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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5-06-01 (월) 10:0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66    
율법으로부터 자유하였으니(롬 7:1-6)


어떤 것에 묶여져 보지 못한 사람은 자유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무엇에 노예가 되어 있던 사람이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 하게 되었을 때의 감동, 기쁨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꼭 술이나 담배, 마약, 도박 혹은 Sex 등 육체적으로만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도 어떤 올무에 걸렸다가 풀렸을 때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이미 풀려나 자유 하게 되었는데 불구하고, 무지하여 깨닫지 못하고,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음입니다. 안타깝게도 더 이상 얽매일 필요가 없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이런 자들을 향한 안타까운 심정으로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교우들 가운데 아직도 율법에 얽매어 있는 자들을 향하여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미 6장에서 예수님과 하나가 된 우리 성도들은 이미 죄에 대하여 죽었고, 의에 대하여 살았다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믿기 전의 옛모습, 그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진리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새사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약 한 달 전에 6장 강해에서 설명해 드렸지만 여러분이 이 진리를 얼마나 바로 깨달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진리입니다만, 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와 동일한 진리를 설명합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4)는 말씀을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 법은 율법을 가리킨다고 하였습니다. 믿는 자들을 주관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1절) 라고 다시 반복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옛사람, 육체를 지배하는 것이기에 이미 옛사람이, 육체가 죽었다면 더 이상 주관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법치국가인 미국에서는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철저하게 그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두려워 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당시 로마는 법이 지배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누구보다 법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개의 차별적인 법 체계가 있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들에게 적용되는 시민법과 로마 시민권이 없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만민법이 있었습니다. 즉 로마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 차별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로마 시민법의 적용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과 복음도 적용되는 범위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율법 아래서 그 적용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 즉 하나님 은혜 아래 적용을 받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시내산에서 주신 법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자손들은 누구든지 태어나면서 8일만에 할례를 받으면서 조상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얻었고, 그 자격을 계속 유지하려면 율법을 지켜야 했습니다. 만약 어기면 그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은 자격을 얻는 것보다 자격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깨닫게 하는 몽학선생이었던 것입니다(갈 3:24-25). 그래서 모세 이후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으로 말미암아 그의 후손 가운데 메시아가 등장하여 새 언약을 맺게 되어 율법을 지키거나, 안 지키는 것과 상관 없이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들은 다 하나님의 백성이, 자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이제 더 이상 율법에 매여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 교훈을 결혼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메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 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2-3절)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남자와 여자가 결혼예식에서 서약을 합니다. 죽는 날까지 서로 사랑하며 믿고 살되 정조를 지키겠다고 말입니다. 이 서약으로 부부는 하나님 앞에서 서로에게 매이게 됩니다. 남편이던 아내던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합니다. 비록 갈등이 있고, 논쟁이 있어도, 잘못을 범해도 부부는 한 몸으로서 끝까지 가야 합니다. 그런데, 결혼한 남녀가 다른 남자나 여자와 관계를 맺으면 음부가 되는 것입니다. 엄청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는 상황이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나 아내가 죽는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자유 하게 됩니다. 더 이상 죽은 남편과 맺은 서약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재혼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즉 죽음은 둘 사이 관계를 끊어 놓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4절상). 사실 율법은 우리에게 버거운 상대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 때문에 그 많은 율법을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아야 합니다. 사탄, 마귀가 정죄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편에서 죽어야만 자유 합니다. 그런데 율법은 죽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를 다 충족시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이 죽은 우리가 그 속박에서 자유하도록 말입니다. 율법이 더 이상 우리를 정죄할 수 없고 다스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율법의 올무에서 벗어났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율법에서 자유 하게 된 우리는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습니까? 성경은 답하기를,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4절하)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결혼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하여 죽음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신 예수님에게 우리가 갔다고 합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 연합을 했다, 영적으로 결혼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순간 우리의 모든 과거가 깨끗하게 됩니다. 아무리 주홍같이 붉을 지라도, 먹물처럼 시커멓더라도 하얗게 씻어주시고 과거의 수많은 죄를 이제는 모른다 하십니다. 그래서 사탄, 마귀가 우리를 더 이상 정죄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해서, 뭐 좀 잘난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한, 부패한 자들이었습니다. 마귀에게 붙들려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의 품에 안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 좋은 소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은혜를 베풀어 주신 이유는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기 열매는 죄 가운데 육신으로 살던 때의 모습과는, 사망의 열매와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로다”(5-6절)고 하였습니다.
이 전에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강압적으로 해라, 하지 마라고 윽박지르던 남편, 율법으로부터 자유 하여 이제는 새 신랑, 즉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멋진 인생을 살면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학대 받고 구박 받던 나 자신이 아니라 겸손과 온유의 주님의 순결한 신부가 된 것입니다. 참 사랑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선한 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사는 것입니다. 주님 위하여 온전히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몸을 거룩한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결코 율법에서 자유 하게 되었다고 방종하며 죄를 함부로 지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구별되게 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알기에 말입니다.
6절의 “의문의 묵은 것”이란 유대인들이 모세오경에서 만들어 낸 율법의 613가지 규례를 말합니다. 그들은 이 613개 규례를 지키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거기에 매여 종살이를 한 것입니다. 마치 과거의 우리 민족의 조상들은 샤머니즘으로 말미암아 귀신에 매여 사느라고 고생하여 무당들이 판치고 살았듯이 유대인들은 율법에 매여 사느라고 고생을 했습니다. 미신을 믿어서 이사할 때도, 결혼할 때도 늘 점치는 사람들에게 물었던 우리 조상들이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들은 더 이상 율법에 매이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영의 새로운 것, 즉 지난 주일 말씀드린 우리에게 허락하신 성령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에 새겨진 새로운 성령의 법으로 인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하여 거룩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지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23) 등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물론 우리가 주님과 동행해야만 합니다. 주님께 붙어 있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요 15:1-2)고 하셨고, 이어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하셨습니다. 당연하지요. 아내가 남편과 관계를 맺고 늘 동행해야 마땅하지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열매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아직도 오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분명히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는데, 이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 그 멍에를 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아직도 진리의 복음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냥 피상적으로,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다면 깨닫기 어렵습니다. 그 올무에서 씨름하면서 고통을 당해본 사람만이 해방된 기쁨을 아는 것입니다. 아주 못된주인에게, 남편에게 엄청난 학대를 받으며 고통을 당해본 사람만이 그 주인이, 남편이 죽고 나서 더 이상 자기에게 그런 남편이 없어진 것에 대하여 자유의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어떻게 자신의 주위가 변했는지 깨닫지 못하면 계속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불행하게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복음을 믿는 분이라면, 성령을 받은 분이라면 더 이상 자신을 정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과거로 죄로 인해 괴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지워졌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는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남았을 뿐입니다. 이 자체가 큰 축복입니다. 이제부터는 무슨 일을 해도 억지로 강요 받아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자연스럽게 정말 사랑하는 분을 위하여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시면서 열매를 맺으시면 됩니다. 그런 동일한 맥락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도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로 우리의 행위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은 것인데(엡 2:8-9),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앞날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면서, 주님 안에서 주님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면 됩니다. 이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평생토록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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