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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12-08 (월) 11:1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73    
하나님께서 내어 버려두사(롬 1:24-32)



어쩌면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누군가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말입니다. 버림받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철없는 사람이거나, 양심이 아주 더럽혀진 사람일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경우에 슬퍼하며 마음 아파하게 되어 있습니다. 혹시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나 모르겠습니다. 있었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결코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랑으로 창조하신 인간들이 하나님을 모른다 하며, 더 나아가 적대 관계를 맺고 살면서 불의를 행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심판을 하십니다(롬 1:18-23). 그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 결과 중 하나를 오늘 본문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인간들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세 번씩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24절상),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26절상), 그리고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28절상)라고 하였습니다.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렵지 않습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정욕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신다니 말입니다. 부끄러운 욕심을 따라 자신과 상관없이 살도록 내버려 두신다니 말입니다. 아니 상실한 마음,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신다니 무섭지 않습니까?
좀 쉽게 이야기해 볼까요? 여러분이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데 그 나라 백성들이 제 마음대로, 욕심대로, 더럽혀진 양심대로 그냥 살게 내 버려두면 그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엉망진창이 되지 않겠습니까? 무법지대가 되어 버리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이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내어 버려두신다고 합니까? 지난 주일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자기들이 똑똑한 척 하지만 어리석게도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피조물에게 돌리며,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기 때문이었습니다(22-23절). 우상이 하나님 자리를 대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이었습니다(28절).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며 삽니다.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이나 인간이 만든 우상이 아니라면, 어떤 인간이 우상이 되거나,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New Age Movement 가 바로 인간 스스로 신(god)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신(god)이기에 자기를 섬기고 삽니다. 철저하게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 자신만 압니다. 자기가 최고입니다. 이러한 사탄의 영향을 받아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조차 나 중심으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아는,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신자인지 의심이 되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당시의 우상숭배자들처럼 그들의 더러운 정욕대로, 부끄러운 욕심에 끌려 살도록 내버리신 것입니다. 한 예가 성적인 타락이기에 24절과 26-27절에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변태적인 성욕인 동성애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24절하),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26절하-27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 남녀 관계의 순리를 역행하여 여자가 여자를 상대로 성관계를 갖게 되고, 남자가 남자를 상대로 성관계를 갖는 부끄러운 일이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로마 사회에서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성적 타락이 극에 달한, 가장 더러운 것이 바로 동성애입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율법을 통해 경고한 말씀입니다(레 18:22; 20:13).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그런 자들이 있다면 율법에 따라 즉시 죽임을 당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불과 유황으로 멸망당한 가장 큰 이유가 이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상숭배자들이 많았던 로마나 고린도에서는 우상을 섬기는 신전에서 이런 죄가 들끓었다고 합니다. 아니 어느 역사학자에 의하면 로마제국 초기의 황제 15명 가운데 14명이 동성애자였다는 자료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황제가 처와 첩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를 즐겼다는 것은 인간의 타락이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가 아닙니까? 그런데 어떤 이들은 동성애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유전자를 타고 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동정하는 무리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죄를 합리화하는 더욱 타락한 모습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 그런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청교도의 신앙으로 건국이 된 이 미국도 이제는 점점 동성애자를 인정하고 합법화하는 일들이 각 주마다 늘어가지 않습니까? 심지어 어느 자유주의 교단에서는 동성애자들 결혼 주례도 하게 하고, 아니 신부나 목회자들 가운데서도 자기도 동성애자라고 밝히고 있지 않습니까? 점점 이 미국도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있는 증거입니다.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받았느니라”(27절하)고 한 것처럼, 그 동안은 동성애자들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여 따돌림을 받기도 했고 또한 에이즈라는 질병을 받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런 일들이 그 죄에 대하여 상당한 보응을 받았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이 열쇠입니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28절상) 하였듯이 말입니다. 그릇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그 마음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존귀한 사람인지 아닌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자인지 아닌지가 결정됩니다. 어떤 그릇에 금이나 은이 담겨 있으면 금 그릇이나 은 그릇 되는 것이며, 밥이나 간장이 담겨 있으면 밥 그릇이나 간장 그릇이 됩니다. 즉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면 더러운 그릇이 되어서 하나님이 버릴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거부하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의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인간을 타락한 상태로, 상실한 상태로 그냥 내버려 두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이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29-31절)고 하였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대신에 악한 생각들이 가득하게 되고, 생각한 것들이 행동으로 옮길만한 상황이 되면 악한 행동이, 비도덕적이고 부도덕한 행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모든 불의”는 여기 열거한 모든 죄를 통틀어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에 모든 불의 곧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하다고 합니다. 