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6,780,491
오늘방문 : 36778
어제방문 : 64875
전체글등록 : 3,905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8-04 (월) 04:0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69    
참 목자와 거짓 목자(고후 11:7-20)


사탄의 궤계와 그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부패한 인간의 모습은 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납니다. 특히 돈과 성(sex)과,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예술, 과학, 스포츠, 심지어 종교계에서도 그 타락상을 볼 수 있습니다. 조금만 영적 분별력이 있는 성도라면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다 거짓의 아비인 사탄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요 8:44). 하나님을 거역하고, 진리를 거스려 사는 불신자는 마귀의 올무에 빠져 희생양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소망은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에서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들이 교회를 다녀도 진리를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분별력이 없다는 것은 성경 말씀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린도교회 교인들처럼 쉽게 사탄의 궤계에 넘어가는 것입니다(고후 11:3). 사실 역사상 교회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힌 것은 무신론자나 회의론자, 박애주의자, 외부의 박해자들이라기 보다 분별력이 없는 교인들이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과 거짓 선지자(사도)들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참 목자와 거짓 목자가 무엇이 다른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참 목자는 겸손하지만, 거짓 목자는 교만합니다. 바울은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으로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7절)고 반문합니다. 당시 헬라 철학자들이나 유대주의자들 가운데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은 강의를 하고 나면 돈을 요구했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 유명한 교수(교사)들은 높은 사례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나서 돈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별 볼일 없는 교사로 취급하고 무시를 했습니다. 바울은 그저 거저 받은 복음이니 그들을 높여주고 자신은 낮추어서 아무런 돈을 요구하지 않고 전했는데, 그것이 죄냐고 반박하는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교회 사역에 필요한 비용을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모금을 한 것 가지고 강도질 한 것처럼 말했던 것입니다(8절). 그러나 바울은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9절)고 할 정도로 겸비하여 교인들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배려했던 바울이었습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사도)들은 자기들의 육체를 자랑할 것 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은 조금도 그런 의도가 없었으나, 하도 그들이 자랑을 하니 자신도 조금 어리석게 자랑한다고 하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오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17-18절)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도 자기들처럼 돈을 받고 복음을 전하기 원했지만, 바울은 기회가 있다면 똑같이 거저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사도)들은 그 기회를 끊어버려 교회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하여 스스로 대단한 사람들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습니다(12절). 그러나 우리는 모두 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죄인인 것을 깨닫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또한, 참 목자는 진리를 가지고 진리만을 전하지만, 거짓 목자는 속여 사탄의 교묘한 말을 합니다. 진리를 가장하지만 비진리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10절)고 하였습니다. 자기 속에는 진리가 있어서, 진리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방인의 사도로 그를 부르셔서 아주 유대적인 유대인들인12사도가 잘 감당 못하는 이방인 선교를 시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은 너무 높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아가야 지방” 은 고린도를 포함한 넓은 지역을 의미합니다. 이 이방 지역은 바울의 복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도록 주님께서 그에게 사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복음의 진리를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깁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명예도, 학력도, 권세도 아닙니다. 꼭 필요한 것은 자기보다 덜 똑똑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주의 사자들에게서 복음을 듣고, 겸손히 진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영적 분별력을 주십니다. 거짓인 비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혼동스럽고 답답해집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기쁘고, 평강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거짓 목자는 천사로 가장하여 속입니다. 속은 늑대인데 겉은 양의 가죽을 입었습니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13절)고 하였습니다. 사탄이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하여 보낸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교회에 들어와 교인들을 유혹하여 헷갈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진리가 없으며, 가짜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교묘하게 진짜처럼 가장하고 다가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속아 넘어갑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14-15절)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말씀은 사탄이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는 것입니다. 웬만해서는 구별이 잘 안됩니다. 예를 들면, 죄가 별 것 아니라고 속입니다. 죄는 누구나 짓는 것이 아니냐, 뭐 그렇게 부담을 갖느냐는 것입니다. 정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니까 억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라고 속입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그런 순간적인 즐거움에, 쾌락에 있다고 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그들의 결국은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 20:12하-14)고 하였습니다. 