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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5-01-12 (월) 12:0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81    
모범이 되는 교회(행 2:42-47)



지난 주일에 올해는 우리가 더욱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때도 잠깐 언급했지만, 오늘은 우리가 그렇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할 이유를 본문을 통해 알아보기 원합니다.
본문의 문맥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각 나라에서 예루살렘으로 오순절 절기를 지키러 왔다가,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며 의아에 하던 유대인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첫 설교를 하였습니다(14-40절). 성령 강림의 역사가 구약에 예언되어진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메시아임을, 그리스도와 주가 되심을 선포하자, 약 3000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41절). 흥미로운 것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제자가 되었다고 하지 않고, 그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성령은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통해 놀라운 부흥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교회라고 해서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모범이 되는 교회로,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모범이 되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입니까?

첫째, 가르침을 받는 교회,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는 교회입니다. 42절 처음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하였습니다. 즉 성령이 충만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교회입니다. 또 다시 강조합니다. 이유는 말씀을 통해 성령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의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살전 1:5절상)고 하였으며,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 3000명은 모두가 새롭게 믿은 신자들이었습니다. 과거 유대교에 속해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사도들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믿고, 또 생활해야 하는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주장이 제 각각이었습니다. 이제 막 예수님이 메시아인줄 깨달았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무엇인지, 교회가 무엇인지, 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시각도 바뀌어야 했습니다. 구약과 신약이 어떻게 연결이 되며, 또 그것이 실생활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배워야 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모여서 예배를 드리던, 어떤 성경공부 모임을 갖던, 구역 모임이던 그곳에 하나님의 살아있고 운동력있는 말씀의 가르침이 있는 교회가, 교인들이 말씀을 배우려고 하는 교회가 모범이 되는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과거에 무엇을 어떻게 믿었던지 상관없습니다. 정말 겸손히 성경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대 예배 한번 드리는 것 가지고는 잘 배울 수 없습니다. 주일에 약 30분 정도의 설교를 듣고 일주일 내내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없이 전혀 다른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진정한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2000여 년 교회사를 살펴보면 때로 아주 오랜 시간 교회가 능력을 잃고, 교인들이 영적으로 피폐해져 있었던 것은 말씀의 소중함을 모르고 다른 것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교회의 참된 부흥을 원한다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수요예배, 구역모임, 일대일 양육, 제자훈련 등 교회에서 성경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는 자세로 평생, 주님 만나는 그 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교제하는 교회입니다. 42절에 계속하여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3)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다른 성도들과 사귐, 교제를 가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한 아버지를 섬기고 사는 형제, 자매가 되었기에 말입니다. 이제 한 배를 타고 한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동지, 친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한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였고, 이제 그 사랑을 서로 나누는 교제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누구와 교제를 하고 싶어도 상대방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위선자들 같아서 만남을 꺼리고 사귀지 않으려고 합니다. 실망하게 되어 상처 받을까 싶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거의 교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내 마음에 들고, 내가 좋아하고 싶은 사람과만 교제한다면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합니다. 끼리끼리 동아리들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성도들은 우리가 다 죄인이며, 부족한 부분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불쌍히 여기며, 실수하면 서로 용서하고, 그 모습 그대로 용납하며, 서로 돕고 권면하여 보다 더 나은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부족을 자신이 채우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이 말하는 교제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커질수록 서로 잘 알 수 없고 사귐이 멀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소그룹, 혹은 구역모임에서만큼은 참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삶을 나누어야 합니다. 44-45절에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46절에는 순전한 마음으로 함께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역시 교제에는 먹는 음식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3000명이면 큰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누었습니다. 함께 물건을 사용하였습니다. 물론 그 당시 교인들은 정말 가난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였습니다. 나 자신만을 알던 이기적인 옛 사람이 없어지고, 이제는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가진 것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자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모범이 되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의 특징입니다. 이런 교제, 사귐, 나눔이 있습니다. 특히 살다가 겪는 어려움, 아픔을 나누면서 서로 위로와 격려가 있는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가, 구역 모임마다 이러한 사랑의 교제, 친밀한 사귐, 가진 것을 구체적으로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모이기를 힘써 예배하며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42절 하반절에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하였습니다. 여기 떡을 뗀다는 말은 예배 중의 성찬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합심하여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짜릿하게 감격할 때가 언제입니까? 기도 응답이 왔을 때가 아닙니까? 정말 하나님이 아주 가까이 계심을 느낄 때 아닙니까? 그러니 기도해야 합니다.
또, 46절에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는 매일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며, 찬송과 기도를 힘써 하였던 것입니다. 또 집에서도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46절하-47절상) 하였습니다. 성전에서든지, 집에서든지 모이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음으로 힘써 찬송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모임이 순수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모여 어떤 단체를 이루면 거기서 누가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 서로 경쟁하거나, 혹은 자기 밥 그릇을 챙기려고 전전긍긍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교인들은 그런데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데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모범이 되는 교회의 모습, 성령 충만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힘써 모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어떠합니까? 힘써 모이는 교회입니까? 여러분은 잘 모입니까? 교회에서 무슨 모임이 있다고 하면 관심을 가지고 모이셔야 합니다. 새벽기도에도 열심을 내야 합니다. 수요예배에도 힘써야 합니다. 특별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제직으로 임명 받으신 분들은 수요일 저녁에 그냥 집에서 TV 앞에서 비데오나 보면서, 아니면 인터넷이나 보면서 예배를 오지 않는다면 그 분은 정말 영적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영적으로 퇴보하는 것입니다. 아예 수요예배 시간은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으로 정해 놓고 신앙생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구역모임은 어떠합니까? 잘 모이십니까? 새로 시작하는 새해부터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잘 모이기를 바랍니다. 잘 모이는 교회가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감격스러운 예배와 뜨거운 기도가 넘치는 교회에 성령이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43절을 보십시오. 이러한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놀라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도 힘써 모여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마음을 같이하여 열심히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영육 간에 고통받는 자들이 치유를 받고, 회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변화되는 일들이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이 바뀌는 역사가 가장 큰 기적인 줄 믿습니다.

