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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01-11 (월) 06:1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88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우리는 작년 2015년을 보내고 새해 2016년을 맞이하는 송구영신예배에서 신명기 1:11절 말씀을 붙들고 ‘하늘 문을 여셔서 현재보다 천 배의 복을 받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신년 첫 주일에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는 약속을 붙들고 우리에게 올 한해에도 풍성한 은혜가 있을 줄 믿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늘 문이 열려서 현재보다 천 배의 복을 받으려면, 풍성한 은혜를 얻으려면 무엇보다도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유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영혼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고 하였습니다. 생령(living soul)이 되었기에 사람의 영혼은 죽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각 사람의 영이 누구의 영향을, 지배를 받느냐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악한 영의 종이냐, 하나님의 영 성령의 종이냐는 것입니다(롬 6:16).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성령)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모든 성도들 안에 보혜사 성령께서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것입니다(고전 3:16; 6:19; 12:3). 그래서 모든 성도는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엡 1:13). 성령의 인치심 받는 때가 바로 우리의 영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악령의 종이었다가 성령의, 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전 2:12)고 하였습니다. 이 성령님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성령님이 구원의 보증이 되시며 영원한 안전을 확증하는 것입니다(고후 5:5).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롬 8:16)과 우리의 기도와 간구가 효과적이 되도록 우리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해 주시며(롬 8:26) 우리의 삶 가운데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해 주십니다(갈 5:22-23).
   그런데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성령의 인침으로 이 모든 약속들을 주장할 수는 있어도, 성령이 충만을 받기 전에는 그 약속의 성취를 맛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충만의 뜻을 살펴봅시다.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전에 먼저 성령충만이 아닌 것을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첫째, 성령충만이라는 것이 성도들에게 갑자기 나타나는 환상적이고 이상한 경험, 소위 말하는 뜨거운 신비한 체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 고유하게 나타나는 일시적인 성령의 특별한 역사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현상의 계속이 성령충만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후에 어떤 영적인 더 높은 경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그와 정반대로 단순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자신 육신의 노력일지 모릅니다. 셋째, 성령충만은 성령세례를 받아 성령이 내주하는 것, 성령을 소유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앞서 보았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는 순간 성령께서는 성도와 함께 하시며, 인치시며,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하였습니다. 즉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졌어도 그 안에 성령이 있는 것입니다. 넷째, 성령이 점차적으로 채워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얼만큼 많이 소유하느냐는 정도 차이를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실 때에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만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많이 주고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동일하게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 3:34)고 하였습니다. 문제는 충만하신 성령이 온전히 역사하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주느냐 입니다. 그래서 한량없이 주시는 성령을 받고 있느냐, 아니면 거절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충만의 참 뜻이 무엇입니까?
   본문에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는 "충만을 받으라(be filled; plhrou/sqe)"는 문법적으로 원형동사 plhro,w 의 2인칭 복수 현재 수동 명령형입니다. 그러니까 직역을 하자면 '너희는 계속하여 채워지도록 해라(being kept filled)' 는 말입니다. 복수로 쓰였으니까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특별한 몇 몇 사람들에게만 성령충만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고 현재형으로 쓰였으니까 계속적으로 매 순간 충만한 상태에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즉 과거에 충만했었던 것을 의지하거나, 앞으로 충만해질 것이라는 기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충만한 가운데서 사는 것입니다. 또, 명령형입니다. 성령충만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다른 하나님의 명령들과 마찬가지로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죄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성도도 성령충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수동형으로 쓰였으므로 하나님에 의하여 성령충만하여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충만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거부하지 않고 자신을 내어 맡기는, 양보하는(yield) 것일 뿐입니다. 이런 명령을 볼 때에 성도들은 얼마나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해야 하는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 그 뜻에 순종하며 수동적으로 성령의 조명에 인도함을 받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거절하는 것은 분명한 불순종의 죄입니다. 물론 다른 죄와 마찬가지로 육신이 연약하여 잠시 죄를 지을 수는 있으나 그가 참 성도라면 계속하여 죄 가운데 거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롬 7:14-25).
