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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6-07 (목) 17:22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328    
모델교회(데살전 1:1-3)
주님의 교회가 교인들끼리 교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교회의 사명입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영혼이 훈련을 통해 성장하여 그 또한 영혼 구원에 쓰임 받는 제자가 되는 일입니다.
성경은 이 사명이 크기에 교회를 큰 집이라고 했습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딤후 2:20)! 각각 다른 그릇이 교회에서 각자 쓰임을 잘 받아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병든 교회요, 죽은 교회입니다. 이 땅에 존재할 목적을 잃어버린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크다고 해서 이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도 아니요, 교회가 작다고 해서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열쇠(key)는 교회가 건강하냐, 건강하지 못하냐에 달려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잘 감당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까? 아이들이 건강하면 잘 먹고, 운동하면서 그 키와 지혜가 자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건강하지 못하고 어디 병 들어 있으면 자라지를 못합니다. 교회가 건강하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엡 4:13)라고 하였듯이, 자라가면서 주님의 모습을 충만하게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데살로니가전후서 강해를 시작하면서 우리 교회가 정말 건강한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적으로 건강한가? 건강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의사이신 예수님께서 고쳐주시기를 바라면서 정말 건강하여 이 지역에서 모델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복음을 전했던 곳입니다(행 17:1-14). 유대인들의 핍박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야손과 같은 훌륭한 평신도들로 말미암아 교회가 세워졌었습니다. 그곳을 떠나 베뢰아와 아덴을 거쳐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에,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한 소문이 각처에 퍼진 것을 보고 주후 50년 경 편지를 쓴 것이 바로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아마도 신약성경에서 바울이 첫 번째로 쓴 서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절에서 동역자들과 더불어 따뜻한 안부인사를 전합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1절)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홀로 외롭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탄 마귀가 그들을 헤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많은 핍박을 받았으나 잘 견뎌내었습니다. 이유는 그들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2-3절)라고 합니다. 바로 여기 건강한 교회의 세 표지(marks)가, 사인(signs)이 나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첫 번째 서신을 보낸 후 약 6개월이 지난 다음에 쓴 데살로니가후서에서도 이 세 표지의 진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란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데살후 1:3-4)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과 관련된 많은 교회들 가운데서도 아마 데살로니가교회가 가장 건강했던 모델교회로 생각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처럼 건강했던 교회 중 하나가 골로새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골로새교회를 향하여 쓴 서신 서두에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 1:3-5)고 하였습니다. 한편 가장 문제가 많았던, 미성숙했던 고린도교회를 향하여서는 이 세 표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가, 여러분이 잘 아는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에 가서야 맨 마지막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고 끝맺으면서, 이 세 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린도교회처럼 사랑이 없으면서 여러 가지 은사가 많이 나타나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은사는 나누라고, 덕을 세우라고 주신 것이지 자랑하라고 교만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Faith that works)와 사랑의 수고(Love that labors)와 소망의 인내(Hope that endures)가 함께 보여야 정말 건강한 모델교회라는 것입니다. 하나씩 살펴보기 원합니다.

첫째로, 믿음의 역사입니다. 이 믿음은 성도의 삶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고 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이 ‘믿는다’, 혹은 ‘믿음’이라는 단어가 약 500번 나옵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이 믿음은 영혼 구원을 받는 믿음이요(엡 2:8-9),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는, 정통 교리를 믿는 믿음이요(행 6:7; 갈 3:10-14), 또 이 믿음은 행함이 뒤따르는 살아있는 믿음입니다(약 2장).
특히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의 구체적인 믿음을 살펴보면 왜 바울이 ‘믿음의 역사’라고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이방신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후에 그들은 옛 우상신을 섬기던 삶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데살전 1:9-10). 부도덕적인 삶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의 소문이 주위에 퍼진 것이었습니다. 둘째, 핍박이 심해도, 환란 중에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섬겼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더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란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데살전 3:7-8)고 하였습니다. 셋째, 물질에 대한 희생과 너그러움이 있었습니다. 나눔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자신들이 어려워도 예루살렘 교회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풍성한 헌금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편지에서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란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써 지나도록 자원하여”(고후 8:1-2) 자기들 편에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역사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선물로 받은 것을 믿고 감사하며, 성경이 가르치는 기본 교리를 믿는 자로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자처럼 믿기 전의 말과 행실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서의 말과 행실을 나타냄을 가리킵니다(엡 4:22-24).
