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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02-15 (월) 11:5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02    
하나님의 선택(2)(롬 9:19-33)
지난 주일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 그 나라 대부분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구원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답하셨습니다(6-18절). 이스라엘 민족의 선택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게 되는 선택이 아니라, 그 민족을 사용하셔서 만 백성에게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나타내 보이시고,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은 이방인이라도 구원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선택하여 주신 것은 사람의 혈통이나 족보에 따른 육신적인 조건도 아니고 또한 우리의 행위나 공로 때문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인간 편에서 볼 때에 하나님의 공의에 의하여, 또한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해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계속하여 하나님의 선택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곧 이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바로를 강퍅하게 내 버려둔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지 않으셔서 내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내가 허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누가 감히 하나님의 그 뜻을 대항할 수 있느냐?’(19절) 라는 질문에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을 좀 다르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서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면 구원을 받을텐데, 나를 선택하지 않아서 내가 믿지 않는다고 심판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 결코 내 잘못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항의하는 사람에게, 바울은 그렇게 항의할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구약에서 자주 사용된 토기장이의 비유(사 29:16; 45:9; 64:8, 렘 18:6)를 들어 명백한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주권자이기에 그의 피조물들을 마음대로 할 권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20-21절)라고 하였습니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자유과 권리에 대하여 논의할 자격이 없다는 말입니다. 창조주는 자신이 만든 것에 대하여 절대자유, 절대주권을 행사합니다. 마음대로 하십니다. 그래서 장미꽃이 왜 나를 장미꽃으로 만들었느냐는 대답에 질문할 필요가 없듯이, 인간들에게도 나를 왜 이런 그릇으로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하나님은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대답을 한다 해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단지 나를 뱀이나 선인장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인간으로 만드셔서 생명을 주신 것만 생각해도 은혜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대적하고, 죄를 짓고 사는 나를 구원하신 은혜만 생각해도 그냥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지옥에서 영원히 살아야 하는 나에 대하여 오래 참으셔서 관용을 베푸시고, 작은 영광이라도 받으시기 위하여 긍휼을 베푸신 것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시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22-23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사람이 그 무슨 권리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바로의 경우에도 그가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10번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가 그렇게 악한 자도 하나님께서는 애굽이라는 나라의 왕으로서 수많은 특권을 누리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기회를 10번씩이나 주었는데도,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참으시고 관용을 베푸셨는데도 돌아서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무덤을 자초한 결과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고 해서 인간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모든 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즉각 죽어야 마땅한데,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거기에 영원한 생명까지 허락하신다는 것은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누구는 미리 정하셔서 택하시고 구원하시면서 누구는 택함을 받지 못해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이 불공평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하여 결코 그렇지 않다고 이스라엘의 예를 들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만이 온 세상 사람들 가운데 누가 선택이 되어 그 긍휼과 특별한 은혜를 받는지 알고, 우리 인간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겉 모습만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속 마음을 알고 판단합니다. 우리 보기 어떤 사람은 진노의 그릇 같지만, 사실은 긍휼의 그릇인데 아직 변화를 받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바울의 예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사울일 때에는 진노의 그릇으로 알았지만, 주님을 만난 후 긍휼의 그릇으로 변하지 않았습니까? 반대로 많은 유대인들은 그들의 혈통과 공로로 긍휼의 그릇 같아 보이지만 아닌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겉으로 보기에 진노의 그릇 같아 보이는 이방인들 가운데 부름을 받은 자가 많다고 합니다.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24-26절)고 하였습니다. 호세아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역하며 우상을 섬기는 불신앙 가운데 사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를 했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앗수르에 의하여 주전 722년에 망하고 맙니다. 동시대의 선지자 이사야는 남 유다 왕국을 향하여 북 왕국 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을 보고 경고함으로 선한 왕들 때문에 얼마 동안 유지가 되지만, 나중에 그들도 결국 바벨론에 의하여 주전 586년에 망하고 맙니다. 그리고 몇 신실한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면서 바벨론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70년 포로생활을 끝내고 귀환하게 됩니다. 수백 년의 기회가 있었으나 회개하지 않음으로 나라들이 망합니다만, 긍휼의 그릇 즉 남은 자들이 구원을 얻게 됩니다.