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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5-02-02 (월) 09:0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33    
마음에 할례를 받는 이면적 유대인(롬 2:17-29)



세상 사람들은 돈을 많이 갖고 있으면 자신의 미래는 보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공부를 많이 해서 박사학위가 몇 개씩 있거나, 높은 자리의 명예나 권력이 쥐고 있으면 그것이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심지어 종교를 하나쯤 갖고 있으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종교는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를 가리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기독교는 종교(religion)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어로도 기독교는 Christianity 라고 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Buddhism, 이슬람교는 Islamism, 유대교는 Judism, 유교는 Confucianism, 도교는 Taoism 등, 다 – ism 으로 하나의 사상이나 철학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사상과 철학이 종교가 되었는데 그런 것 중 하나를 믿으면 미래에 괜찮겠지 하며 종교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세상 역사를 좀 아는 사람들은, 아니 인생에 대하여 깊게 생각을 해 본 사람은 결코 그런 것들이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은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며,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서 안심했다가 더 깊은 연구가 나오게 되면 자신이 공부한 것이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높은 자리의 명예나 권력은 그야말로 한 순간입니다. 금방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종교가 인생의 미래를 보장해 줍니까? 결코 아닙니다. 종교를 공부해 보신 분들은 압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 인생의 영원한 미래를 보장해 줍니까?

오늘 본문에서 유대교의 유대인들에게 바울이 꾸짖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그들은 유대인이라는 명칭(title)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17절). ‘유대인(Jews)’ 이라는 말은 ‘유다(Judah)’에서 나온 것으로 그 단어의 뜻은 칭찬, 칭송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방인들과 달리 그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율법을 가졌으며, 할례를 받은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이 특권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을 의지하며, 갖고 있는 율법을 기대어 그 자체로 자신들의 미래는 보장이 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놀라운 특권을 주셨었습니다. 율법의 교훈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했고, 무엇이 더 선하고 존귀한 줄을 알게 했습니다(18절). 또한 진리의 말씀으로 이 세상의 소경의 길을 인도하며 어두움 속에 헤매는 자들에게 빛이 되게 하며, 어리석은 자와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었습니다(19-20절). 그렇게 믿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율법의 지식과 진리를 가지고 가르치는 그들이 자신 자신은 가르치지를 않았던 것입니다(21절). 십계명에 있는 대로 도둑질하지 말라고 선포하면서 자신이 도둑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할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도 가난한 자들, 빚진 자들, 과부와 고아를 등쳐 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금한 불공평한 추를 사용하여 고리대금, 즉 돈 장사로 악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또한 간음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이 간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22절상). 우상숭배자들과 어울려 이방신전에서 창녀들과 관계를 가졌던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우상을 가증히 여긴다는 그들이 우상의 물건을 도둑질 하는 것이었습니다(22절하). 돈이 될만한 우상을 훔쳐서 팔아 돈벌이 하는데 눈이 어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일들이 죄라는 것을 몰라서, 율법을 몰라서 그랬나요? 차라리 몰라서 그랬다면 동정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허나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잘 알고 있었던 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으로서 정의, 긍휼, 이웃 사랑등을 실천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을 행하고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들이 자랑하는 하나님을 오히려 욕되게 했다는 것입니다(23절). 바울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사 52:5)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았다고 합니다(24절). 오랫동안 하나님을 버리고 살았기에 참으셨던 하나님께서 남 유다를 바벨론 나라에 정복당하게 하셔서 많은 젊은이들이 포로로 끌려가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모욕을 당하였기에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졌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교인들이, 여러 목사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며, 그 이름을 욕 먹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도를 전하고, 가르친다고 하면서 자신이 그렇게 살지 않아서 말입니다. 순종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하셨습니다. 물론 오해하지 마십시오. 아버지 뜻대로 행해서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니고 진실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불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위선적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면 정말 회개하고 변화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살자는 우리가 아닙니까? 그런데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하나님 욕을 먹게 하고, 모독을 하게 한다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실망하시겠습니까?