죽고 난 후에 영원히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참 목자에게는 사랑이 있으나, 거짓 목자는 학대(abuse)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11절)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진리의 말씀으로 책망하는 하는 것을 오해하고, 고린도교인들은 만약 자기들을 사랑한다면 언제나 친철하고 자기들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자기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심하게 꾸짖으니까 상처를 깊게 받고서는 거짓 선지자(사도)들 편에 동조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정말 고린도교인을 어린아이 다루듯 했습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고린도에서 사역을 할 때에 비용이 필요한데 그들이 너무 어려서 그런 것을 요구하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아서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헌금을 받을지언정 그들에게는 아무 요구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궁핍해도 신세를 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부모가 어린 자녀들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들이 굶더라도 어린아이들에게는 먹을 것을 구해서 먹이듯이 말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울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영적으로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변화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이교도들의 문화에 젖어 있는 사고방식들을 버려야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좀 자랐다고 생각해서 진리에 어긋난 말과 행동을 야단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은 어린아이가 아닌데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제는 스스로 서야 하고, 스스로 진리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기에 말입니다. 마치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시키듯이, 호주의 코알라가 새끼를 훈련시키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야단친다고 해서, 책망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그들에게 결코 아니라고 합니다. 자신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사도)들은 그들을 학대했습니다.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구나”(20절)라고 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사도)들은 처음에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잘해주어 호감을 산 후에는 그들을 종으로 삼고, 잡아 먹고, 뺨을 치고 학대를 하는데 어리석게도 그것을 용납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여기 “종을 삼는다”는 말은 노예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율법과 전통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들 사상의 노예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노예 상태에서 믿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결정할 것이 하나도 없고, 단지 시키는 것만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자유를 얻은 사람은 스스로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그 일이 옳고 그르냐를 분별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시간을 다 보내기도 합니다. 노예는 시키는 대로 무조건 하면 되지만, 자유인은 무엇을 할까 선택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노예 삼지 않으셨습니다. 자유를 주셨습니다. 물론 방종이 아닌 주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그저 그 은혜에 감사하여 스스로 종의 삶을 살 뿐입니다. 또한, “잡아 먹는다’는 말은 자기 욕심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인들을 위하는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자신의 야망 때문에 교인들을 희생시킵니다. 이용합니다. 그리고 “사로잡는다”는 말은 올무를 씌워서 자기를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참 목자는 스스로 일어서게 하지만, 거짓 목자는 주저 앉게 만듭니다. 자기가 아니면 아무 것도 못하게 고리를 매어 둡니다. 못 떠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친다”는 말은 무시하면서,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교만하다고 하면서 저주를 퍼붓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꼼짝없이 올무에 갇힌 자처럼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이단들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닙니까?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바울의 올바른 책망에는 그렇게 상처를 입으면서 서운해 하는데, 거짓 선지자(사도)들이 퍼붓는 저주에는 아무 불평도 하지 않고 겁을 내면서 받아들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배웠어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똑똑한 사람들이 이단에 빠집니까? 진리를 분별하는 자유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참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요 8:32). 그러므로 사람이 진리를 소홀히 하면, 우습게 알면 어떻게 됩니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올무에, 속임수에 넘어가서 자유를 빼앗기고, 종이 되어 먹히거나 뺨을 맞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잘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 5:14)고 하였습니다. 정말 영적유아기가 아니라면 여러분들에게 영적 분별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각을 사용하셔서 진리와 비진리를 구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 참 목자이며, 누가 거짓 목자인지를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의 목자로서 늘 두렵고 떨림으로 참 목자로서 목양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겸손히, 진리만을 가르치며, 사랑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작은 목자들이 되시는 구역장님들을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이 아니라, 겸손히 교인들을 섬기는 자들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생수의 강물, 생명수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입니다. 높은 데는 은혜가 마르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복음의 진리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서 광명의 천사들로 가장한 자들이 속이려 해도 넘어가지 않는 자들이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희생하는 참 사랑의 작은 목자들이기를 바랍니다. 자기 야망 때문에 이용하려고 하는 거짓 목자들의 모습이 없기를 바랍니다. 처음에는 호감을 사려고 잘 하다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며, 저주를 퍼붓는 자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아니 지도자들만 그래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다가오는 사탄의 궤계에 넘어가서도 안될뿐더러 여러분 모두가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우리 모두는 겸손한 자들이 되며, 진리를 잘 분별하여 늘 진리 편에 서고, 주님처럼 사랑하며 희생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44 수요설교 죄를 밝혀내는 하나님(수 7:10-18) 한태일 목사 2014-08-08 1840
643 주일설교 참 목자와 거짓 목자(고후 11:7-20) 한태일 목사 2014-08-04 1669
642 수요설교 실패를 통한 교훈(수 7:1-9) 한태일 목사 2014-07-31 1769
641 주일설교 정결하고 신실한 처녀입니까?(고후 11:1-6) 한태일 목사 2014-07-28 1805
640 수요설교 심판 중에 구원(수 6:15-27) 한태일 목사 2014-07-25 1678
639 주일설교 하나님의 사람입니까?(2) (고후 10:12-18) 한태일 목사 2014-07-21 1725
638 수요설교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마 24:45-51) 한태일 목사 2014-07-17 2040
637 주일설교 하나님의 사람입니까?(1) (고후 10:7-11) 한태일 목사 2014-07-14 1588
636 수요설교 하나님의 작전 지시(수 6:1-14) 한태일 목사 2014-07-10 1660
635 주일설교 하나님 나라의 군사는(고후 10:1-6) 한태일 목사 2014-07-07 1632
634 수요설교 여호와의 군대장관(수 5:10-15) 한태일 목사 2014-07-03 1670
633 주일설교 부요한 삶(고후 9:6-15) 한태일 목사 2014-06-30 1659
632 주일설교 준비하십니까?(고후 9:1-5) 한태일 목사 2014-06-23 1569
631 수요설교 할례의 참된 의미는(수 5:1-9) 한태일 목사 2014-06-19 1667
630 주일설교 아버지의 영적 리더십(잠 4:1-9) 한태일 목사 2014-06-16 1724
629 주일설교 성령이 오셨네(행 2:1-13) 한태일 목사 2014-06-09 1864
1,,,41424344454647484950,,,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