주님의 종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사람, 잘 세워지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어떤 욕심 때문에 교회를 세우거나, 교회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 몸을 향한 열정이 있기에 형제, 자매들을 위하고, 돕고, 나뿐만 아니라 그들도 점점 믿음이 자라서 성숙해져 가도록 힘쓰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대로, 내 기질대로, 인간적인 사고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주장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삶 자체가 정직한, 진실하고 투명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떳떳한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은 겸손이 나타나는 사람인데, 진정한 겸손이 무엇인지 바울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 진정으로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12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을 대적하고, 고린도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거짓 선지자(교사)들은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칭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이 최고이며, 제일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사람들과는 함께 자기 자신을 자랑하며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헤아리는, 자화자찬하는 사람들이니 어떻게 감히 비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오히려 지혜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 18:11)라고 기도하는 바리새인의 모습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지 않았습니까(고후 11:30)?
여러분은 무엇을 자랑합니까? 자랑할 것이 그리 많습니까? 자랑한다는 것은 누구와 비교할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합니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비교해서 더 낫다고 자랑하는 것이 교만이요, 또한 자기를 비하시키면서 자학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그래서 둘째, 진정으로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눠주신 분량으로 감사하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13절)고 하였습니다. 바울과 달리 거짓 선지자(교사)들은 자기들 분량 밖의 자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도 않은 진리의 계시를 말하며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만 전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 복음의 진리를 받았을 때에 너무 좋았고 분명하던 것이 지속적으로 진리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탄, 마귀가 의심을 그 마음에 집어놓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 의심과 회의가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친절하게 진리를 가르쳐 주고, 지속적으로 돌봄으로 그런 의심과 회의로 말미암아 오히려 믿음의 진보가 나타나게 도와야 합니다. 자신이 아는 한도에서 아는 것은 안다고 하며, 모르는 것은 목사님에게 물어보자고 하면서 사랑으로 설명해 주면 그 분이 그 사랑과 친절 때문에 다시 진리를 붙들고, 이전보다 더 확실한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주장하며 자랑하는 것이 그들이지만,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분량 안에서 감사하며 진리를 전한다는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분량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 아버지의 뜻 안에서 순종했습니다. 예를 들면 십자가의 죽음이라든가, 재림의 날짜라든가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분량 안에서 감사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십니까? 알고 있는 것 외에는 모른다고 하면서, 자신에 대하여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아닌, 주제파악을 하면서 현재 모습 그대로 감사하며 자존감, 자긍심으로 일하십니까?

셋째, 진정으로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해 놓은 것에 대하여 자기 것으로 자랑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 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14-16절)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다른 사람이 복음을 전한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했고, 전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사역을 하고 있는 곳에 자신은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유는 그래야 복음이 효과적으로 더 많은 곳에 전파되기를 원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교사)들은 바울이 스스로 한계를 넘어 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린도에서 바울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참 진리의 확장을 방해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에 개척한 교회입니다. 남이 개척해 놓은 교회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만 고린도교회가 믿음의 진보가 있어서 그 주위 지역에 복음을 전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로마에까지 복음이 전달되기 원했습니다. 문제는 바울이 복음의 씨를 뿌려놓았던 곳에서 그들이 진리를 흐려놓고, 비진리로 교인들을 헷갈리게 하며 교회를 어렵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안에 많은 문제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이 해 놓은 것을 가지고, 남의 수고를 가지고 내가 인정을 받고, 칭찬을 들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나의 분량 한계를 넘어서 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분량을 잘 알고, 다른 사람의 분량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합니다.

마지막으로, 진정으로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은 오직 주님의 영광을 추구합니다. 오직 주님께로만 칭찬을 듣기 원합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17-18절)고 하였습니다. 이미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1:31)고 언급했듯이, 이는 아마도 바울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렙 9:23-24)는 말씀을 염두에 두고 명령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결코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하나님을 깨달아 알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탄, 마귀의 하수인들은 늘 이 세상에서의 명예와 권력과 부를 추구하기 때문에 자기 자랑을 많이 해야 합니다. 주님보다는 자기 자신이 드러나야 하고, 자기의 야망이 성취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그 야망의 성취 수단으로 믿는 것이지요. 그런 자들을 주님이 옳다고 인정하겠습니까? 아무리 세상적인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해서 자랑한다고 해도 주님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원하십니까? 주위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좀 인정해주고 칭찬도 해주고 높여주기 원하십니까? 그래서 자기 자랑하기에 급급하십니까? 아니면 나는 없고, 오직 우리 주님만이 높여지기를 원하십니까? 사람들의 칭찬이 아니라, 주님의 칭찬을 원하십니까?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가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무엇입니까? 어디쯤 와 있습니까? 무슨 문제에 부딪혀 있습니까? 뛰어 넘어야 할 장애는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역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합니까? 또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영역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넘어서기를 축원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말입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진정한 겸손의 모습을 나타낸다면 우리가 비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올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오늘날 많은 이민 교회들은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참 하나님의 사람들의 사역은 적어지고, 거짓 교사들의 사역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개인의 영광을 위하여, 야망을 위하여, 부귀영화를 위하여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다니는 것 같습니다. 사탄, 마귀의 앞잡이들이 판을 치고 교회를 허무는 듯합니다. 정말 진정으로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참으로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들이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로 재창조하신 모습을 가지고 더욱 성숙해가는,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각자에게 나누어주신 분량을 따라 최선을 다하기 원합니다. 믿음의 분량을 따라 최선을 다해 충성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의 진보를 허락하시면, 그 분량의 한계를 넘어서 복음의 진리가 더욱 넓게 전파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성취해 놓은 일을 빼앗거나, 내 것으로 만들지 않기 원합니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존중하기 원합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그의 성취에 대하여 박수를 칠 수 있기 바랍니다. 끝으로, 오직 우리를 통해 주님만 높여지기 원합니다. 주님만 자랑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옳다 인정하는, 주님께서 칭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분들은 원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게 됩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 14:18)고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점점 더 우리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기 원합니다.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하나님을 더욱 알기 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말입니다. 할렐루야!

김석균 찬양사역자의 ‘겸손’이라는 찬양입니다.
슬픔 속에서도 울지 않는 것, 억울해도 울지 않는 것,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도 걱정하지 않는 것,
사랑할 수 없는 사람조차도 사랑하며 품어 주는 것,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용서하여 주는 것.
어떠한 자기주장도 버리고, 오직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맡기며,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주가 강함을 보여줌이 진정한 겸손!
참을 수 없어도 화내지 않고 끝까지 인내 하는 것, 감사할 수 없는 그런 조건에서도 감사하며 사는 것,
칭찬이나 비난 가운데서도 침묵하며 살아가는 것, 말씀 순종하기 어려울지라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
어떠한 자기주장도 버리고, 오직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맡기며,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주가 강함을 보여줌이 진정한 겸손!
겸손은 겉사람이 드러나지 않고, 속사람이 드러나는 것,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바로 겸손한 사람.
어떠한 자기주장도 버리고, 오직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맡기며,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주가 강함을 보여줌이 진정한 겸손!

   우리의 삶에서 이런 모습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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