우리 교회에도 이런 믿음의 역사가 있는지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우리 교인들의 삶에 이런 믿음에 따르는 변화된 모습이 보이며, 진보(progress)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소망의 인내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통 사용하는 소망(hope), 혹은 희망이라는 말은 불확실한 것에 대한 바람(wish)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사용하는 영원한 소망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확실하고(certain) 안전한(secure)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히 6:19)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 소망은 확실한 것을 믿기에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동역자들과 함께 데살로니가교회를 개척할 때에 복음을 듣고 믿은 초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확실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교회 소문이 퍼질 때 데살로니가교인들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데살전 1:10) 말했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인정하였습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데살전 5:1-2)!
바울이 그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강조한 이유는 그들이 받는 핍박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혹독한 핍박 가운데서도 주님 만날 소망을 가지고 인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미 주님 재림의 날이 왔다라고 속여 그들을 혼동시키는 것을 보고 미혹 받지 말라고 데살로니가후서를 써서 보낸 것입니다(데살후 2:2).
물론 우리가 갖는 이 영원한 소망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데살전 4:1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다시 오실 재림도 믿는 사람이요,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확실히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삶이 아무리 어려워도 인내하게 되지요. 이 소망이 확실하지 않는 사람은 인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이 소망을 확실히 붙잡지 못하여 인내하지 못하는 교인들이 있다면 건강한 교회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소망을 확실히 붙잡고 있기에 무슨 일에든지 잘 참아내는 모든 교인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사랑의 수고입니다.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건강한 교회의 세 표지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 세 가지가 다 연결되어 있는 덕목이지만, 믿음과 소망이 기초적인, 본질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사랑은 모든 것을 둘러싸는 덕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엡 5:2상)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 그런데 이 아가페의 사랑은 의로움이 함께 합니다. 죄를 미워하는 사랑입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이 사랑을 이야기하고선 이어서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8-9)고 하였습니다. 참된 사랑은 불의를 미워하고 의를 추구합니다. 가끔 의로운 분노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 사랑은 하나가 된 것을 지켜가려고 수고합니다. 그래서 교인들끼리 서로 섬기고, 용서하고, 용납합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에도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4)고 하였고, 갈라디아교회에도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하)고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신약성경에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너무 자주 나옵니다(고전 16:14; 엡 4:2; 히 10:24; 벧전 1:22; 3:8; 요일 3:11,23; 4:7,11, 요이 1:5 등). 그런데 놀라운 것은 데살로니가교회에는 이 사랑에 대하여 더 쓸 것이 없다고 합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데살전 4:10)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이 사랑의 특성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실천하기 쉽지 않은 내용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수고(labor)라고 했습니다. 이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고, 관대하고 너그럽기에 시기하지 않고, 겸손하여 자랑하지 않고, 예의를 지키고, 이타적이고, 쉽게 성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마음에 새기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내 자아를 죽이지 않고는, 희생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힘써 수고하여야 될 내용들입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사랑의 수고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건강한 모델교회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사람이 병이 들거나 아프면 괴롭습니다. 만사가 귀찮아 다 포기하고 싶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병 들어 건강하지 않으면 영혼을 구원하는 큰 일은커녕, 성장하고 성숙하기는커녕 문제들로 인하여 나뉘어 지고, 분쟁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저 마지못해 모이는 모임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오늘 신약 성경에 나타난 지역교회의 모습을 살펴 보았듯이, 우리 교회는 어떨까요? 저는 우리도 건강하지 못한 교회일까, 주님 뜻대로 하는 근심을 때때로 하곤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병든 부분이 있다면 치유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무슨 표지가 건강한 모델교회를 나타낸다고 하였습니까?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인내와 사랑의 수고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믿음의 역사들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영원한 소망을 확실히 붙잡고 끝까지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의 수고로,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서로 열심히 사랑함으로 하나됨을 지켜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표지를 다시금 새롭게 붙잡고 신앙생활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지속적으로 성장해가는, 성숙해가는 진정한 교회다운 모델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우리 교회를 세워주신 그 목적을, 사명을 잘 감당하여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교회처럼 주님께 기쁨이 되고, 칭찬 듣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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