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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5-07-13 (월) 05:0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75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롬 8:18-25)



여러분들은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합니까? 아니 여러분 자신에게 되어지는 일들이 좋은 일보다는 별로 좋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이 생기기에, 계속 힘들고 어려운 일을 계속 만나고 있기에 원망하지는 않아도 낙심하면서, 하나님은 왜 나에게 여러 가지 축복을 하지 않고 힘들게만 하지 하면서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믿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받아들이기 힘드시겠지만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의를 추구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는 우리 성도들이 여러 가지 고난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그의 서신 서두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고 하였습니다. 너무나 역설적인 명령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아니 어떻게 여러 가지 시험, 시련을 만나는데 그것을 기쁘게 여긴다는 말입니까?  
지난 주일에 말씀 드렸습니다. 비록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게 되지만, 이 땅에서는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처럼 영광을 받기 위하여 우리에게 고난이 있다고 했습니다. 2000여 년 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이 세상은 그 이후 계속해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핍박합니다. 세상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 마귀는 하나님 나라를 대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싫어합니다. 괴롭힙니다. 정말 우리 주위에서는 믿음 때문에 식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직장에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물질적인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결혼을 못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욕을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가 현재 당하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18절)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몸이 영원히 죽지 않을 영광의 몸으로 변하여 주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 것과 비교하면 지금 당하는 고난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클수록 주님 만날 날을 고대하게 됩니다. 간절히 기다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영광의 시간을 우리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피조물도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것도 탄식을 하면서 말입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19-22절)라고 하였습니다.
즉 썩어져 가는 온 세상이 기다리는 것은 아름답고 순수한 그리스도의 신부의 모습, 곧 영광스러운 하나님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 피조물도 썩어져 가며, 점점 좋지 않게 되어 가는 것은 인간의 타락 때문이었습니다. 인간과 함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창 3:18). 그런데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저주로부터 해방되기 원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온 천지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 가운데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시간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탄식하며 고통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 “탄식한다(groan)”는 말과 함께 쓰인 “고통한다(pains in the childbirth)”은 NIV 영어 번역에도 나타나듯이 원어에 의하면 해산하는 산모가 힘들어 하며 소리지르는 것을 뜻합니다. 곁에서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고통을 겪으며 참아내느라고 한숨짓지만, 조금만 참으면 새 생명을 본다는 큰 소망 가운데 어쩌면 기뻐서 소리를 지른다고 해석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 영광의 시간을 탄식하며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 가운데 사는 우리 신부들이 딴 짓하고 있으면 안 되겠지요. 곧 혼인잔치를 크게 할텐데 말입니다. 자기 정욕에나 욕망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이면 피조물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이 자연이, 피조물들이 우리에게 소리지르는 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찬송하며 소리를 지르는 백성들을 책망하라고 하니까,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눅 19:40절하)고 하셨습니다. 때로 사람들이 잘못하면 피조물들이 소리를 지를 수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꾸짖으며 탄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혼인잔치의 주인공인 우리가 부끄럽게 살면 주위에서 야단을 칠 것입니다. 도대체 신부가 뭐 하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모든 하객들이 아름다운 신부를 보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이 아니고, 자랑스런 하나님의 아들들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 욕심을 따라 돌아다니고 있다면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답답해 할 것입니다.  

그런데 피조물만 탄식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도 탄식하며 고통 속에 그 날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23절)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자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받은 구원을 말합니다. 성령의 인침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내시고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처음 열매라고 한 것을 보면 다음 열매가 있어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양자의 영을 받은 우리가 실제로 양자가 되는 것, 우리 몸의 구속, 완전히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는 것, 영화(glorification)을 말합니다. 이미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11절)고 하신 말씀입니다. 죽을 몸을 살리실 그 시간을 우리가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과 함께 그 때는 실제 왕 노릇을 하게 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2:5하)고 하였습니다. 그 시간이 언제입니까? 주님 재림하시는 때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을까요? 오늘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지금 당하는 그 어려움을 앞으로 나타날 놀라운 영광과 비교하십시오. 상대가 안 됩니다. 이 세상 영광은 짧고 길지 않기에 별로 그렇게 소망할 것이 못 됩니다. 올림픽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이나 기타 모든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이 승리를 위하여 각고의 훈련을 합니다. 그래서 경기에서 메달을 따거나 상을 받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동안 고생하면서 투자한, 지옥 훈련을 하느라고 보낸 긴 시간들에 비하면 그 상은 별로 큰 것이 아닐 것입니다. 또 그 상이나 명예, 돈도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지고 맙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기억합니까? 1년도 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날, 우리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하는 날, 우리 주님과 함께 누릴 영광은 그런 세상적인 영광과는 도저히 비교가 안 되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고난을 그 영광의 소망을 가지고 참으면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24-25절)고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소망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주어질,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며 잘 참고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하였습니다. 이어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6-17)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은 결코 길지 않습니다. 일시적입니다.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 끝은 찬란한 영광입니다. 영원한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맙시다. 포기하지 맙시다. 확실한 약속을 붙들고, 소망 가운데 참고 인내합시다. 잠시 잠깐 후면 우리 모두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죄를 모르는 영광스러운 새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병을 모르는, 고통을 모르는 몸으로 말입니다. 그 날이 얼마나 좋으면 심지어 온 피조물들도 탄식하며 그 날을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비록 부패하고 타락한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때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이, 짜증스러운 일이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쉽게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내면서 옆에 있는 다른 사람까지 힘들게 하지 맙시다. 우리 앞에 다가올 영광을 바라보십시오. 우리 예수님께서도 잘 참으신 이유가 잠시 후에 임할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았느니라”(히 12:2)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모든 믿음의 선배들이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하였어도 믿음으로 잘 참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란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였으니”(히 11:36-40절상) 하였습니다.
물론 오늘날 제 3세계나 모슬렘 권의 나라들, 그리고 북한 등을 제외하고는 이런 심한 핍박을 받고 사는 성도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씀 드렸듯이 이 편한 미국 땅에서도 믿음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아니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진짜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 없겠습니까? 사탄 마귀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계속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어떨 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힘들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성령을 받은 순간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다스리는 새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 삶의 동력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바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입니다. 우리의 몸도 영광스러운 몸으로 바뀔 뿐만 아니라, 온 세상 피조물들도 새로 바뀌는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이 약속의 말씀을 확실히 붙드시고 소망 가운데 오늘의 어려움을 잘 참고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그 날을 고대하며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자주 부르던 찬양이 생각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 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여러분 모두의 신앙 고백이 되는 찬양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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