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으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27-29절)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을 지킨 남은 자를 미리 정하시고 선택했다고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 열쇠는 믿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30-32절)고 하면서, 이사야 28장 16절을 인용하여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33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부딪히는 돌, 거치는 반석은 곧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하나님의 복음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부딪혀서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사야가 예수님 오시기 700여 년 전에 예언한대로 유대인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믿기는커녕 거역하고 모독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결국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으니 문제였습니다. 율법을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선생이었는데 말입니다(갈 3:24-25). 그들은 십자가에 비참하게 처형당하는 사람이 메시아일 줄은 생각을 못했습니다. 믿지를 못했습니다. 비록 이사야가 예언하였어도 말입니다(사 53장).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신 우리 인간이 감히 하나님에게 불평 불만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이시며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께 피조물, 질그릇인 우리가 무슨 권리가 있어서 대항하겠습니까?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 아니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로지 믿음이요, 겸손이요, 감사입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내가 죽어야 할 자리를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섭리를 겸손히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할 정도로 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은 참으로 하나님(God)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놀라우신 은혜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아무 공로도 자격도 없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아무 조건도 없이 무조건 선택해 주시고, 불러주신 은혜에 대하여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다른 사람에게 욕을 먹어도, 자존심이 상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짧은 경점과 같지만, 영혼은 영원히 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의 망했습니까? 그들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로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역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세상의 자랑이나 자기 의를 버려야 합니다. 물론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자랑해야 합니다. 자기 의를, 공로를 나타내야 합니다. 자존심을 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그런 나의 생각이나 감정, 의지를 버립니다. 자존심을 내려 놓습니다. 비록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낮추셔서 존귀한 그릇으로, 자주 사용하시는 그릇으로 만들고 계신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젊은 친구들에게 가장 질문을 많이 받는 내용이 바로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사실 대답을 제대로 속 시원하게 해 줄 수 없는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가 칼빈도 이 부분에 있어서 성도들에게 두 가지 경고를 하였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호기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꾸 따지고 이해해 보겠다고 하면 오히려 헤어나지 못하고 인간중심이 되어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에서 가르쳐 주는 것을 그대로 믿고, 믿는 자로서 감사할 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가르쳐 주시도 않는 내용을 호기심을 가지고 자꾸 알고 싶어서 파고 들다가 진리를 벗어나는 경우가 바로 이단들입니다. 잘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하나님(God)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 예정이나 선택의 교리에 대하여 잘 모르는 점이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이는 일종의 유식한 무식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자신이 좋아하시는 대로 하시는 일에 대하여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토기 그릇이 어찌 그릇을 만든 토기장이의 생각을 다 안다는 말입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18세기 미국 영적 각성운동의 주역이었던 유명한 청교도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에 상반되는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굴복할 수 있는 이유와 근거를 깨닫게 하심으로 굴복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교리는 우리의 이성으로 판단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은혜를 찬양할 수 있는 이유과 근거로 주신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교리에 대한 칼빈의 또 다른 경고는 이해하지 못하는 진리라고 해서 침묵하는 것입니다. 이 교리가 나오면 그냥 피해가는 것도 올바른 태도는 아닙니다. 도대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를 잘 배우고 또 말해야 합니다. 이해가 안된다고 해서 무시하고 안 배운다면 그것은 정말 무식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교리를 잘 배워서 알아, ‘잘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정말 대단하네요. 나 같은 자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나님께서 나를 태초부터 사랑하셔서 정하시고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다는 말입니까’ 하고 감격한다면,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믿음인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하나의 진흙으로 겸손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살고 죽는 것, 건강하고 병든 것 모든 것을 하나님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분이 많은 연단을 통하여 낮아지고 또 낮아져서 하나님 앞에 한줌의 흙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런 나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믿음을 갖게 하심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겸손하게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런 분들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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