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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02-08 (월) 06:0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90    
하나님의 선택(1) (롬 9:6-18)
믿는 사람들이 때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답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면, 그 은혜를 기억한다면 정말 감사하며 삽니다. 하나님 사랑하며 삽니다. 그래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 수 있습니다.
로마서 9장은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주제 중 하나인 하나님의 선택(Election)과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 편에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진리입니다. 하지만 연약하고 유한한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전지전능하며 무한한 지혜의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롬 11:33)? 그렇다면 참 하나님이 아니시지요. 중요한 것은 전지전능하시고, 영원 불변하시며,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믿을 수 밖에요.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안 믿고, 이해가 된다고 해서 믿는다면 인간중심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고 할 수 없지요. 내 맘에 드는 말씀은 믿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말씀은 안 믿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탄,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것도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거짓말이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이, 그들이 누렸던 특권이 8가지나 되었습니다(4-5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선택 받은 민족이 그럴 수가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바울이 6절 이하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고 하여 하나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오”(6절)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아무리 아브라함의 자녀라 하더라도 이스마엘의 자손은 그 자녀가 아니고, 오직 이삭에게서 난 자녀만이 진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합니다(7절). 그냥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씨를 받아 태어났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오직 약속을 받은 자녀만이 진짜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들에 대하여 옥한흠 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것은 사명적 선택이지, 구원적 선택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세상 나라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알리고, 믿게 하기 위하여 그 사명을 감당하라고 선택한 나라일 뿐이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약속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롬 4장). 하나님께서 사람의 혈통이나 족보에 근거하여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예를 9절에 설명하였습니다.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창 18:10, 14 인용). 사라는 이미 폐경을 했고, 아브라함도 너무 늙어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 약속의 말씀의 능력으로 임신하여 태어난 아이가 이삭이었습니다.
즉 죄인된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적으로 죽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으면서 놀랍게 심령에 변화가 일어나며, 죄가 깨달아지며, 하나님의 사랑이 믿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이 나를 위함이었음이 깨달아집니다. 성령의 역사지요. 이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사건이기에 성경은 신비스러운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말씀을 듣기만 한다고 자동적으로 거듭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거듭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믿음이 생기게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꾸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떤’ 말씀으로 심령이 변화 받지 않으면 ‘다른’ 말씀에 부딪혀 심령이 살아날 수 있는 기적을 믿어야 합니다. 아무리 말씀을 외쳐도 금방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면 죽는 순간에 하나님의 어떤 말씀이 생각나서 믿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하나님의 선택은, 구원은, 사람의 무슨 행위로, 공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10-12절)라고 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 쌍둥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큰 아들 에서와 작은 아들 야곱입니다. 그런데 큰 아들 에서가 야곱을 섬길 것이라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에서나 야곱의 행위 때문에 그렇게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야곱은 에서보다 더 문제가 많은 아들이었습니다. 얼마나 잘 속이는 교활한 아들이었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말라기 1장 2-3절을 인용하면서,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13절)고 하였습니다. 우선 여기 “미워했다”는 말을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에서를 고의적으로 미워했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덜 사랑했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예수님도 참 제자가 되려면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안된다고 하셨습니다(눅 14:26).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족들을, 목숨을 고의적으로 미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보다는 덜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에서보다 야곱을 더 사랑하고, 더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야곱에게는 특별한 은혜를 주셨는데, 에서에게는 일반 은혜 밖에는 안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아니 사람이 아직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하기로 작정하시고 어떤 사람은 버리기로 작정했다는데, 너무 불공평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선택은 인간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공평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정은 비밀입니다. 하나님만 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생각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이지요.
중요한 것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미리 정하시고 선택해 주셨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계획하셨다가, 우리가 태어난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셔서 서서히 다가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위기의 순간마다 이상하게 알 수 없는 손길로 극복하거나 피하게 된 것은 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런 것입니다. 어느 순간에 복음을 듣게 하시고, 믿어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주권에 의하여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구원을 우리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선택하여 구원하셨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나라를 위하여 오래 전부터 정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구원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인해 기뻐하고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내 가족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난 주에 말씀드렸듯이 계속 사랑을 부으면서 복음을,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지옥이 아직 실감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만약 천국과 지옥이 다 보이는 상태에서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지옥을 간다면 아무도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하니까요. 그러나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지옥은 나중에 죽어봐야 하는 것이고 지금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전도에 열심을 내지 못한다면 참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택함을 받은 자라면 누군가가 계속 기도하고 있으며, 엄청나게 사랑하며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열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인내하면서 기다리면 때가 되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선택은 그의 공의와 긍휼에 근거한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이 불공평하다, 불의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런즉 우리는 무슨 말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14-16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의로운 분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지 않습니다. 불의하다면 어떻게 마지막 때에 온 세상을 심판하시겠습니까? 그 선하신 뜻 가운데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버리시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결정한 일에 대하여 감히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불의하다, 불공평하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16절에 “달음박질한다”는 말은 애쓴다,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우리가 노력해서 선택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인간의 어떤 조건이, 행위가 선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 분 밖에 있는 어떤 원인에 의하여 긍휼을 베푸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이라고 불릴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유명한 신학자 F. F. Bruce 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조건이 선택을 결정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선택하는데, 근거는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이라는 것입니다. 그 예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데리고 출애굽할 때의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17-18절)고 하였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출애굽을 하려고 할 때 모세는 바로왕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바로는 모세의 말대로 한다고 해 놓고 약속을 어기고 백성들을 보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헛걸음을 열 번이나 했습니다. 모세는 순진하게 바로가 재앙을 만난 후 보내주겠다고 한 말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번번히 약속을 어겼습니다. 첫 번째 재앙인 나일강이 피로 변했을 때에 아니면 두 번째 재앙인 개구리 떼가 바로의 궁전을 덮칠 때 바로가 잘못했다고 하면서 보내주겠다고 할 때에 믿지 말고 완전히 항복한 후에 재앙을 거두었다면 마지막 장자들이 죽는 재앙까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강퍅하여 갈 때까지 가보자고 한 것입니다. 여기 “강퍅하게 하셨다”는 말도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선한 마음을 강퍅하게, 악하게 만드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악합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음이라”(창 6:5)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은 그냥 내버려두면 저절로 바로처럼 강퍅하게 됩니다. 죄인인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9하)고 하신 것처럼, 어떤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셔서, 긍휼을 베푸셔서 마음이 더 이상 강퍅해지지 않도록 막아 주십니다. 악한 마음이, 악한 생각이 들더라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아주 악한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아주 포기해 버립니다. 바로처럼,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으면, 그 은혜가 아니면 악하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의 마음이 강퍅하지, 교만하지 않게 해 주시는 것에 대하여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찬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선택하여 주신 것은 사람의 혈통이나 족보에 따른 육신적인 조건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의 행위나 공로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의하여, 또한 사랑으로 인해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5)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남은 인생은 그 크신 은혜로 택하여 주심에 감사하며, 그 주님의 은혜와 영광을 찬미, 찬송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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