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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06-06 (월) 06:4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45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 하라(롬 11:11-24)



때로 우리는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 높아진 줄 알고 교만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싫어하시는 모습입니다. 사실 우리 편에서 조금도 내세울 것이 없는데, 전혀 자격이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권적으로 택하셔서 구원해 주시고 자녀 삼아주셨기에 은혜라고 하는데 이 진리를 잊고 높은 마음을 품고 말하고 행동한다면 그야말로 가관입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대로 바울은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11:1-10).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도 남은 자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넘어진 것이 아니라 실족한 것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그들이 실족했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11절)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완전히 다 망하도록 넘어진 것이 아니라 실족한 것으로 앞으로 남은 자들이 돌아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잠시 넘어짐으로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지를 않고 오히려 거부하고,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방인으로 눈을 돌려 구원이 온 세상에 미치도록 하셔서,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축복을 받아 부요하게 되면 그 때 이스라엘이 시기하여 돌아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시기한다’는 말은 질투하는 소유욕에서 나오는 나쁜 감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유익을 위한 ‘열정을 내게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이 축복 받는 것을 보고, 부요하게 됨을 보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께 열심을 내게 하셔서 돌아오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12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충만할 때가 온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안타까웠던 것은 자신의 골육, 친척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처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이미 다 들었고 배웠지만, 구약성경을 알고는 있지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복음을 전하면 반응을 보이며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에게 열심히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방인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을, 부활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많더라는 것입니다(15절).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았음을 영광스럽게 여긴다고 하였습니다(13절).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골육, 친지 가운데서 시기하여 얼마라도 구원에 이르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14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나 남편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자식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계속 식구들을 위해서만 붙들고 애끓는 씨름을 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다른 사람을 전도하다 보면 식구들도 믿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 골육에게 아무리 전해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핍박을 하는 그들과 계속 씨름하면서 모든 에너지를 다 소모해 버리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는 이방인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유대인들이 이방인들 가운데 일어나는 부흥과 하나님의 축복을 보고서 믿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전도로, 사랑으로 유대인들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우선 전해야 합니다. 마음이 열려진 사람들에게 우선 전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가족이나 친지들은 내가 하나님께 충성할 때 언젠가는 복음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보다 구체적으로 이방인들이 복을 받게 된 이유를 두 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곡식 가루로 떡을 만들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비유입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 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16절; 민 15:19-21)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 익은 곡식을 추수하면 그 곡식으로 떡을 만들어 제사로 바쳤는데, 그것을 거제라고 합니다. 일종의 감사제였습니다. 이렇게 처음 익은 곡식으로 떡을 만들어 제사를 드리고 나면, 그 다음에 떡을 만들 때마다 하나님께 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첫 번째 떡이 거룩해졌기 때문에 그 다음에 만들어 먹는 떡이 자동적으로 거룩해진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은 족장들이 거룩했기에, 또한 그 남은 그루터기가 거룩했기에 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방인들도 거룩해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고 한 것입니다.
두 번째 비유는 돌 감람나무의 비유입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17절) 하였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참 감람나무요, 그 귀한 열매를 맺는 나무였습니다. 그 열매에서 나오는 감람유는 성전을 밝히는 등불의 기름으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기름 부을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런 참 감람나무인 이스라엘이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액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가지를 쳐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비천한 돌 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이셨습니다. 그랬더니 접붙인 가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액을 잘 받아들여서 감람열매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 참 감람나무 가지를 치고, 그 자리에 돌 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였냐는 것입니다. 아예 따로 돌 감람나무를 참 감람나무가 되게 하실 수도 있으신 분이 아닙니까?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는 참 감람나무는 하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이 여럿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 밖에 없기에 이방인이 이 나무에 접붙임을 받는 방법이 아니고는 이스라엘의 복을, 하나님의 언약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기에 가짜 감람나무가 아니라 진짜 감람나무가 된 것입니다. 가짜 이스라엘이 아니라, 진짜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물론 접붙임이 되려면 우선 돌 감람나무에서 잘라지는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가문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내가 가진 세상 욕심이나 야망으로부터 갈라지는 아픔이 없다면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말씀의 진액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가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하여 버린다고 하셨습니다(요 15:2).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미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 그 뿌리의 진액으로 열매를 맺고 사는 남은 자들이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그 접붙임을 받은 가지를 향하여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18절)고 하셨습니다. 자긍하지 말라는 것은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접붙임을 받은 것이 아니요, 자기가 스스로 열매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능력으로 접붙여 주신 것이요, 참 감람나무 뿌리에서 진액을 내어서 보전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전혀 자랑할 것이 없지요.
그런데 어떤 이들이 참 감람나무에서 잘려진 가지들을 향하여 멸시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접붙임을 받았다고 저들의 불신앙을 통쾌하게 생각한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19-20절)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전통이나 의식, 세상 지식이나 물질, 권력을 믿어서 잘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도 만약에 교만하여 ‘나는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었으니 다 되었다’ 라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진액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기 마음대로 믿고 살면서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그들도 잘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원 가지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리라”(21절)는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물론 진실로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끝까지 복음을 붙드는 자들은 반드시 천국에 들어갑니다. 다만 우리는 아직 죄성을 갖고 있기에 겸손히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빌 2:12). 그런 의미에서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고 한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은혜로 접붙이심을 받았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23절).
그래서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자가 되리라”(22절)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으로 덮어주시며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그 밖으로 나가면 하나님의 엄위, 곧 무서운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바로 구약에 종종 나타나셨던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아니 예수님께서도 악한 열매를 맺는 자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마 12:34) 하시면서 진노하시면서 꾸짖으셨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구원을 받은 줄 믿습니다. 정말 별 볼일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지금도 죄인입니다. 믿음으로 선물을 받은 것 때문에 구원이 임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선택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의 버림을 받았습니까? 믿지 않아서 가지가 꺾였다고 했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이스라엘에 접붙임을 받아 뿌리로부터 진액을 먹게 되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긍하면 안됩니다. 자랑하면 안됩니다. 높은 마음을 품으면 안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그저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자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말씀의 진액을 먹고, 소화시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더군다나 믿지 않는 사람들을 멸시하거나 무시하면 안됩니다. 그저 내가 하나님의 사랑이, 은혜가 믿어지게 됨을 감사하며, 그 분들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분명히 그들 중에 우리와 같이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전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하늘 나라 소망에 대하여 말해주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벧전 3:15-16절상)고 하였습니다. 여기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의 뜻은 우리 안에 있는 천국 소망에 대하여 묻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존중히 여기며 대답을 하라는 것입니다. 높은 마음으로 아래 사람 쳐다보듯이 이야기하지 말고,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고 대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작은 자 하나에게 물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이 바로 자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마 25:40)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중에 누구 하나 홀로 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서 믿게 된 것입니다. 또 누군가 여러분의 믿음을 위하여 눈물의 기도를 했기 때문에, 말씀의 진액을 먹였기에 여러분이 오늘 이만큼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과 성령님의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지만, 그 분들께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뿌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가지가 뿌리를 무시하고 스스로 높은 마음을 품고 잘난 체하며 교만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잘라버릴 가능성이 많습니다. 두려워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인자의 하나님이시지만, 엄위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늘 삼가 조심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허락하신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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