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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12-05 (금) 01:22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670    
피난처 되시니(수 20:1-9)
이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게 되면 그에 대한 형벌로 붙잡혀 사형을 당하거나, 무기징역을 받아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갇혀 있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죽이지도 않았는데 누명을 뒤집어 쓰거나, 죽일 의도가 없었으나 실수로 즉 과실치사의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당하거나 무기징역을 받게 될 때에는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요즘에야 과학수사가 발달되어서 DNA 검사로 그런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만, 옛날에는 그런 억울한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여섯 군데 도피성을 지정하게 하셨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고의가 아닌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경우 재판을 받을 때까지 피의 복수를 당하지 않도록 피난처로 지정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사는 땅을 더럽혀서는 안되었습니다. “너희는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이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할 수 없느니라”(민 35:33)고 하셨기에, 반드시 살인자는 죽은 자의 피를 속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억울하게 사람이 피 흘리는 것도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도피성 제도를 제정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하나님은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내가 싫어하는 사람, 너무나 나와 다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생명이나 인격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의 생명과 인격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미운 감정이 생겨 분노가 일어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 미움이 더해지면 그 사람이 죽기를 원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요일 3:15상) 하였으며, 예수님께서도 형제가 미워서 분노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가 받는 심판을 받아 지옥 불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습니다(마 5:21-22). 그러니 누구를 미워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합니까? 그래서 욕(폭언)이나 폭력이 큰 죄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모세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택정하여 부지 중 오살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2-3절)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미 출애굽기 21장과 민수기 35장, 그리고 신명기 4장 등에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 ‘피의 보수자’란 자기 가족이나 친족 가운데 누가 죽임을 당하면 가장 가까운 자가 복수를 맹세하고 살인자를 찾아 죽이는 자를 말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그것이 합법적인 것이며, 피 흘린 더럽힌 땅을 속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고의가 아닌 실수로 살인하게 된 경우 가만히 있으면 안되고 속히 도피성으로 피해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성읍들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받아 성읍에 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하게 하고 피의 보수자가 그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 중에 그 이웃을 죽였음이라”(4-5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보면 도피하는 자가 무조건 도피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문에서 장로들에게 살인하게 된 경위를,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해야 했습니다. 고의가 아니더라도 살인한 자체는 죄였기에 지은 죄에 대한 고백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죄를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보호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 하더라도 죄는 죄이기에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억울함을 인정하시고 정상참작을 하여 그 사람에게 도피성에서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실수하였을 때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와 다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다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들으시고 누명도 벗겨주시고, 실수로 지은 죄도 용서하십니다. 할렐루야!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죽게 한 살인자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믿고 난 후에도 마음 속으로 많은 죄들을 지었습니다. 비록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도피성으로 가야 안전한 것입니다. 피난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피해야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개혁주의 성경학자들은 이 도피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예표(그림자)로 생각합니다. 도피성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 안에서는 안전합니다. 아무리 피의 보수자가 정죄하며 내놓으라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도피성으로 피한 자가 과거와 단절하여 완전히 새 사람으로 새 삶을 시작한 것처럼, 우리 모두는 과거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미 새 삶을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말과 행동을 절제해야 합니다. 과거 옛 사람의 모습으로, 정욕으로, 이기적으로 살던 그 모든 죄의 정죄를 예수님께서 다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늘 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한번 죽었던 사람들로서 이제 사는 것은 우리의 삶(life)이 우리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 계속 정욕대로, 욕심대로 살려고 한다면 계속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단지 사람의 눈만 속이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을 의식해야 합니다. 일단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어떤 유혹이나 시험이 와도 안전합니다. 두려워서 올무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죄에 빠지지 않게 자신을 지키는 것이,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생활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야 합니다.

“그 살인자가 회중의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가 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성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6절)고 하였습니다. 아니 재판을 받아서 고의가 아님이 밝혀져서 자기 집에 돌아가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어떻게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 살인자가 무죄로 석방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그 살인자의 생명을 대제사장의 생명과 같은 것으로, 하나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의 죄를 다 짊어지고 죽은 것으로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대제사장 중의 대제사장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모든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라고 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아무리 도피성 제도가 좋다 하더라도 그 성읍이 너무 멀리 있으면 살인자가 도망하다가 붙잡혀 죽을 수도 있으니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어느 곳에서나 쉽게 도망칠 수 있도록 배려를 하셨습니다. 요단 서편에 세 곳, 북쪽에 하나(게데스) 중간에 하나(세겜) 남쪽에 하나(헤브론)를 정하게 하였으며(7절), 요단 동편에도 마찬가지로 세 곳, 북쪽에 하나(골란) 중간에 하나(길르앗라못) 남쪽에 하나(베셀)를 정하게 하였습니다(8절). 그래서 도피자들이 도피성이 멀어서 도망하지 못하거나 강을 건너지 못해서 붙들려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는 사실 오늘날 교회의 역할과 같습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쉽게 올 수 있도록 가까이에 있어서 언제든지 와서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데 교회에 걸림돌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걸림돌이 되면 안됩니다.
아무런 걸림돌이 없어서 누구나 올 수 있는, 예수님이 머리가 되는 참된 교회는 이 세상 어떤 권세로부터 보호를 받습니다. 아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친히 세우시고, 다스리시니 어떤 악한 세력도 참된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마 18:18절하). 그러므로 우리가 머리 되신 주님만 붙들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올바른 믿음으로 살아갈 때 어떤 악한 세력이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비록 사탄, 마귀가 배고파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어도, 우리가 주님 안에 있는 한, 그의 몸인 교회 안에 있는 한 결코 삼킬 수 없습니다. 얼마든지 죄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도피성,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을, 우리 교회 안에 거하시는 주님을 확실히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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