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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05-30 (월) 08:4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93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1-10)


우리 주위에는 대 놓고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적대감은 없더라도 우리 눈으로 보기엔 참 착하지만 복음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옳은 말을 하고, 때로 성경구절도 인용하고, 기도도 그럴 듯 하게 하고, 신념을 갖고 가르치기도 하며, 사람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속을 드려다 보면 믿음으로가 아닌 그야말로 위선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 같으면 당장 절단을 내버릴 것 같으니, 제가 하나님이 아닌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렇게 자신 스스로 믿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물론,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그 믿음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를 보아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아니 오늘날까지 수많은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민족이라고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많이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손을 벌리고 예수님 앞으로 초청을 해도 듣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롬 10:21)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당시 주위에 많은 유대인들이 믿지 않는 것을 보고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버렸다고 생각하기에, 오늘 본문에서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1절상)고, 수사학적인 질문을 하면서 강하게 부정합니다. 다 버리신 것이 아니라,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5절)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증거를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 자기 자신을 보라는 것입니다.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1절하)고 하였습니다. 자신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선택 받은 히브리인임을 자랑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을 앞장섰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가롯 유다를 대신하여 뽑힌 맛디아를 포함하여 예수님의 12사도도 다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다 버리신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2절상)라고 하였습니다. 택하신 남은 자들과 택하지 않으신 자들을 미리 다 아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둘째로, 구약에서 악명이 높기로 유명한 아합 왕 시대에 엘리야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고 있었고, 자신 혼자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적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승리를 하고 850명을 다 죽였으나,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니 도망하며 로뎀 나무 아래서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었던 것입니다(왕상 19:2). 엘리야가 보기에는 한 사람도 자기 편이 없고, 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3절; 왕상 19:10, 14) 하였던 것입니다. 그 때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4-5절; 왕상 19:18)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생각할 때에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우상숭배에 빠져있던 것으로 보였으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상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경건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6절)! 즉 하나님께서 남겨 놓으신 택자들은 그들이 무슨 선을 행하거나 도덕적으로 살아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소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사 10:20-21)고 예언하였었습니다. 남은 자는 바로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상징적인 144,000 명을 뜻하기도 합니다(계 7:4).
   우리나라도 처음 복음을 열렬하게 받아들인 곳은 북한 평양을 중심으로 평안도였습니다. 그곳에 첫 신학교가 세워졌고, 부흥의 불길이 전국으로 타올랐습니다. 반면 남한은 불교나 유교가 강해 복음을 거부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공산화되고 전쟁 중 북한 성도들이 남한에 피난 내려와 교회를 많이 세우고, 전쟁이 끝난 후 20년이 지난 다음부터 교회들이 폭발적으로 부흥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북한에는 공식적으로 성도들이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우상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남은 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공산당보다 더 강할 줄 믿기 때문입니다. 통일이 되면 엄청난 부흥이 북한땅에서 일어날 줄 믿습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남은 자들만 구원을 받았듯이, 오늘날 교회를 다닌다는 교인들 가운데서도 구원을 받을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입은, 남은 자들 뿐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다 남은 자들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다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마 13:36-43). 사탄 마귀가 교회 안에 가라지를 뿌려 놓는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가 되어야 누가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정확하게 알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판단이 잘 안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만 아십니다. 우리는 추측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어떤 한 순간만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믿는 순간에 사람이 180도로 확 바뀌어 알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아주 긴 시간을 통하여,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하여 서서히 알곡을 만들어 가실 때도 있습니다.
   셋째로, 바울은 끝까지 예수님 믿기를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강퍅하게 내버려 두셨다고 합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유기(abandonment)’라고 합니다. 이미 로마서 9장 7-16절 강해에서 설명해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서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택하시고,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택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7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남은 자들은 앞서 말한 남은 자가 아닙니다. 반대로 남은 자가 아닌, 택함을 받은 자가 아닌 자들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8절; 사 29:10)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시면 우리의 심령이 완악한 상태로 그대로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혼미한 상태에서 영의 귀과 눈이 열리지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그 본성이 악하여 복음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수가 없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엡 2:1).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영의 귀와 눈이, 마음이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내가 죄인임이 깨달아지고, 죄인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이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어서 바울은 시편 69편의 다윗의 기도를 인용하여 사탄 마귀의 수종을 드는 자들을 그가 저주한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9-10절)고 합니다. 여기 ‘밥상’이라 함은 그들의 육체적인 욕망을 가리킵니다. 정욕을 따라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에 빠져서 그것이 올무가 되는 것입니다. 불행의 덫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재미가, 돈과 명예가 영원한 저주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발목을 잡고 영의 눈을 뜨지 못하게, 영의 귀가 듣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잘 나가는 것 같고, 형통한 것 같은데 마지막은 비참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말세가 되면 정욕대로 사는 것이 올무가 되어 망할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8-39)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가 가까우면 밥상이 올무가 되어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 자체가 죄가 아닙니다. 인간의 정상적인 삶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거기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지 아니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냥 인간의 본성대로 완악하게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제게 왜 하나님께서 누구는 택하시고 누구는 택하지 않으시냐고 물어보지 마십시오. 저도 모릅니다. 나중에 하나님 만나면 물어봅시다. 다만 저는 오늘 여러분들 모두가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이기를 축원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남은 자들이라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며, 겸손해야 합니다. 은혜를 허락하셔서 믿음을 주시고, 영의 눈과 귀를 열어주셔서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 항상 감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이 버린 사람들을 가지고, 왜 하나님이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택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자기가 하나님인양 판단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아 남은 자가 된 성도는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 앞에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리며 이 놀라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지 생각하며 삽니다. 그래서 18세기 영국의 John Newton 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라고 찬송시를 썼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만일 당신이 천국에 들어가면 세 번 놀랄 것입니다. 한 번은 천국에 와 있을 줄 알았던 사람이 보이지 않아 놀랄 것이고, 두 번째는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거기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며, 세 번째는 노예 상인으로 유명했던 자신이 그곳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랄 것입니다.’ Issac Watts 도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 다 갚겠네 놀라운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라고 찬송하였습니다. 19세기 부흥사 무디와 함께 사역을 했던 Daniel Whittle 도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찬송하였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는지, 하나님이 왜 나를 택해주셨는지, 죄인 중에 죄인인 나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나 대신 죽게 하신 그 신비한 이유를 다 알 수 없어서 감격하는 것이 남은 자들의 특징입니다. 부족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불꽃 같은 사랑, 그 열정에 몸둘 바를 몰라 그저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주위에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전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 은혜를 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누가 택함을 받았는지 알 수 없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기회가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오늘 이 감격이 있습니까? 나를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 가운데 포함시켜 주신 이 감격이 있다면, 이 세상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감사하며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죽을 병이 걸려도 이 감격이 있으면 천국 소망을 가지고 감사의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정말 남은 자라면 여러분 안에 있는 성령님이 이 감격이 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한편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돈이 있고, 권력이 있어도 인간은 인간인 것입니다. 죄인인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시고 여러분을 초청하시는,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남은 자에 속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역사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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