추악(evil)은 악한 말과 행동을 하는 근본적인 악을 뜻하며, 탐욕(greed)은 터무니 없는 욕망, 가져서는 안될 것에 대한 욕심을 뜻하며, 악의(depravity)는 부패하고 타락한, 상실한 상태를 뜻합니다. 다음에 나오는 다섯 가지 죄악은 서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출발이 시기, 즉 질투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시기, 질투하면 분쟁이 일어나고, 미움이 생겨 살인이 되고, 사기를 치게 되며, 의도적으로 악독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수군수군하는(gossip) 자”나 “비방하는(slander) 자”는 비슷한데 남을 괴롭히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의 더 정확한 번역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 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니 미워할 수 밖에요. 그래서 능욕하거나 교만하거나 자기를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능욕한다(insolent)’는 뜻은 오만하고 무례한 것을 말합니다. “악을 도모하는 자”는 한 가지 악으로 만족하지 못하여 또 다른 악을 생각하고 저지르는 자를 말합니다. 또 “배약한 자”는 약속을 쉽게 깨뜨리는 자입니다. 무정한 자나 무자비한 자는 비슷한 의미로 인간의 기본적인 정마저 뿌리치는 냉정하고, 아주 거친 짐승 같은 자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부인이 아기를 낳으면 남편 발치에 갖다 두고 남편이 그 아기를 안으면 기르고, 그렇지 않으면 내다 버렸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무정한, 무자비한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죄를 짓지 않으려면, 불의를 행하지 않으려면 그 마음에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막는 힘이 있습니다. 죄성(sin nature)을 이기는 힘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서 옵니다. 우리가 병에 걸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몸에 그 병을 이기는 저항력이 없어서,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저항력이 떨어지는 데에는 몸에 좋지 않은 것을 먹는다든가 스트레스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항력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면 병을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은혜가 바로 이 저항력과 같은 것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으로 가득차 있다면 모든 불의나 죄를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으니 저항력이 떨어져서 온갖 죄라는 죄가 다 들어와 병에 걸린 채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실 때 육체만 지으신 것이 아니라 영혼을 그 안에 두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마음에 모시고 살면 모든 불의를 막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죄를 짓지 말아야지 생각한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는 것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무엇을 담느냐는 것입니다. 마음이 공허하다면 내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무서운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죄를 지으려고 할 때에 그냥 죄를 짓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아무 일이 안 생기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그렇게 미워하고 내 정욕을 마음대로 채우고 욕심대로 사는데도 불구하고 다 좋고 괜찮은 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증거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죄를 지으려고 하면 슬퍼하시며 나를 괴롭게 하십니다. 죄를 짓지 못하도록 막으십니다. 물론 그래도 연약하여 죄를 짓는 경우가 있기에 회개해야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령님의 세밀한 음성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나게 하셔서 대부분 막으십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과 다른 것은, 우리가 죄를 짓고 나면 엄청난 고통 중에 진실로 회개하게 하셔서 이전보다 나은 성숙한 자녀로 빚어 가십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을 보면 더 끔찍합니다.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32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양심이 있다면, 짐승과 달리 도덕성이 있다면 앞에 열거한 모든 불의, 죄들이 결코 좋지 않다고, 그렇게 살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도 그렇게 행하고, 그렇게 사는 자들도 옳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동성애가 정상적인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기들도 하고, 동성애자들을 옳다고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그 영혼이 죽을 병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병든 사람은 자기만 병든 것이 아니라, 병든 다른 사람조차 괜찮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에게 자신도 속고 있고, 다른 사람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위험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주위에 그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지도 않았고,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데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 무엇 하나 아쉬운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버림을 받은 자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성경은 믿지 않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요 3:18). 그런 분이 있다면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냥 두지 마십시오.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언제까지 입니까? 깨닫게 해 주세요. 그 마음에 하나님을, 우리 주님을 모시게 해주세요’라고 밤낮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부어지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혹시 이 자리에 앉아계신 분 가운데 그런 분이 있다면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도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음을 두드리시는 주님께 마음 문을 열고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영원히 주님과 먹고 마시는 교제가 끊이지 않게 됩니다. 죄에 대한 저항력을 강하게 하셔서 죄를 이기게 하십니다. 공허한 마음을, 죄악으로 가득찬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게 하십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미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여러분들, 나를 고아 같이 내어 버려두지 않으시고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십시오.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의 외침을 기억합니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 받았던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나 중심으로 살지 마시고, 하나님 중심으로 주님 사랑하며 사십시오. 한 피 받아 한 몸이룬 형제, 자매를 사랑하며 사십시오. 죄를 이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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