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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7-28 (월) 10:0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79    
정결하고 신실한 처녀입니까?(고후 11:1-6)



제게 ‘어떤 말 혹은 단어를 가장 싫어합니까?’ 혹은 ‘어떤 사람이 가장 상대하기 싫어요?’ 라고 물어 보시면, 저는 ‘배신(배반)’ 그리고 ‘배신자(배반자)’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가장 배신자의 대표가 되는 가롯 유다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지요.
반대로 가장 좋아하는 단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신실함(faithfulness)’ 혹은 ‘충성(loyalty)’ 이라고 답하겠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신실한 사람, 성실한 사람, 즉 충신을 좋아하지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덕목을 아주 강조합니다. 특히 어떤 ‘사람’에게 신실하고 충성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신실한 자, 충성된 자를 하나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사실 사람들은 죄성을 가진지라 정도 차이는 있어도 다 배신하고 배신당하고 삽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만 온전히 신실하시기에,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신 6:5; 막 12:30). 안타깝게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라운 능력으로 출애굽을 하게 하신 하나님을 결국 배신했습니다. 그토록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촉구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을 아주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후에 제자들과 3년을 함께 동거동락하며 사랑을 부으시고, 주옥 같은 말씀으로, 놀라운 기적으로 가르치셨지만 정작 예수님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다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다시 만나주시고,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한 후에는 목숨을 걸고 충성하여 거의 다 순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순교의 피로 말미암아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11장을 시작하면서 고린도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선지자(교사)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로 말미암아 진리로부터 자꾸 떠나려는 교인들에게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결코 자신은 거짓 선지자(교사)들과 비교하거나, 자랑하여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지만 한 마디 할 테니, 자신이 그렇게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는 것을 용납하라고 합니다(1절). 이유는 그들이 정결하지,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 충성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2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열심”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엄청 사랑하시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나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일 때 나타나는 ‘경건한 질투’를 뜻합니다. 어떤 분은 ‘무슨 하나님이 유치하게 질투하고 그러시나’ 생각하면서 이러한 하나님을 이해하기가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는 종종 질투하시는 하나님이 나타납니다(출 20:5; 34:14; 신 4:24; 5:9; 6:15; 수 24:19; 나 1:2; 겔 39:25). 그런데 사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열심, 질투는 특별한 사랑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을 말합니다. 아니 어떤 사람이 자기 아내를 유혹하려고 하는데 전혀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속한 그 백성을, 그렇게 사랑하는 백성을 다른 것이 빼앗으려고 하는데 분노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경건한 질투(열심)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무엇을 비교하여 죄성으로 말미암는 시기, 질투와는 너무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죄를 모르시는 하나님의 열심(질투)는 경건한 분노, 의의 분노인 것입니다. 자기의 사랑을 빼앗아 가는 사탄, 마귀에 대한 분노요, 그 하수인들에 대한 분노인 것입니다.
그 열심이, 그 분노가 바울에게도 있어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서신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혼(약혼)한 처녀가 신랑과 결혼하는 것을 빗대어, 믿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을 말하면서 처녀(virgin)로서 정결하고 신실해야 함을, 신랑되신 예수님께 충성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은 약 1년 전에 신랑이 신부될 처녀와 정혼(약혼)을 합니다. 이 1년 동안 결혼 준비를 하면서 신부될 처녀는 순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성관계를 가지면 결혼이 깨지는 것이었습니다. 결혼하기 전이라도 간음죄가 적용되어 돌에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정혼한 마리아가 동거하기도 전에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끊고자 했던 것입니다(마 1:19). 즉 정혼(약혼)을 한 순간부터 이미 그 남자를 남편으로 여기고, 그에게만 신실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만 충성해야 합니다. 그것이 결혼 준비였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다가올 천국에서의 혼인잔치를 말씀하신 것입니다(계 19:7-9). 이 땅에서의 삶은 그 혼인잔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정결하고도 신실한 처녀로서 말입니다.
하여튼 약 1년 정도 정혼(약혼) 기간이 지나면 혼인식을 하게 되는데, 그 때 신부의 아버지가 신랑에게 처녀 딸을 넘겨 줍니다. 아버지로서 처녀 딸을 정결하고도 신실하게 1년 정도 준비를 시켰다가 드디어 사위가 될 남편에게 넘겨 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이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말 번역에 “중매함이로다”라고 한 것이 바로 남편에게 넘겨 준다(present)는 뜻입니다. 자신이 고린도교회의 영적 아버지로서 그들이 예수님께 정결하고 신실하여 잘 준비를 하고 있다가 신랑 예수님에게 넘겨 드리기 원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이 거짓 선지자(교사)들의 유혹에 넘어가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분노하는 것입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3절)고 하였습니다. 태초의 에덴동산에서 첫 여자 하와(이브)를 뱀이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한 것 같이, 사탄 마귀가 거짓으로 속여서 그들의 마음이 타락할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몇 사람들이 처음 사도 바울로부터 들었던 복음의 진리에서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함(신실함)과 깨끗함(정결함)에서 부정으로, 배신하여 바울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 마귀의 하수인인 그들이 다른 예수를 전파하기 시작했고, 교인들이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4-5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맨 처음 우리말의 “만일(If)”로 번역된 헬라어의 더 정확한 번역은 “~ 때문에(Since)”라고 번역해야 정확한 의미가 전달됩니다. 즉 4-5절은 바울이 만약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하고 가정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를 말합니다.
