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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11-17 (월) 08:1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59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롬 1:16-17)



만약 교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복음, 즉 좋은 소식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아직 복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확실히 믿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결코 복음이 부끄러운 것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것이 되어야 합니다. 혹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에 대하여, 신앙생활에 대하여 굉장히 어렵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믿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추상적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복음이 아니라도 거의 모든 것을 믿고 살고 있습니다. 불신하거나 의심하는 것이 있지만 믿고 사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안 그러면 도저히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복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어떤 결단을 내리고 행동에 옮기느냐에 따라 믿음, 신앙생활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서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한 권(1-16장)의 내용을 줄여서 두 구절에 기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능력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체험했습니다. 자신도 주님을 만나 삶이 180도 바뀌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듣고, 믿어 죄 사함의 은혜를 체험하고, 죄의 권세와 온갖 악령들로부터 자유함을 체험하고 새롭게 변화를 받아 사는 사람들을 보았기에 너무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교우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바울 자신은 이 복음을 전하라고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들의 삶에 복음이 맺은 열매로 인해 감사하고 자신도 격려를 받았으며, 이제 그들에게로 가서 만나보고 진리를 더욱 확실히 가르치며 복음을 위하여 함께 동역 하면서, 로마에 있는 자기 동족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기 원했습니다(1-15절).
이유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16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들에게요, 또 헬라인을 비롯한 모든 이방인에게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du,namij, power)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능력이냐 하면, 믿는 사람이 과거에 지은 죄, 현재 짓고 있는 죄, 미래에 지을 죄까지 다 용서하실 수 있는 능력입니다. 죽음까지도 이기고 부활하게 하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능력입니다. 사람을 완전히 딴 사람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를 “구원(salvation, deliverance)”이라고 합니다. 좀더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구원이라고 하면 이생의 삶 가운데 큰 어려움에서 건짐을 받아 살게 된 것을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세월호가 침몰한 것처럼 그냥 두면 침몰하는 배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데 구조받게 되는 경우나, 치명적인 무서운 병에 걸려 도저히 살 가망이 없었는데 아주 훌륭한 의사를 만나서 살게 되는 경우나, 큰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완전히 망가지고 자신도 크게 다쳐서 차에서 빠져 나오지도 못하기에 그냥 두면 죽어버리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얼른 신고를 해서 소방서에서 구조대원들이 나아와 차를 잘라내고 그를 꺼내어 속히 병원으로 옮겨 사는 경우 등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그런 육체적인 구원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입니다. 즉 이 세상에서의 구원은 이생의 삶에서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것을 뜻합니다. 구조대나 의사가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와 육신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도 우리 인간들에게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하지만 육체의 생명도 중요한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죽은 후의 영원한 상태입니다.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의 살고 죽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고 난 후에도 살고, 또 죽는 둘째 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의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하였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리라”(계 20:14-15)고 하였습니다. 즉 이 육체의 생명이 다한 후에, 영원히 사느냐 아니면 둘째 사망으로 불못, 지옥에 가느냐는 것은 오직 죄 문제로 결정됩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영원한 죽음, 불못에 던지우나 죄 문제가 해결된 사람은 영원한 삶, 곧 영생이 주어집니다(마 25:46). 그런데 영생이라는 것이 그냥 그저 그렇게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존귀하고 행복한 최고의 삶와 영광스러운 삶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그렇게 죽은 후에 영광스러운 삶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적 삶에도 구원은 이미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현재 ‘이미(already)’ 받은 구원과 ‘아직은 아닌(not yet)’ 구원 사이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이미 구원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들은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점점 거룩해져 갑니다. 신자들의 노력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지만 조금씩 변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반드시 역사합니다. 죄를 미워하게 하며,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게 하며, 정말 예수님께서 그의 삶의 주인으로서 감독하시며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갑니다(빌 2:12). 이미 거듭난 믿음이 성화의 믿음을 거쳐 아직은 아니지만 훗날 있을 영광의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17절 내용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지 못한 불신자들은 죄를 지을 자유만 있지, 죄의 권세를 이길 자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자들은 얼마든지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삽니다. 비록 연약하여 때로는 질 경우가 있어도 말입니다. 이렇게 복음은 죄로 죽었던 인생을, 사탄 마귀의 종 노릇하던 인생을, 정욕에 빠져 완전히 폐인이 되었던 자를 되살아 나게 합니다. 회복하게 합니다. 끝장났던 인생을 다시 살게 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능력입니까?
