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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5-04-04 (토) 23:57
분 류 절기설교
ㆍ조회: 1703    
십자가에 못 박힌 왕(마 27:27-44)
[정사기념예배]

성경 66권의 내용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진리들입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는 크게 두드러진 중요한 진리와 덜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 종말 같은 진리들이 바로 기독교로 하여금 기독교가 되게 하는 독특하고 현저한 진리입니다. 이러한 두드러진 진리는 곧 성경 전체의 구원 역사를 타고 흐르는 커다란 맥을 형성합니다. 이 같은 성경의 맥을 붙잡지 않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 전체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저와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는 이 십자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15년 성 금요일(Good Friday)를 맞아 주권자이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질 당하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온갖 모욕과 조롱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내용을 살펴보며 은혜나누기 원합니다.
헬라 철학자였던 Cicero(B.C. 106-43)는 십자가 처형을 가리켜 “가장 잔혹하고 수치스러운 형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민족우월주의의 로마 사람들에게는 십자가는 가장 모욕적인 표현, 상징이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에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유기(遺棄), 혹은 저주로 신명기 21:22-23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 역사상 수많은 신자들은 십자가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영광으로 여깁니다. 이유는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상) 하신 것처럼,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신, 자유 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기 때문입니다.

고난주간 금요일 아침에 로마 법정에서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에게 십자가 사형 언도를 내리자,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고 조롱을 합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29절하)하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얼굴에 침을 뱉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내리칩니다(30절). 그리고 다시 자신의 옷으로 바꾸어 입힌 후에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갑니다.
바로 그 때에 그 동안 받은 고통으로 더 이상 십자가를 지기에 너무 힘들어 하시니 로마 군병이 옆에 가던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그 십자가를 지도록 합니다(32절). 구레네(Cyrene)는 북 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 근처의 시골 도시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사실 먼데서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현장에서 얼떨결에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마가에 의하면 그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라고 합니다(막 15:21). 아마 이 두 아들이 사도행전 19:33절에 나타난 알렉산더와 로마서 16:13절에 루포라고 한다면, 이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간 구레네는 나중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받아 온 가족을 구원에 이르도록 한 자로 생각됩니다. 억지로라도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은혜요, 축복임을 가르쳐 주는 사건으로 생각됩니다.

결국 예수님은 해골이라는 뜻을 가진 골고다 산에 이르게 되고, 로마 군병들이 당시 마취제로 사용하던 쓸개 탄 포도주로 십자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하게 하려고 마시게 하려하지만 예수님은 거절합니다(34절). 맑은 정신에 온전히 십자가를 감당하시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는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어 가졌다고 합니다(35절). 또한 바라바와 같은 죄로 사형 언도를 받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살인) 강도 둘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한 편 강도는 죽기 전에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는 회개와 함께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더욱 실망이 되는 것은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39-40절)고 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호산나’ 찬양하며 예수님을 환영했던 그들이었습니다. 아니 그 이 전에도 정말 예수님께 사랑을 받으며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던 그들이 아니었습니까? 예수님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몰려들어 그 말씀을 들으며 은혜를 받았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주님을 모욕하며 비방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탄이 하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41-43절) 하면서, 예수님을 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시고 나자 사탄이 시험하실 때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나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마 4:6)와 같은 내용이 아닙니까? 만약 예수님께서 그 때에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가지신 능력으로 십자가에서 내려 오셨다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저주가,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심한 모욕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십자가를 감당합니다.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예언되어진 말씀을 성취하시면서 우리에게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은 누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한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이 십자가 사건 앞에 우리는 다시 한번 잠시 모든 일과 잡념을 멈추고,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당하신 가장 큰 일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그 죄들에 대한 징벌을, 심판을 우리가 그대로 다 받는다고 한다면 아찔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 그 자비와 긍휼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아들을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런 수치와 모욕과 채찍에 맞으심과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갈대로 채찍질을 당하면서 피흘리시고, 십자가 위에서 6시간을 매달려 천천히 죽어가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그런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이 믿어집니까? 그렇다면 정말 은혜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성경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주제가 바로 이 십자가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진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고 하였습니다. 또한 아마 십자가 사건에 대한 가장 위대한 성경 구절이 여러분도 잘 아시는 이사야 53:5-6절이라고 여겨집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이 십자가 진리를 믿지 못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사랑하는 여러분!
California 에 있는 Grace Community Church의 John MacArthur 목사님은 본문을 해석하시면서 정말 인간들의 악함을 잘 나타내 주는 사건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 군병들, 그리고 살인 강도로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자, 지나가는 자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과 같은 유대종교 지도자들 모두가 얼마나 예수님께 사악하게 대했는 가를 살펴 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를 입은 한 편 강도를 보고, 또 나중에 변화 받았다고 생각되는 구레네 사람 시몬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000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사도행전의 기사를 생각해 보면(행 2:37-41), 아니 더 나아가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종교 지도자들이었던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들도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순종했다는 것을 보면(행 6:7), 그리고 그 이후 수많은 하나님 백성들을 보면, 온 세상의 어느 누구라도,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어떤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도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믿음으로 주께 나오면 죄 사함을 얻고 구원, 영생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는 학식이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들도 있어서 먹고 입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고통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사상이나, 철학을 구하기도 하고, 어떤 종교에 귀의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복잡한 문제를 아예 외면하기 위하여 더 열심히 세상적인 일에 몰두하거나 쾌락적인 일에, 술이나 마약, sex, 도박 등에 자신을 내어 던지기도 합니다.
이 모든 인생의 몸부림은 자신을 어떻게 하면, 죄로 말미암아 허무하게 되어 버린 인생의 문제로부터 자기를 건질 수 있을까 하는 영혼의 몸부림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채워질 수 없는 영혼의 빈 잔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해결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순간 내 자신의 노력이 아무 쓸모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동안 왜곡된 방법으로 자신을 구원하려고 애쓰던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영원의 문제를 도피해 보려고 하던 그릇된 생각들을 그만두게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에 이러한 자신의 헛된 추구와 노력들이 한낱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래서 세상적으로 내 세울 수 있는 내 자신의 모든 것(족보, 학벌, 명예)을 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한 것입니다(빌 3:7-10).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놓여 있는 관계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아직은 육체 가운데 산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지만 여전히 우리는 거룩한 삶을 방해하는 죄의 요소들과 더불어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교도 신학자 John Owen 은 “죄와 더불어 싸울 때 우리는 죄를 미워하는 격렬한 감정으로 투쟁하듯이 심한 적대감을 가지고 그것을 물리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의 영혼은 활기를 얻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십자가의 능력을 현재적으로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만왕의 왕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바로 이 십자가이기를 축원합니다. 십자가 신앙, 내세 신앙으로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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