“다른 예수”라 함은 신구약 성경에 계시된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비슷할지 모르지만 다른, 예를 들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지, 하나님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하면서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바울이 전한 복음의 진리는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영, 성령이 인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며(고전 12:3),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데(롬 8:15) 거짓 선지자(교사)들이 성령이 아닌 다른 영, 즉 악한 영의 영향을 받게 하여서 교회를 어렵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다른 복음을 용납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생겼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는다고 전하는 것을 그들이 용납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갈라디아교회에서도 나타났습니다(갈 1:6).
또 다른 예를 들면, 당시 헬라 철학이 대세로 인기를 끌고 있었던 때라 기독교도 철학으로 해석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성경의 로고스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지만(요 1:1,14), 헬라 철학에서는 로고스는 인격체가 아니라 삶의 기본적인 제1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18세기에 들어와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영향으로 성경을 이성주의로 비판했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실존주의 철학이 영향을 미쳐서 성경을 실존주의적으로 해석을 하다 보니 지성인들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지성적으로도 말이 되는 종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 기독교는 자유주의가 득세하게 되어 생명력을 잃게 되었고, 결국 대부분의 유럽의 교회들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목회자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교회 안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다른 예수를 말하고, 악한 영의 영향을 받아서 큰 소리치고, 다른 복음을, 비진리를 가르치거나 알리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단 사상이, 또는 자유주의 사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과감하게 징계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순수하고 깨끗한 진리의 말씀을 지켜가야 합니다. 신부가 순결을 잃으면 더 이상 신부가 아닙니다. 간음한 여자, 즉 간부가 됩니다. 그런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넘겨 드릴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이유 때문에 교회가 나뉘어 진다고 한다면 기꺼이 나뉘어야 합니다. 좋은 게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가 되어 한다는 명목 아래 그런 것들을 용납하면 함께 다 썩어 들어 갑니다. 교회가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열심으로, 의로운 분노, 거룩한 분노로 물리쳐야 합니다.
이어서 당시 고린도교회 거짓 선지자(교사)들은 바울의 사도성을 부인했고, 말도 잘 못한다고 비난했기에 바울이 자신을 변호합니다.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5-6절)고 하였습니다. 그들처럼 자기를 자랑하지 않았더니, 겸손했더니 돌아오는 것은 악평이었습니다. 여기 “지극히 큰 사도들”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12사도를 지칭했거나, 아니면 스스로 큰 사도라고 일컫는 거짓선지자들을 바울이 조롱하면서 지칭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동안 잘 참고 있었던 바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비록 비교하는 자신이 어리석게 보여도 변호하기 위하여서 말합니다. 자신이 그들과 비교해서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고, 연설을 잘하는 훈련을 받지 않아서 말은 잘 못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진리에 대한 지식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밀스러운 복음의 진리를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전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신랑이 언제 신부를 가장 좋아하고 행복을 느끼겠습니까? 신부가 신랑만을 사랑하고, 자신의 순결을 지키고, 신랑을 위하여 신실하게 살 때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때는 교회가, 성도들이 정결하고 신실하게 살 때입니다. 거룩함을 유지할 때입니다. 주님만을 사랑하며 충성할 때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진리, 참 복음에 헌신할 때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약혼한 처녀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이 가 있고, 더러운 정욕에 빠져있다면 신랑이 얼마나 분노하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잠시 후에 있을 천국 혼인잔치에 참여할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들입니다. 지금 그 혼인식을 위하여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혼인식의 절정은 신부의 등장입니다. 그런데 신부가 등장할 때 웨딩 드레스는 입었지만, 전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이 가 있어서 말과 행동이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헛소리를 하고, 부끄러운 행동을 한다면 결혼식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참석한 하객들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가 약혼을 한 것입니다. 주님의 프로포즈를 받고 ‘네’라고 응답할 때 반지를 껴 주셨습니다. 성령의 인침을 받았습니다. 이 약혼 반지는 이제 상대방에게 속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끝까지 주님께 속해 있다가, 때가 되어 주님 재림하시면 수많은 천군천사의 축하객들과 함께 신랑이신 주님과 혼인을 하게 됩니다. 그 때를 위하여 지금 준비를 잘 하십시오. 어쩌면 약혼을 하는 것보다 준비하는 시간이 더 어렵습니다. 약혼을 했다고 다 끝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의 진리를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아기가 태어났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닌 것처럼, 잘 먹어야 하고, 병에 걸리지 않게 예방주사도 맞고, 운동도 하면서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잘 자라고, 결혼 준비가 잘 되는 것입니다. 순결을 지키며, 신실한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다만 나는 주님께 속한 자라는 것을 늘 잊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우리 주님의 프로포즈를 거절하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우리 주님 같은 분 없습니다. 실수가 없으신 분입니다. 엄청 사랑하십니다.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인생을 새롭게 하십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이 후에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삽니다.
이미 주님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여러분! 저는 바울처럼 여러분들을 정결하고 신실한 처녀로 신랑되신 예수님께 넘겨 드리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발 사탄,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시고 주님 부르실 그 날까지 신앙의 정조를 지켜가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말씀에 헌신하십시오. 주님께 순결을 지키십시오. 진실하십시오. 신실하십시오. 충성하십시오. 다른 데 한 눈 팔지 마십시오. 신랑되신 주님께서 정말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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