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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12-18 (목) 12:08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676    
공동체를 위하여 사는 복(수 22:1-20)
이 세상은 불공평한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부색으로, 빈부 격차로, 학력 차이로, 권력 차이로 차별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차별이 없습니다. 단지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로, 혹은 누가 더 믿음이 있느냐, 누가 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모형인 교회에서도 당연히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아니 차별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인간적인 차이가 있더라도 한 피 받아, 한 몸을 이룬 주님의 몸으로서 지체 하나 하나가 서로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런 공동체에 복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요단 동편에 이미 땅을 차지한 르우벤 지파,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의 반 지파가 모세와 한 약속에 따라 다른 지파 사람들과 함께 요단을 건너 요단강 서편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을 돕고, 이제 때가 되어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이미 자신들이 거할 땅을 차지했지만,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을 도와서 7년 넘게 함께 전쟁을 치른 것입니다(3절). 그리고 전쟁이 거의 끝나고 다른 지파들도 각각 땅을 분배 받게 되었을 때, 이들이 여호수아의 축복을 받고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자기 땅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7-9절).
   “이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4절)라고 하였습니다. 즉 그들이 공동체 전체를 위하여, 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회를 잘 선용하여 성실하게 감당했던 것입니다. 비록 전쟁 중에 자신의 친족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그 전쟁에 동참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함께 받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는 바로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머리로만 하는 것도 아니요, 입으로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나의 모든 것을 다하여 동참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의 건강, 시간, 물질, 몸, 심지어 목숨까지도 공동체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믿음이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고 말씀한 것입니다.
   사실 요단 동편 사람들이 7년 넘게 전쟁에 동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에 참여한 남자들이 없는 동안 그 아내들이나 자녀들을 누가 공격하면 어떻게 됩니까? 또 전쟁이 길어진다면 언제 자기 집에 돌아갈 줄 알겠습니까? 불안과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그런 불안과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겼던 것입니다. 미래의 일을 미리 당겨 불안해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움직일 때 하나님께서 다 지켜 주실 줄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 살면 앞날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할렐루야!

   여호수아는 요단 동편으로 떠나는 그들을 축복하면서 한 가지 당부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5절)! 이유는 이제 그들이 요단 동편 자신들의 땅으로 가게 되면 가나안 중심에서 멀어져 성막으로부터도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강조한 것이 모세의 명령, 율법을 지키며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모세가 명한 명령과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과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함께 병행하고 있는 것에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어적 표현으로 동일한 내용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 말 번역이 아주 잘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하나님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사랑하는 것은 곧 그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친근히, 가까이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것은 다 양보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일만큼은 양보하면 안됩니다. 이런 일에 게을러지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고 신앙생활에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좀 뒤떨어지는 것은 괜찮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복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큰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 가운데 그 한 예가 바로 청교도들의 미국 이민입니다. 사실 영국이나 화란의 청교도들은 당시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고 부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뒤떨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 말씀 그대로 믿고 지켜 행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때문에 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핍박이 너무 심했습니다. 그 핍박을 견디지 못하여 이 미 신대륙으로 이민을 온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이 신대륙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되었습니다. 풍토병과 미 Native Indians 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결국 잘 정착하여, 교회를 세우고, 성경을 가르치기 위한 학교들을 세워 청교도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말씀을 지켜 삶으로 말미암아 영적 부흥과 함께 이 지구상에서 가장 복을 많이 받게 된 미국을 건설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그 자취를 찾기 힘든 시대입니다만 말입니다.
   청교도의 후예들이 18세기 말에 Jonathan Edwards 의 영적 재각성의 부흥을 경험으로 그의 후손들이 우리나라에도 선교사로 들어와 그 신앙을 전수함으로 평양신학교에서 개혁주의 신학을 가르치고, 장대현교회와 산정현교회 등을 세워 일제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영적 부흥을 일으켰으며, 해방 후에 우리나라가 기적적인 축복을 받아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비록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지금은 정체 상태이거나 줄어든다고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현실이 어렵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가까이 하며, 말씀을 지켜 행하면 반드시 부흥을 체험하게 되고, 축복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요단 동편 사람들이 자기들 땅으로 돌아가는 도중 요단강을 건너면서 강 언덕에 큰 단을 쌓았습니다. 가나안 땅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단을 본뜬 것으로 훨씬 더 크게 세웠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자손들이 처음 요단 강을 건너면서 길갈에 열 두 돌을 세우고 기념한 것처럼, 그들도 다시 요단강을 건너 동편으로 가면서 그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념하며 단을 세운 것입니다. 좋은 의도로 세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큰 단을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가나안 땅 즉 요단 서편에 있던 사람들이 오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12절)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 대부분이 생각하기를 예배는 꼭 한 곳, 실로의 성막에서 드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단을 쌓는다는 것은 곧 우상을 숭배하는 제단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전에 모세가 살아있을 때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모압 여인들과 간음하는 바알 브올의 제사에 참여했다가 많은 사람이 염병 재앙으로 죽었고, 아직도 그 죄에서 사함을 받지 못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17-18절; 참고 민 25:1-3).
   이런 상황을 보면 같은 하나님 나라 공동체 안에서 서로 의사소통(Communication)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공동체 안에서 큰 전쟁이 일어날 뻔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대화 부족으로 말미암아 오해를 하여 분쟁이 생기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대화가 있어야 하고, 또 대화할 때에는 말하기 보다 먼저 듣기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청해야 합니다. 잘 들어주는 것이 오해를 푸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그래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너희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행히도 가나안 땅 백성들이 전쟁을 하기 전에 먼저 각 지파 족속 두령들과 함께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보내어 사실을 알아보도록 했습니다(13-14절). 비느하스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 브올에게 속아 음행에 빠졌을 때 모압 여인과 간음하던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의 배를 창으로 찔러 죽인 사람입니다(민 25:7-8). 그래서 백성들 사이에 퍼졌던 염병이 그쳤었습니다.
   하여튼 비느하스가 요단 동편 지파 사람들과 만나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들이 쌓은 단은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23절). 다만 처음 요단강을 건널 때 12돌을 취하여 기념비를 쌓은 것처럼, 그 후손들에게 그들의 분의(분깃)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증거의 단이라는 것이었습니다(25-27절, 34절). 그 말을 듣고 비느하스와 각 지파 족속 두령들은 좋게 여기며 기뻐하면서, 우리 중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알겠다고 간증합니다(31절). 왜냐하면 쓸데없이 동족끼리 전쟁을 할 뻔 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오해를 풀어주셔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가 하나됨을 지켜가고, 말씀과 은혜로 충만할 때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시험에 들면 아무리 세상 일이 잘 된다 하더라도 기쁨이 없게 됩니다. 사탄, 마귀만 좋아하게 됩니다. 사실 사탄의 주된 임무는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목사와 교인 사이를 갈라놓고, 교인들 사이를 갈라놓는 일입니다. 이 궤계를 물리치려면 우리는 자주 서로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귀담아 들어주어야 합니다. 오해를 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여야 합니다. 입으로만 해서는 안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 믿음이요, 참 사랑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참된 신앙인의 표시들이 많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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