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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5-24 (금) 05:11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023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창 39:1-23)
우리의 꿈 혹은 비전을 이루어가는 길이 결코 평탄하거나 쉽지는 않습니다. 요셉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꿈을 이루기까지 많은 고비들을 넘겼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도 어려움을 통과하고 있고, 또 앞으로 어떤 어려움을 만날지 모르지만, 요셉처럼 잘 이겨내어 결국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비전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어려운 환난 가운데서도 형통한 삶을 살았을까요?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오늘 본문 2절, 3절, 21절, 23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즉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선 여러분께서 깨달아야 할 것은 여기 형통한 삶이 아무 고생이 없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은 종, 노예(slave)의 신분입니다.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죽음이 눈 앞에 왔을 때, 르우벤의 호소로 생명을 건지게 되고, 이스마엘 족속의 상고(장삿군)들에게 팔렸습니다(창 37:25-28). 이 장삿군들이 애굽에 도착하자 다시 요셉을 애굽 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았던 것입니다. 즉 요셉은 남의 나라 장수의 집 노예가 된 것입니다. 참으로 그가 꾼 꿈과는 거리가 먼 현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종으로서 주인을 잘 섬겼습니다. 그랬더니 그 주인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 손에 맡겼습니다(4절). 그를 믿었다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요셉이 그 가정 총무가 되어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장수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5절)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된 까닭이 2절과 3절에서 말하는 대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셨기에 그 믿지 않는 주인도 하나님께서 그가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요셉을 보디발 시위대장의 집으로 팔리게 하신 것이요, 종으로서 성실하게 섬기며 일하는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하는 일마다 축복하시니 그 주인도 그를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위치에 있게 되었다고 해서 요셉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아니 더 큰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렇게 요셉을 신뢰하던 주인이 그를 잡아 바로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에 요셉을 잡아 넣습니다(20절). 왜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까?

죄의 유혹에서 신앙양심을 지키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6절에 보면 요셉의 용모가 준수하고(well-built), 아담하였다(handsome)고 합니다. 그 때 요셉의 나이가 아마 18-19세였을 것입니다. 보디발 장관의 아내는 그런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성적인 유혹이지요. 먼저는 눈짓하다가 동침하자고 하였습니다(7절). 이 때에 요셉은 그녀에게 당신에게는 내 주인인 남편이 있지 않느냐. 내 주인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나를 믿고 간섭하지 않고 다 맡겼으되 당신만큼은 금한 것이라고 하면서 거절하고 뿌리칩니다(8-9절). 그런데 그 때 한번 만이 아니라, 그 이후 날마다 계속 유혹을 했다고 합니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10절)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한번은 집에 아무도 없을 때에 요셉의 옷을 붙잡고 동침하자고 까지 하였습니다(12절). 그래도 요셉은 자기 겉옷을 빼앗겨 버릴지언정 도망쳤습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눈이 참 귀합니다. 그래서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눈보다 더 귀하고 밝은 것이 있습니다. 양심입니다. 특히 믿는 자들에게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한 신앙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영혼의 눈입니다. 육체의 눈이 잘 안보이면 얼마나 답답하고 부자유스럽고 안타깝습니까? 그런데 영혼의 눈인 신앙양심이 어두워지면 그 삶 자체가 온통 캄캄해져 버립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헤매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9)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이 신앙양심을 지켜 살았던 것입니다.

