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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01-28 (목) 11:45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833    
인봉한 책을 떼시는 어린양(계 5:1-7)
오늘날도 그렇지만, 초대교회 당시 로마 제국에서 다루는 중요한 비밀문서는 아무나 그 내용을 볼 수 없도록, 그 두루마리 문서 둘레에 띠를 두르고, 밀납 같은 것으로 인봉을 해서 함부로 개봉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황제의 유언과 같은 것 말입니다. 인봉이 된 비밀문서를 취급하거나 뜯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으로 정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와 같이 인봉이 된 책이 나옵니다. 4장에서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은 거룩한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좌에서 영원히 경배를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5장에서 요한은 환상 가운데 24장로들과의 대화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선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책을 보는데 안팎으로 쓰여졌고, 일곱 인으로 봉하여져 있습니다(1절). 당시 로마 황제의 유언장은 여섯 인으로 봉했다고 하는데, 이 책은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습니다. 물론 계시록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을 상징합니다. 완전히 봉해져 있고, 완전히 비밀이라는 뜻입니다. 도대체 무슨 책일까요? 계시록 20장 혹은 21장에 나오는 생명책 혹은 죽은 자들의 행위를 기록한 책이나 22장의 모든 사람의 행실이 기록된 책은 아닙니다. 이 책을 알려면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겔 2:9-10)고 에스겔에 의하여 예언되어진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6장부터 일곱 인을 하나씩 떼면서 온 세상에 무서운 재앙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 인봉한 책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의미합니다. 계시록 6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이 책이 펼쳐지면서 하나님께서 이 죄악된 세상을 무시무시한 재앙으로 심판하시고 성도들은 구원하시면서, 결국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꾸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곱 인으로 인봉된 책을 누가 펴냐는 것입니다.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2-3절)! 누군가는 이 책을 펴야 하는데 이 세상 천지에 그 어떤 사람도, 하늘 위의 천사도, 땅 아래의 타락한 영물들도 아니더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펼치는 중보자는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천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구원의 높이와 깊이를 헤아리게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다가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 안에 영원히 살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의 종이었다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 반대는 하나님의 원수로, 사탄 마귀의 종으로 고통과 절망 가운데 지옥에서 사는 것입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구원이 임하려면 누군가가 이 책을 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편에서는 아무 방법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4절) 합니다. 여기 요한이 크게 울었다는 헬라어 원어는 통곡하며 우는 것을 뜻합니다. 이 세상에 이 책을 펼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아서 요한은 크게 통곡했습니다.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아서 통곡한 것입니다. 요한은 결코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기에 힘들어서 통곡한 것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인간의 멸망을 도울 자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통곡했습니다. 크게 울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 때문에 크게 우는지요? 이민 생활이 힘들어서 우십니까? 누군가가 날 알아 주지 않아서, 날 무시해서 우십니까? 아니면 옆에 있는 영혼이 하나님 사랑을 깨닫지 못해서 우십니까? 어두운 절망 중에서 빛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 때문에 우십니까? 혹은 스스로 풀 수 없는 인생의 큰 문제를 만났는데 전혀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우십니까?
   요한이 통곡하며 울 때에 24“장로 중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5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라는 말씀은, 야곱이 그 아들들을 축복할 때에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창 49:9) 한 말씀과,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사 11:10)라고 한 말씀의 예언대로 이새의 아들 다윗의 후손에서 나타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위로가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해답이 바로 이것입니다. 유대의 사자 다윗의 뿌리인 메시아, 그리스도가 인봉을 떼시고, 이 책을 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죄 때문에 모두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이 세상의 소망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사탄, 마귀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됩니다.
   그런데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6-7절)고 하였습니다. 5절에서 말하는 사자의 상징은 정복자, 승리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한 승리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상징은 연약함, 희생입니다. 어떻게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사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바로 이것이 하나님 구원계획의 비밀입니다. 사자이기 전에 어린양으로서 주님께서는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갈보리 언덕에서 어린양으로서 죽임을 당하심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셨습니다. 공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좌 앞의 일곱 영이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땅 끝까지 택자의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마귀를, 악한 영들을 물리치시고 그의 종이 되었던 백성들을 의의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로 사자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비록 본문에서는 사자가 먼저 나오고 어린양이 뒤에 나오지만 실제로 그가 하시는 일은 어린양으로 먼저 하나님께 화목제물이 되시고 나서, 사자 같이 이 세상을 정복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6절 하반절에 보면 어린양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는데 이 눈이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했습니다. 일곱 뿔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힘을 말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습니다(마 28:18). 그래서 세상 모든 만물이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능력은 일곱 영, 곧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마귀를 물리치십니다. 믿는 자들의 교회 위에 성령을 부으심으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새롭게 하셔서 온 세상의 죄악과 싸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능력은 바로 성령의 능력에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으시는 성령을 방해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교회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모든 죄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우리 주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탄, 마귀의 세력을 쫓아내고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자이심을 믿으십니까?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능력이 있으심을 믿으십니까? 성령의 능력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마음껏 역사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성령충만이 필요합니다.
   저는 때때로 생각합니다. 저 같이 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목사로 부르셔서 귀한 성도들과 함께 목회를 하게 하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힘들 때가 있습니다. 왜 열심히 기도하고 애쓰는데 성도들은 잘 변하지 않는지, 또한 오랫동안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는지, 혹은 성도들이 불신앙 때문에 겪는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면 절로 탄식이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우는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웁니까? 눈에 눈물이 마른 지가 오래 되었습니까? 아니면 그냥 내 삶이 너무 힘들어서 우십니까? 아니면 사도 요한처럼 주위의 사람들, 세상 사람들을 생각하며 통곡하십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언제 그들에게 미칠 것인지 안타까워하면서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해답인데, 아직도 방황하며 고통 중에 있는 그들을 생각하며 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 대로 그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한에게 울지 말라고 위로하는 장로처럼 말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사자가 되었음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고난의 십자가 뒤에는 사망 권세를 이기는 부활이 있었음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아니 우리도 어린양처럼 한 알의 밀알로 죽어지는 희생이 있어야, 사자의 영광을 누리게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곧 다시 오십니다. 그 날까지 성령님을 의지하고, 주님과 함께 사자처럼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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