유대인들의 또 하나 큰 잘못은 할례를 받았다는 것으로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구원 받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의 후손들은 난지 8일이 되는 날 남자 성기 끝을 베는 할례를 하도록 했습니다(창 17:10-14). 하나님께 속한 언약의 자손이라는 표시였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은 것으로만 다 된 것으로 여기고 율법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25절)고 하였습니다.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 한 할례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율법의 말씀을 지키면 할례를 받은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26절). 그러면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그들이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을 판단하지, 심판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27절). 마치 불신자들이 양심껏 살면서 믿는 자들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악한 행동을 하면 판단하고 심판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끝으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28-29절)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겉으로 유대인이라고 해서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체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선택 받은 민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면적으로(inwardly), 즉 속 사람이 유대인이어야 정말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이는 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신다는 말씀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진정한 할례는 육체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 받은 모세가 이미 오래 전에 한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굳게 하지 말라”(신 10:15)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는 목을 굳게 하는 교만함에 대조적으로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레미아 선지자도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느니라”(렘 4:4)고 하였습니다. 즉 마음에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을 행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마음에 할례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이 그 백성들에게 일반적으로 임하지 않고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들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온 후 신약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함으로 믿는 자들이 그 심령에, 마음에 할례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9절에서 마음에 할례를 행한다는 뜻을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즉, 율법이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인을 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으로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심령이 변화를 받아야 참된 하나님 나라의 선택된 백성, 그의 자녀가 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고 칭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속 사람을 보고 칭찬하신다고 합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름이 주는 의미가 그렇다고 해서, 육체에 할례를 받았다는 것으로 칭찬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람들이나 인정할지 모르나 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속 사람이 진실로 회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나고, 성령으로 새로 태어난, 사고 방식이 완전히 바뀐 사람을 칭찬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예수님의 팔복 설교에서 첫 번째 복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 임이요”(마 5:3)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가난한 자’의 헬라어 원어의 뜻은 파산 당한(bankrupt) 자라는 의미입니다. 완전히 망가진, 그래서 그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를 순수히 받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심령이 그렇게 파산 당하여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는 상태가 된 사람이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날 마음의 할례를 받은 이면적 유대인들입니까? 심령에 하나님의 영으로 인침을 받았습니까?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영원한 미래는 확실히 보장되어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주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여러분이 주인의 명령을 따라 사는 종의 삶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비록 때로는 연약하여 실수하더라도 진실로 회개하며 돌이키는 모습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참된 종처럼 나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데 불러주시고, 자녀 삼아주심에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당시 유대인들처럼 주어진 Title 로 인하여 특권 의식을 가지고 교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목사, 장로, 권사, 집사 혹은 무슨 회장, 사장 등 명칭으로 인하여 미래가 보장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 명칭으로 불리워 진다고 해서 교만해져 있지는 않습니까? 특권이 주어지는 만큼 책임도 엄청나게 큰 것을 알고 계십니까?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는 적당히 하면서, 잘 감당하지 않으면서 특권을 내세우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혹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고 자만하지는 않습니까? 아니 심지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으며, 그 말씀을 누구에게 가르친다고 하면서 나 자신에게는 가르치지 않고 있는 위선자는 아닌지요? 도둑질 하지 말라고 하면서 나는 나라 세금을 떼어 먹는 도둑이 아닌지? 간음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남의 여자에게 눈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상숭배 하지 말라고 하면서 나는 하나님보다 그 어떤 것을 더 사랑하면서 온 마음을 거기에 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속 사람이, 속 마음이 중요합니다. 나의 죄된 마음을 찢어 버리고 심령이 변화를 받아서, 늘 새로워져서 정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주님 영광 위하여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분들은 이 일이 가능합니다. 성령께서 도우셔서 정말 진실된 신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비록 지금 완전하지 않더라도, 공사 중이라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계속 공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삶을 개혁하고 사는 것입니다.
신자의 소명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의 형상을 되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처음 의도대로 사는 것입니다. 진실한 신자로 사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겸손히 말씀을 순종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위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감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속 사람이, 심령이 늘 새로워 지기를 축원합니다. 정말 하나님께 칭찬을 듣는 참된 신자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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