넷째, 전도(선교)하는 교회입니다. 47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였습니다. 성경 말씀의 가르침을 받고, 참된 교제를 하며, 뜨거운 감격의 예배와 힘써 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 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귀결로 여겨집니다만 하여튼 모범이 되는 교회는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방황하는 영혼은 주께로 인도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는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셨기에, 성령을 받은 사람이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 칭찬을 듣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이 궁금해 하며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그렇게 살지를 못하는데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기에, 무엇인가 다르게 사는가 하고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불치의 병, 암을 선고 받았는데도 전혀 흔들림이 없이 오히려 기쁨과 평강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주위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지 않겠습니까?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 안에 계신 주님에 대하여 알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성도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니, 당연히 날마다 믿는 자의 수가 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 안에서만 있고, 나가서 전하는 자가 없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전도하는 교회입니까? 여러분 때문에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우리 교회로 인도가 되어 함께 예배를 드리며,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무엇이 문제인지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가장 기본이 되는 성경 말씀을 배우는 일에 게을러서 그런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나누는 친밀한 교제가 부족해서 그런지, 잘 모이지 않을 뿐 아니라 뜨거운 감격적인 예배 생활, 힘써 기도하는 생활이 적어서 그런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런지 스스로 평가해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위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또 교회를 다니다가 낙심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여러분들을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이 되고 우리 교회로 인도가 되는 놀라운 일들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우리 교회는 선교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땅 끝까지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네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고 예수님 유언하셨습니다. 모든 족속에게 전도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여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우리들입니까?
우리 교회 시작은 제가 사례를 받기도 전에 제 동기 목사님들이 선교사로 나갔을 때 그들을 후원하면서 헌금을 사용했습니다. 밀알선교단을 개척하면서부터 도와 왔습니다. 그렇게 선교사와 선교단체들을 후원했을 때 하나님께서 부흥을 허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6-7년간 새성전 건축 때문에 선교 후원을 더욱 확대하지 못했고, 단기선교도 가지를 못했습니다. 이제 올해에는 다시 단기선교도 시작하고, 선교 후원도 확장해 나가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 모든 사역의 목적은 전도, 선교였습니다. 아니 성육신 하셔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영혼 구원이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눅 19:10)! 예수님도 예배드리셨고, 교제하셨습니다. 기도하셨습니다. 이유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전도, 선교 해야 합니다. 사실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궁극적인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 교제, 말씀 훈련을 받는 이유도 전도, 선교하기 위해서 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영국의 유명한 John Stott 목사님은 오늘 본문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였던 예루살렘 공동체는 첫째로 사도들과의 관계가 좋았다. 사도들의 권위에 복종하며 그들에게 말씀을 잘 배웠다. 둘째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서로 사랑하며 나누는 친밀한 교제가 있었다. 셋째로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았다. 성전에서든지 집에서든지 모이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쁨으로 찬송을 드리며 마음을 합하여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과, 이웃과의 관계도 좋았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였기 때문에 계속하여 교회는 부흥하였다. 이렇게 이기적이지 않고, 자기들만 끼리끼리 즐거워하지 않는 교회가 바로 성령충만한 교회다’ 라고 하였습니다. 혹자가 말하듯이 우리 기독교는 종교(religion)가 아니라 관계(relationship)라고 하였듯이, 성령충만한 교회를 관계로 풀고 있습니다. 공감이 가는 본문 해석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영적 지도자와의 관계,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 세상과의 관계가 어떠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들께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주님을 사랑하신다면, 그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도 쓰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려고 교회를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섬기고자 합니다. 그런 마음이 일어나신다면 열심히 성경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나누는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쓰며 예배에 온 마음을 쏟으며, 합심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교회를 너무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는 아주 단순합니다. 결국 말씀, 기도, 교제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가 왕성하면 저절로 전도하게 됩니다. 선교하게 됩니다. 아니 이 세 가지의 목적은 전도와 선교를 위함입니다.
정말 이런 모범적인 교회의 모습이 우리 교회에 나타나기를, 여러분에게 꼭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실천한다면 하나님께서 올해는 꼭 우리 교회를 배가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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