이 복음의 능력이 믿는 자에게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공로를 쌓아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죄인이기에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내 자신의 모든 자랑과 공로를 버리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Savior)로, 주(Lord)로 믿는 것입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나의 모든 허물과 죄는 십자가의 주님에게로 넘어가고, 하나님의 의는 내게로 넘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내 노력과 공로가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믿으면 구원에 실패합니다. 그 좋은 예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유대교와 복음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고행을, 선행을 해야 한다는 천주교입니다.  
   
그러면, 왜 복음에는 그런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까? 17절에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말은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죄인들을 너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그 죄에 대한 심판을, 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만나는 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데, 원래 죄인들이었으나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전가되어서, 의인이라 칭함을 받게 된 성도들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완전한 의인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의인의 자격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불러주십니다. 하지만 죄성은 아직 남아 있기에 때로 혈기도 부리고, 거짓말도 하고, 싸우기도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믿고 살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새 사람이 되었기에 불신자와 달리 완전히 다르게 살아가게 됩니다. 삶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살아가는 목적이 다르게 되었습니다. 사고방식이 달라집니다. 전에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앞날을 전혀 예측할 수 없기에 철저하게 주님을 의지하고 살게 됩니다. 특히 사탄 마귀에 사로잡혀 사는 세상 사람들이 믿는 순간부터 우리를 미워하게 됩니다. 우리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게 됩니다. 그래도 우리는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의 미래를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놀라운 구원을 얻은 것도 믿음이고, 믿은 후에도 계속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리라"(17절하)는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합 2:4)을 인용한 것입니다. 당시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지를 못해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우선,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악이 극성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잊고 계시는 듯하여 하박국이 불평합니다(합 1:2-4). 그리고, 그 불평을 늘어놓았더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보다도 더 악한 민족인 바벨론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한다(합 1:5-11)고 하시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그래도 선민이 아니냐고 다시 하나님께 항변을 하였습니다(합 1:12-2:1).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응답하시기를, 의역을 하자면 "이제 너에게 무엇인가 보여주려고 하는데 다 받아 적어서 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여라. 나는 나의 의를 드러낼 것이다. 내가 결코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불의를 행하지는 않는다. 내 의가 들어날 때까지 의인인 너는 나를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현재 상황을 고치기 위해서 네가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너는 내가 기록하라고 한 것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합 2:2-4) 라고 말한 것을 사도 바울이 인용하여 로마에 있는 신자들에게 쓴 것입니다.
당시 로마는 네로 황제를 비롯한 악한 황제들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래 고통을 겪고 있는 로마 신자들이 하박국 시대 의인들처럼 혹시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하는 의아심을 가질 수도 있었기에, 그들도 혼란 가운데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좋은 소식이며, 약속한 하나님의 의가 이 복음을 통하여 나타났다. 로마 제국의 힘, 권세, 능력보다 하나님의 힘과 권세와 능력이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로마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복음의 능력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도 주위 환경과 상황을 보시면서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가 의심이 되십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모든 것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의를 입은 사람은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믿음이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 말을 종교개혁가 루터나 멜랑톤은 낮은 믿음에서 높은 믿음으로 이르게 한다고 해석하였고, 칼빈이나 베자는 단순히 복음을 받는 믿음에서 하나님의 의를 소유하는, 그 의를 입는 믿음으로 해석하였고, 어거스틴은 고백하는 믿음에서 하나님께 행동으로 복종하는 믿음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초적인 믿음에서 성장하는 믿음, 즉 믿음은 생명력이 있어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화의 믿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철저하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은 나의 머리털까지 세고 계시며,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시며, 주장하시며,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롬 8:28).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이유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의 구원, 거룩에 이르는 구원, 영광스러운 구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진지한 사람으로,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성경 66권을 다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이 믿음의 결과는 너무나 엄청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재물과 모든 지식과 모든 권력을 다 가진다 하여도 구원을 받지 못하면 그의 인생은 실패한 것이며 완전히 망친 삶입니다. 아니 훗날 둘째 사망에 이르게 되어 영원한 지옥 불못의 고통 속에 살아야 합니다. 구원 받는 것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닌데, 어쩌면 너무 쉽기 때문에, 아무 노력이 필요 없는 것이기에 사람들이 믿지 못합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자랑, 교만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거저 받은 것이라서 값싼 은혜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 구원이, 진정한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Freedom is not free!
혹시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서 아직도 이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지금 이 순간 다 내려 놓으시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마음의 문을 여셔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로 믿어 구원을 받으신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이미 하나님의 의가 전가된 의인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늘 감사하십시오. 이 놀라운 은혜를 잊고 마음에 감사가 사라지고, 불평과 불만이 나오는 것은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이며, 교만이 다시 싹터서 그렇습니다. 그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에서 더 나은 믿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매순간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순종하십시오. 열매를 맺고 사십시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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