   '충만하다'는 단어 plhro,w의 원래 의미는, 돛단배가 잘 항해할 수 있도록 바람이 잘 불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하여 우리 성도의 삶이 앞으로 잘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또 고기나 야채를 소금에 절일 때에 소금기가 그 속을 스며들어 맛을 내거나 방부제의 역할을 할 때에 사용한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우리의 삶을 스며들어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성품들을 나타내는 자녀들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전적인 지배를 받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슬픔이 충만한 사람은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완전히 슬픈 감정이 그를 지배하게 되어 있습니다(요 16:6).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두려움(눅 5:26), 분노(눅 6:11), 혹은 사탄(행 5:3)이 충만하면 그 말과 행동이 그런 것들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18절상)라고 대조를 하였듯이, 술 취한 사람은 알코올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즉 성령충만이라는 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지배가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성령의 지배를 받아 충만케 되면 이 세상이 주는 욕망, 두려움, 심지어 세상적인 목적, 가치기준 등이 나와는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 목적이나 비전 등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 문이 열려서 하나님의 축복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느냐는 것입니다.
   첫째, 죄에 대한 고백이,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죄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 성령이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철저한 애통과 돌아서는 결단이 있은 후에야 거룩하신 성령님도 인격적인 하나님으로서 여러분을 지배하게 됩니다. 둘째는, 자아가 죽어져야 합니다. 이기적인 내 뜻, 내 의지, 내 지성과 육체와 시간과 재능, 소유물, 심지어 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여야 성령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하여 죽어질 때에 주님께서 그 자리를 성령으로 채우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하신 것입니다. 셋째는, 성령충만을 사모하시면서 열심히 간구하셔야 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기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영으로 기도하고 찬송해야 합니다(고전 14:15).  넷째로, 본문의 병행구절인 골로새서 3장 16절,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풍성히 거하여야 성령충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히 받고 그 속에 거하며, 우리의 모든 삶에 스며들게 하면 성령충만은 저절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즉 성령충만은 곧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말씀의 충만입니다. 말씀 충만한 사람은 그 말씀이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게 됨으로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즉 매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함을 느끼며 동행하는 자는 말씀 안에 거하는데 바로 그것이 성령충만인 것입니다. 계속 의식적으로 말씀이 나의 모든 삶을 주장하시도록 내어 맡기는 것을 의미하지요. 이제 막 첫걸음을 내 딛고 걸음마를 시작하는 어린아이처럼 한 걸음씩, 생각에서부터 어떤 결정을 내리며 행동 하나 하나를 성령께서 주장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6-17)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영적 아킬레스 건은 죄성을 아직도 갖고 있는 육체입니다. 그러므로 이 육체의 소욕을 이기는 오직 한 길은 온전히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지 않는 것은 곧 육체의 일,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기, 분리,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 등인 것입니다(갈 5:19-21). 우리는 의식적으로 육체의 일을 좇지 않아도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그 일을 자동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유혹, 죄, 사탄의 능력에 대항하는 오직 한 길은 성령의 능력뿐입니다. 우리 자신에게는 그러한 악의 능력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대신 싸워주실 경우에만 승리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대신 싸우시도록 우리 자아를 내어 버릴 때에 우리는 성령이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갈 5:22-23).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올 한해 우리가 이 세상 삶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현재보다 천 배의 복을 받는 비결은,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비결은 우리의 영이 성령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신비한 뜨거운 체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영적 높은 단계를 말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점차적으로 충만해 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성령세례 받고, 인침을 받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충만은 이미 받은 성령께서 내 영을 온전히 주장하셔서 내 삶을 지배하도록 내어 맡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힘에 의하여 한 걸음씩 인도함을 받는 것, 내 모든 삶의 영역에 성령께서 스며들어 역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일시적인 것도 아니고 현재 계속적으로 매 순간마다 한량없이 부어주시는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성령충만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가 아니고 반드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은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여 진실로 회개하여 돌아서고, 내 자아를 온전히 죽여서 내 이기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 영이 기도하고 찬송할 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충만이 거할 때에 성령충만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함으로 성령의 온전한 지배를 받아 성령충만한 삶으로 올 한 해를 늘 승리하시기를, 축복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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