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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02-04 (목) 12:55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797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어린양(계 5:8-14)
아마도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면서 기도하며 문제 해결을 기다리는 시간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초대교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는데 왜 속히 오시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지금 로마 제국의 핍박 아래 많은 성도들이 죽어가고 있고, 그 핍박은 심해지고 있는데 주님이 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부활, 승천하심으로 끝이 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을 통해 천상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지는 시간들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세상은 큰 변화를 보게 될 것이기에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살펴본 대로 4절에서 요한이 하나님 오른팔에 들려있는 중요한 책을 펼 자가 없어서 크게 통곡하였을 때,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예수 그리스도)이 이 책을 취하여 인봉을 떼실 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6장에는 이 책의 인봉을 하나씩 뗄 때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재앙들이 일어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인봉을 떼기 전에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4장에서는 성부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했는데, 5장에서는 주로 인봉된 책을 떼는 성자 예수님을 경배하며 찬양합니다. 하나님 보좌 앞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어린양의 구원을 새 노래로 찬양하며, 더 나아가 수많은 천군천사들도, 그리고 온 세상의 피조물도 찬양하며 경배합니다.
먼저 천상교회에는 지금까지 성도들이 드린 모든 기도가 금 대접 안의 향으로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8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에 대하여서는 4장 강해에서 이미 설명드렸듯이, 네 생물은 천사들의 대표이며, 이십사 장로는 신구약 성도들, 이미 지상에서의 영적 싸움을 마치고 천상에서 안식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의 대표입니다. 이들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들고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상교회의 우리는 기도하면서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면 기도한 것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열심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어떻게 기도할지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면서,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금 대접에 담아주시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의 기도를 소중하게 생각하시는지 보게 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향단에 향을 피우면 성도들이 바깥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개인기도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기도, 전체적인 기도였습니다. 개인기도는 제사장들을 통하여 드려졌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회복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아직도 그 나라는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헛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나라가 임하옵시며”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드러나는 책의 인봉을 떼시는 시기가 이 기도의 대접이 가득한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학자들이 요한이 이야기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기도는 서론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마라나타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계 22:20) 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도록 말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심령이 죄에 대한 고통을 느끼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들이, 잃어버린 상한 심령들이 회복이 되도록 말입니다. 즉 우리는 이 땅에 펼쳐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주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또한 거문고를 가지고 새 노래로 어린양을 찬양합니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9절) 하였습니다. 여기 새 노래는 노래 자체가 새로운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노래는 아무리 노래를 현대음악적으로 바꾸어도 내용이 새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천상에서 부르는 노래는 내용 자체가 다른 새 노래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아니면 부를 수 없는 노래입니다. 사람이 새로워져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행하신 사랑의 노래입니다. 그래서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시 149:1)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위대함을 깨닫고 그 은혜를, 그 사랑을 진심으로 표현하고 부르는 노래이면 천상교회에서 부르는 새 노래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부르는 새 노래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인봉한 책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어린양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이 주어졌습니다. 영생의 삶이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바쳐진 삶입니다. 구원받은 후 이 세상에서 아무렇게나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합니다. 마치 바울이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10절)! 사도 베드로도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벧전 2:9상)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나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스스로 복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족한 줄 알고 그 은혜에 벗어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지키십니다. 그렇게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다스림을 받기에, 그 어떤 세상 권세자나 마귀의 다스림을 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든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성도가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보고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짓는 죄를 말씀드리면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땅에서 왕노릇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교회의 신분을 말합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왕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배하는 왕노릇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겸손한 종의 모습으로 섬기는 왕노릇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군림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권력으로 지배하지 않습니다. 그저 겸손와 정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존경과 신뢰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겸손하지 않은 자는 중요한 역할을 맡을 자격이 없고, 신실하지 않은 자는, 정직하지 않은 자는 아무런 권리도 없습니다. 즉 존경과 신뢰를 잃어버리면 왕노릇을 못하는 것입니다. 아멘!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만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천군천사들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11절). 어떻게?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도다”(12절) 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찬양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드리는 찬양이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13절하)! 사실 예수님께서 천군천사나 피조물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니기에 그들이 구원의 찬양은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만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구원의 범위가 온 세상이며,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들도 주님께서 행하시는 기이한 일을 볼 때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타락한 천사들, 마귀의 수종자들이 무저갱에 묶이는 것을 볼 때 찬양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들의 죄 때문에 탄식하던 피조물이 아니었습니까(롬 8:21-23)? 그들도 함께 탄식하며 고통 하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빨리 온 세상에 죄와의 싸움이 끝나고 평화로운 세상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때가 속히 임하기 위하여 교회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찬양해야 합니다.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 모든 것이 참된 의미를 가지려면 그 모든 것 가운데 주님께서 계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천사는 의미가 없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피조 세계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그들이 모두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영역에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즐거움이 없고 고통뿐이라 죽고 싶기만 한 부분이 무엇입니까? 결혼 생활입니까? 자녀문제입니까? 인간관계입니까? 가정 일입니까? 직장생활입니까? 사업체입니까? 지겹고 짜증만 납니까? 그 영역에서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을 초청하십시오. 주님께서 그 안에 간섭하시도록 초청하십시오. 그리고 경배와 찬양을 드리십시오.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십시오. 감사는 주님을 초청하는 열쇠입니다. 주님의 임재를,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패스워드입니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기도를 열심히 하면서 응답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천상교회의 금 대접에 기도가 쌓이고 있습니다. 기다리십시오. 때가 되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주님을 경배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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