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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5-07-06 (월) 06:4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52    
성령의 인도를 받는 다는 것은(롬 8:12-17)


대부분의 한국교회 신자들은 죄를 짓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며 신앙생활 해왔습니다. 즉 우리들의 마음은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고 경건하게 사느냐' 보다는 '죄를 짓고 회개하여 용서받고, 고치고 살아야지'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실수와 실패, 불순종, 죄 앞에 무력함 등을 당연시하고 삽니다. 그래서 신앙인의 삶이 늘 ‘패배감’에 젖어 있거나 그냥 어떻게 '견디어 보자' 정도로 소극적이며 부정적입니다. 그저 눈물만 그칠 날이 없습니다. 삶에서 '승리감'이라든가 '기쁨'은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실 '복음', '좋은 소식'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렇게 불행하게 살라고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평안하게, 기쁘고 즐겁게 살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데살전 5:16)고 하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들은 죄, 사망으로부터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받은 것으로 압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심으로 죄인들을 향한 구속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성화(sanctification)는 어떠합니까? 누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까? 의롭게 살도록 합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노력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고 하였고,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데살전 5:23-24)고 하였습니다. 즉 여러분이 '성화' 되어져 가는 것도, 거룩하게 변화하여 가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하십니까?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그렇게 마음껏 역사하시도록 하기 위하여, 거룩한 삶을 위하여 여러분들이 꼭 알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이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꼭 알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예수님을 진실로 영접하신 분, 예수님이 구세주로 믿어 지시는 분들은 모두 성령을 받았습니다(롬 8:9; 고전 12:3). 물론 성령의 인침을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내려놓아야 할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에 "우리는 빚진 자로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본문 서두에 "그러므로"라고 하신 것은 8장 1-11절 전체를 의미하는데 한마디로 생명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는 것, 심판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이 되어서 더 이상 죄의 종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성령으로 의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과 평안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빚이,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셔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드시는 일을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서 하시는데 적어도 우리가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12절에서 '빚'이라고 바울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빚진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12-13절)고 합니다. 즉 우리 안에 성령이 주어졌는데 육신대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닌데 다시 옛 사람처럼 육신대로 산다면 사망과 같은 불행한 삶을 또다시 경험하는 것입니다. 내적인 불안, 걱정, 적대감, 역겨움, 이기심, 죄책감 등이 여러분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경고하시는데도 계속하면 그 때는 주위환경을 통하여 돌아오도록 하십니다. 재정적인 어려움, 중병, 가정 문제, 대인관계의 문제 등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육신대로 죄 가운데 살면 주님께서 그의 생명까지도 데려 갈 수 있습니다(고전 11:31-32). 마치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경고한 말씀,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무서운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습니다. 헌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절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럼 무슨 말이니까? 그것은 정말 성령을 받아,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육신대로 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로서 반드시 성령의 인도, 안내를 받아 육신의 행실을 죽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4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인도함을 받는다"는 원어의 의미는 강제적으로 끌어간다는 뜻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억지로, 강제적으로 육신으로 사는 길에서 돌이키게 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인도할 만큼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간섭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들이 삶의 운전대를 성령님께 맡기고 산다면 정말 여러분 삶 속에 기쁨과 행복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이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사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사람의 삶이야말로 더 이상 부러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할 때에 우리는 악한 영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15절)고 하였습니다. 16절에는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진리가 엄청난 축복입니다. 로마 사회 당시 양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습니다. 황제들이나 귀족들 중에 아들이 없을 때 다른 사람의 아들을 양자로 삼았습니다. 심지어 노예 가운데서 마음에 드는 똑똑한 사람이 있으면 양자를 삼았습니다. 그러면 이 양자는 그 아버지의 모든 부와 지위를 물려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노예 가운데 로마 황제의 양자가 되어 나중에 황제가 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무서워하는 종, 노예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노예들은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하며, 눈치를 보아야 하며 두려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자의 영, 즉 성령의 인침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맏아들이며 우리는 다 예수님의 형제, 자매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향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부르시던 것이었습니다. 이는 어리고 순진한 아이들이 아버지를 향해 부르는 것입니다. 무슨 눈치를 보거나, 체면을 차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좋아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아버지를 향해 부르는 것이 아바(아빠)입니다. 너무도 친밀한 아버지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거워하면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아빠라 부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우리들에게 임할 축복이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상속자로서 그와 함께 영광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17절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였지요. 우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로마 황제에 비교하겠습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을 지으셨고,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모든 것들까지 다 가지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됩니다. 그리하여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요 17:22상)라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릴 때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말입니다.
