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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
한태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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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18-08-30 (목) 10:50 |
ㆍ분 류 |
수요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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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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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가운데서도 든든히(데살전 3:1-13)
사랑의 힘은 굉장합니다. 부모의 자녀 사랑이나 남녀 간의 사랑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경험한 분들이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 힘은 인간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고난을 겪는 가운데서도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받으며 마치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 하나님 사랑을 경험하며 양육을 받아온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한창 은혜를 받는 중에 바울이 유대주의자들의 핍박으로 그들을 떠나게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동역자 실라와 디모데도 떠나는 바람에 영적 지도자들이 모두 데살로니가를 떠남으로 그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남아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도 유대주의자들과 로마제국의 핍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헤어진 후 그들이 염려가 되어서 나중에 디모데를 그들에게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를 통하여 들은 소식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건재하고 오히려 든든히 서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너무 기뻐서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참으로 사랑의 관계는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힘이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1-2절)라고 하였습니다. 갑자기 데살로니가를 떠나야 했던 바울과 동역자들은 베뢰아를 거쳐 아덴으로 갔습니다(행 17:13-21).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이제 믿은 지 6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아직 영적으로 미숙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의 마음에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여기 ‘참다 못하여”라는 표현은 너무 염려가 되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적인 아들이요,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하고 아덴에 머물면서 말입니다.
디모데를 보낸 목적은 그들을 굳게 하고 믿음에 대하여 위로하기 위하여서 였습니다(1절하). 여기 ‘굳게 한다’는 뜻은 벽이나 건물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의 말씀, 교리 등을 가르쳐서 흔들림이 없게 하며 믿음에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겪어야 하는 영적 전쟁을 잘 치르고, 핍박과 유혹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여러 환란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란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3-4절)고 한 것입니다. 즉 바울은 거의 초신자나 다름 없는 그들이 환란 때문에 요동하고 믿음이 약해질 것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흩어져서 교회가 없어질까 염려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가르칠 때에 자신과 동역자들도 핍박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을 그들도 친히 알게 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난 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말씀하신 것처럼, 고난 받는 것을 삶의 일부로,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도 믿고 난 후에 환란이 올 것이라고 경고한 것처럼 된 것을 그들이 안다고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자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믿음 때문에 오는 어려움을, 사탄 마귀의 공격을 받을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환란과 핍박이 있음을 당연하게 여겨야 합니다. 초신자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예수 믿고 나서 그저 복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환란과 겸하여 받는 것입니다(막 10:30).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바울은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5절)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초신자들의 믿음을 염려한 바울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이 환란 가운데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시험하는 자인 사탄 마귀가 그들을 삼키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과거에 믿는다고 하면서 핍박 가운데 배교한 자들을 보아왔던 것 같습니다. 시작은 잘 했는데 끝이 좋지 않게 된 사람들을 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좋은 소식을 디모데가 전해준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6절) 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의 보고에 바울은 안심할 뿐만 아니라 흥분하여 사랑의 마음을 담아 서신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만 그런 줄 알았더니 그들도 바울과 동역자들을 간절히 보고자 한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기뻤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난과 핍박 가운데 사역을 하는 바울에게도 큰 위로가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란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7-8절)! 그들의 믿음이 든든히 섰고 교인들이 흩어져 교회가 없어진 것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흥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있는 사랑의 마음을 전해 듣고는 바울은 살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믿음과 사랑은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힘이 되는 것은 양들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될 때입니다. 양들이 믿음이 자랄 때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여 자신이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밤낮으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9절) 하면서 기도하는 내용을 적었습니다.
첫째는, 그들의 얼굴을 보기 위하여 기도합니다(10절중). “너희의 얼굴을 보고” 한 것처럼, 바울이 그만큼 사랑하는 그들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11절) 기도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다시 그들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가르치기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그들의 믿음이 온전하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10절하).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하였습니다. 믿음이 굳세다고 하더라도 아직 부족함이 있어 더 배울 것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서로 사랑이 많아지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 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12절) 하였습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이 그들을 엄청 사랑하는 것처럼 그들도 서로 많이 사랑하고 모든 사람에게도 많은 사랑을 나타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강하게 하셔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설 수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3절)! 우리 모두는 예수님 재림하시면 다 하나님 앞에서 서서 판단을 받게 되는데, 그 때 이 세상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려고 애쓴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습니다(고전 1:30). 그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비록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그 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모든 죄를 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혀 주셨습니다. 이 의를 가지고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의 권면인,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고 명하신 말씀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결정을 내리고 거룩한 말과 행동을 하여야 합니다. 연약하여 죄를 지었을 때는 즉각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가 전도를 하거나, 교회로 인도한 새 신자나 믿음이 약한 초신자들은 계속 사랑의 돌봄이 필요합니다. 물론 처음 믿을 때에 경고해 주어야 합니다. 믿는다고 해서 모든 일이 다 잘되고 축복만 받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믿음 생활하면서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환란과 핍박이 있다고 말입니다. 사탄 마귀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경고하면서 좀 성숙한 성도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붓고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바로 제자도의 핵심입니다. 제자훈련입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이 모양 저 모양 어려움이 다 있습니다. 핍박도 있고, 환란도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랑의 말과 행동은 성도들에게 힘이 됩니다.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을 정말 사랑했습니다(데살전 2:7-8). 마치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바울과 동역자들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이 서로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오늘 그런 우리의 사랑의 돌봄이 필요한 분이 누구인가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실제로 사랑을 실천함으로 그 분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서로 환란 중에도 든든히 서서 사탄 마귀를 물리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의 만남을 위하여 기도하며, 믿음이 온전하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며, 서로 사랑이 많아지기를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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