또한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으로 유혹을 이겼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9절하)라고 보디발의 여인에게 선포합니다. 요셉은 남의 아내와 동침함이 하나님께 큰 죄악인 줄 알았습니다. 이 성적인 죄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큰 문제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사실 성경을 잘 살펴보면 요셉이 형들에게 버림받고 노예로 팔려가서 종살이는 하는 동안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지만, 이 시간까지 한번도 여호와 하나님을 언급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죄의 유혹이 심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고, 그 하나님을 보디발 장관의 아내에게 선포했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신앙이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의 구체적인 삶으로 나타났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신앙생활, 하나님 앞에서의 삶, CORAM DEO(before God)의 삶에서 그의 신앙이 빛을 발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바라보고 계시며,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까? 우리가 때때로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심을 잊기 때문에 죄의 유혹에서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요셉은 비록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하더라도, 그 고생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적인 유혹을 피하다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 약이 오른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14-15절). 보디발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맡기는 가정 총무로서 그렇게 믿었던 요셉이었지만, 자기의 아내를 겁탈하려고 하였다고 하고, 그 물증으로 그의 겉옷을 들고 있는 아내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이런 비슷한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의롭게 살고자 하는 자들이 고난을 당하고, 불의하고 부정하고 사는 자들이 잘사는 것 같습니다. 때때로 불공평한 이 세상의 삶이지요. 요셉처럼 의인이 희생양(victim)이 될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다 사탄, 마귀들의 장난입니다.

결국 요셉은 애굽 왕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두운 감옥 속에서도 요셉은 낙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자신이 떳떳하기에 담대하게 지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양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어도 내 마음에는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평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21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인자(favor)’라는 말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감옥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한 삶을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23절 하반절에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 임마누엘의 은혜가 요셉의 감옥 생활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감옥이라고 해서 어두운 삶, 답답한 삶, 외로운 삶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감옥이었기에 그 속에서도 빛된 삶, 즐겁고 기쁜 삶, 전혀 외롭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전옥, 즉 간수장에게 요셉이 은혜를 입어 그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22-23절상)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주위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환경이 열악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한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로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셉에게 애굽은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지옥과도 같은 어둡고 캄캄한 곳입니다. 노예생활의 애굽입니다. 감옥생활의 애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그곳에서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이 보고 판단하기에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비참한 생활을 한다고 여길지 몰라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면서 은혜를 베푸셔서 말입니다.
즉,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형통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무서운 죄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했습니다. 날마다 유혹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신앙양심에 따라 산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실로 하나님은 요셉의 살아있는 아버지, 어디에서든지 동행하시는 아버지, 위로의 아버지였습니다. 요셉을 도우시는 하나님 아버지였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꿈, 비전과 현실 사이에서 좌절하거나 낙망하지는 않습니까? 허락하신 비전이 너무 멀게 느껴지는 적은 없습니까?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좌절하고 낙망해야 한다면 바로 요셉이야말로 그렇게 낙심하여 삶을 포기하여야 했을 것입니다. 형들에게 꿈을 이야기 했다가 죽을 뻔하고, 다른 나라의 노예로 팔려가고, 종으로 열심히 주인을 섬기고 일했건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다면 우리는 자포자기하고 죽을 생각까지 하지 않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꿈과 현실의 모순 속에서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매순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의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신앙양심을 지키며 살았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종살이를 하던, 감옥에 갇히던 곳곳에서 사람들로부터 은혜를 입었습니다.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했습니다. 꿈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요셉보다 더 큰 은혜를 체험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요셉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아들을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게 하신 이 엄청난 진리를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놀라운 사랑의 진리를 깨달아 알고 있으니 사실 더 큰 은혜가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약속대로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여 그 이후 온 성도들 심령에 내주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도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롬 8:26)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꿈이 있다면, 비전이 있다면 아무리 지금 현실이 캄캄해 보여도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보고 계시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심을 확실히 믿고,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살며, 신앙양심을 지켜 산다면 꿈이, 비전이 이루어지기 전이라도 형통함의 축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고 박종수 목사님의 유훈에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의 7대 실수를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1.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는 일을 걱정하는 것
2.    사소한 일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
3.    남을 나와 똑같이 행하도록 요구하는 것
4.    끝까지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
5.    실수나 실패를 할까 염려하는 것
6.    실수를 알면서 반복하는 것
7.    생각 없이 뱉어 버리는 말

우리는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허락하신 비전이 이루어지기 까지 아무리 힘든 현실이라도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성실하게, 신실하게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매순간 형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시편 기자처럼 여러분 자신에게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 42:5, 11)고 외치십시오.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 17:7-8)고 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사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함의 축복을 체험하되기게 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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