물론 이 땅에서는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처럼 영광을 받기 위하여 우리에게 고난이 있다고 합니다. 고난이 없이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고 하였고, 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벧전 5:10)고 하였습니다. 즉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에 고난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승리의 기쁨도 있습니다. 영광을 맛보는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사랑의 빚을 어떻게 갚습니까?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갚을 빚이 있는데 바로 허락하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사십니까? 오늘도 성령님께서 나를 만들어 가심을 깨닫고 협조하십니까? 아니면 방해하고 사십니까? 육신의 욕심에 나를 내어 맡기십니까? 아니면 성령의 가르침에 나 자신을 내어 맡기십니까? 구체적으로, 우선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고정되어 있습니까? 육신을 좇는 이 땅에 것에 있습니까? 성령을 좇는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까? 사탄 마귀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까? 성령께서 여러분 마음을 강권적으로 주장하심을 따라 사십니까?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행실은 육신대로 나오는 말과 행실입니까? 아니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말과 행실입니까? 육신에 의한 말과 행실은 주위를 망칩니다. 해를 끼칩니다. 사탄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의한 말과 행실은 주위를 환하게 합니다. 어두움을 비추는 빛처럼 말입니다.
절대로 성도의 삶은 행복한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의 삶은 즐거운 것입니다. 거기에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고난도 때때로 다가옵니다. 그래도 이겨나가면서 그의 삶에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며 변화하여 갑니다. 나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육신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잘 받을 수 있을까요? 첫째, 우리가 이 육신 장막을 완전히 벗어 버릴 때까지는 죄성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바울도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 7:21) 고 이미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도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24)라고 늘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경험하는 것이지요. 적을 알아야 적을 이긴다는 명언이 있듯이,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큰 것을 오늘 말씀 드렸습니다. 더욱 조심하기 위함이지요. 사탄은 늘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하려고 하니까요. 둘째, 여러분의 마음을 늘 하나님께 고정시키십시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시 57:7) 라고 하였습니다. 바울도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 3:10)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주님을 알기에 온 마음을 다 쏟았다는 말씀입니다. 즉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는 사람은 늘 하나님께 예배를, 찬송을 드립니다. 항상 하나님께 마음이 가 있어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밖에 없지요.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고 하였습니다. 그냥 성경을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묵상하는 것입니다. 암송하면서 되새기는 것입니다.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기 쉽습니다. 넷째, 기도를 열심히 하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고 하였습니다. 사탄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는 기도를 열심히 합니다.
이러한 생활로 우리 모두는 늘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변화를 받아, 점점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가며, 비록 고난이 있더라도 승리와 기쁨을 맛보는, 하늘의 영광을 맛보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유혹이 있을 때에 여러분이 육신대로 죄에 거하든지, 하나님께 순종하여 성령의 강권적인 인도를 받는지,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도, 그 어떤 행실도 말입니다.  
내가 누군지 늘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아무런 거리낌이, 어떤 두려움도 없습니다. 고독할 때에도, 슬플 때에도, 아플 때에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만왕의 왕이신, 천지의 주재자이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 큰 사랑을 받고, 그 품 안에서 자유함, 평안함, 기쁨이 항상 있다는 것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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