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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5-04-20 (월) 06:4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58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서(롬 6:1-11)


많은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자신들에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을 잘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에서 실패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정에서, 하나님 나라 공동체 안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힘들어 하다가 심지어 관계를 저버리고 떠나기까지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후반부(12절 이하)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우리는 더 이상 죄가, 사망이 우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의가 우리를 주장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진리를 첫 사람 아담의 범죄와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대조하여 설명했습니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5:20-21)고 하였습니다. 사실 6장부터 8장까지는 이 진리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여러분들이 주위를 기울여야 할 동사가 둘이 있는데 바로 3절, 6절, 9절에 나오는 ‘알다(know)’라는 단어와 ‘여기다(consider)’ 입니다. 믿는 우리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깨닫고 있어야 할 진리와 그렇게 여겨야 할 진리입니다. 믿고 난 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후 5:17)는 의미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하며, 이미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를 주어졌다고 여기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사도 바울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하니, 반율법주의자들이 ‘그럼 그 은혜를 더하기 위하여 죄를 더 짓자’고 하고 바울과 논쟁을 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리를 제대로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1절) 라고 수사학적인 질문으로 되묻습니다. 여기 “죄에 거한다”라는 뜻은 계속 죄를 짓는다, 죄를 끊지 못한다, 혹은 회개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은혜를 더 받으려고 계속 죄를 짓느냐?’ 는 것입니다. 대답은 말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2절) 라고 말입니다. 여기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과거동사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미 과거에 죄에 대해 죽었다는 말입니다.
   이 뜻을 잘 설명하기 위하여 바울은 세례의 진정한 의미를 강조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3절)! 세례의 의미를 반드시 알고 있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례는 처음 회심하여 성령세례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물 세례는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성도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인을 치는 예식입니다. 하지만 세례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님과 영적으로 연합하는 것인데, 그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처럼 우리의 옛 사람도 죽었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예수님이 못 박힌 그 자리에 있는 것이며, 거기서 단지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에서 우리 옛 사람이 함께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살을 찢기면서, 피와 물을 쏟으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결국 죽습니다. 즉 죽으신 주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나는 의식이 있고, 숨을 쉬지만 나의 옛 사람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고, 장사 지내어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런데 그 옛 사람의 죽음으로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소유한 새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주님의 부활과 연합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4절)!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주님을 무덤에서 부활시키심으로, 주님과 연합한 우리도 그렇게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주님과 연합한 자가 되었다면 옛 사람은 이미 죽었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처럼 우리도 새 생명으로 부활하였기에(5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의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6-7절) 하였습니다. 여기 “옛 사람” 이란 우리 몸에 아직 남아있는 죄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믿기 전에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던 자신을 말합니다. 아담 안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던 ‘나’입니다. 죄의 노예, 사망의 노예였던 ‘나’를 가리킵니다. 바로 그 옛 ‘나’, 자아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욕대로 살던 나의 옛 자아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장사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내가 내 자아를 죽인다는 말과 다릅니다. 나를 내려놓는다는 말과 다릅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자꾸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옛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지금 그 옛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주님께서 옛 사람을 죽여 주셨습니다. 그 옛 사람의 ‘나’는 이제 없습니다. 이것을 바로 알고, 깨닫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말입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사람은 죄로부터 죽은 자들이 되었기에, 자유하게 되었기에 더 이상 죄의 종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죽음이라는 것은 모든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립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부자관계에서도, 어떤 대인관계에서도, 법적인 관계에서도 어느 한 쪽이 죽으면 살아 있는 자는 그 죽은 자로부터 완전히 자유하게 됩니다. 만약 남편이 죽었다면 아내는 남편을 위한 어떤 의무도 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빚을 많이 졌어도 채무자가 죽어 버리면 돈을 갚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중죄를 졌어도 범죄인이 죽어버리면 법관이 어떻게 죽은 사람을 재판하여 벌을 줍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죽어버렸기에 죄로부터 자유 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좀 분명히 알고 죄에 대하여 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미 죽었는데 왜 산 것처럼 대항하느냐는 말입니다. 누가 시체를 건드린다고 해서 시체가 일어나 화를 내는 것 보았습니까? 더 이상 죄의 권세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자꾸 도로 그 죄의 권세 아래 들어가려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어쩌면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지, 진정한 회심이 없었는지 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니면 내가 이미 회심도 했고, 성령세례도 받아서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해서인지, 기억하지 않아서인지 좀 확실히 해야 합니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또 반복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8-9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의 더 정확한 번역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라고 해야 합니다. 문맥상 “만일”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If 가 아니라 Since 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주님과 연합함으로 함께 죽었다가, 함께 산다는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으니 당연히 사망이 주님을 주장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여기서도 “죽었으면” 동사는 과거형이요, “산다”, “주장한다” 는 현재형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회심하는 순간, 성령세례를 받는 순간 이미 옛 사람은 죽었었다는 말입니다. 죄는 더 이상 주인 역할을 못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살게 되어 주님의 은혜가, 생명이 우리를 주장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의 죽으심이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이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10-11절)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여긴다’ 라는 동사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원어의 뜻이 ‘그렇게 생각하다, 간주하다, 깨닫다, 혹은 신용하다’ 입니다. 마치 내 은행 구좌에 백만 불의 돈이 있다면, 그렇게 여기고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왜 있는데도 없다고 생각을 하고 궁색하게 사느냐는 뜻입니다. 이는 말 장난도 아니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이고, 진리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진리를 그렇게 여기고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종 죄에 패하고 맙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물론 어떤 사람은 ‘나는 아직도 습관적으로 짓고 있는 죄가 있는데 어떻게 옛 사람이 죽었고, 새 사람으로서 죄로부터 자유 하게 되었다는 말인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왜 그렇죠? 그 사람은 자꾸 옛 사람의 자아를 의식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옛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우리가 믿을 때, 성령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나의 옛 사람이 죽은 것을 똑바로 알고, 깨닫고, 믿고, 완전히 그렇게 여겨야 합니다.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회심하고 성령세례를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연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마치 신랑과 신부가 혼인하여 하나가 되듯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연합하여 한 몸이 되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디든지 함께 갑니다. 언제나 함께 합니다. 이것이 믿는 순간에 실제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사실 이건 엄청난 변화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믿지 않던 때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진리를 모르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렇게 여기지 못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런 성도는 매일 영적 전쟁에서 패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니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제발 분명히 알고, 기억하고, 그렇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내가 누구인가?’를 자꾸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실패하고 맙니다.
   내가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어,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살았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 분명한 사실,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렇게 여기면 얼마나 큰 위로와 확신이 드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죄에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깜빡 잊고, 연약하여 실수로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즉시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죄 속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의식 속에 우리 공동체를 섬기며, 세워간다면 우리 교회가 정말 이 시대가 요구하는 모델이 될 것입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연합하였기에 서로에게 주님의 은혜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과 연합한 성도들이, 주님의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회복이 되면, 교회도 주님 원하시는 모습으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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