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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9-05 (목) 10:42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27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 (딤전 4:11-16)
4장에 들어와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참 목자는 양들이 거짓 교훈에 휩쓸려 넘어가지 않도록 경고해야 하고, 성경을 연구하며 외식하는 자들을 물리치고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어서 몇 가지 더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생활을 하라고 합니다.

우선 우리 믿는 자의 구세주가 되시며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것과 가르치신 것을 잘 가르치라고 합니다.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11절)! 영적 권위를 가지고 제자훈련을 시키라는 것입니다. 좀 젊다고 주눅들지 말고 담대히 명하고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교인들 중에는 목사를 연령이나 관계로 보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학번이나 군번으로 따지면서 선후배의 관계로 말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12절상) 한 것입니다. 여기 ‘연소함’이라는 원어의 뜻은 40세가 되지 않은 젊은이를 의미합니다. 디모데가 40세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즉 40세가 아직 안 되었어도 지도력은 나이가 아니라 영적인 성숙과 관련되어 있기에, 인간관계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로 다스리기에 교인들에게 말씀을 가르침과 함께 본이 되는 말과 행실을 강조합니다.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12절하)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말하는 것의 본이 되라고 합니다. 그러려면 마음에 주님의 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좋은 것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위선자들을 꾸짖으시면서,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4절하-35절)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마음에 선한 것으로 가득한 사람은 선한 말이 나오지만, 악한 것으로 가득한 사람은 악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즉 말하는 것의 본이 되려면 평소에 마음에 선한 것으로 채워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행실에 본이 되라고 합니다. 행실도 말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예수님을 추구함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이 더해감으로, 우리의 속사람이 더 순결해짐으로 행실에서 성숙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진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 3:13)고 하였고, 베드로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성품을 닮아 주님의 행함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랑의 본이 되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과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큰 차이는 자기 희생에 있습니다. 자기중심적, 이기적이지 않고 이타적입니다. 예수님처럼 목숨까지 버리는 사랑입니다. 바울이 보인 사랑입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고후 12:15)고 하였습니다. 넷째로 믿음에 본을 보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여 그의 모든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정절에 본을 보이라고 합니다. 성적인 순결을 말합니다.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충실함을 말합니다. 성적인 순결은 영적인 헌신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적인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파멸시키고, 지도력을 상실하게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생활에 본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13절)고 합니다. 여기 ‘착념하라’는 헌신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 생활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예배에서는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공적으로 읽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권하는 것은 위로하기도 하며, 경고하기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양심에 호소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르치는 것은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종교개혁가들의 가르침을 보면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강해하면서 가르쳤습니다. 루터도 칼빈도 다 성경책 별로 설교하였고, 그것이 나중에 주석책으로 발간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의 개혁주의자들도 그렇게 설교를 했고, 성경공부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그렇게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께서 목회자로 부르신 소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되 영적 권위를 가지고 그 은사를 따라 부지런히 감당하라고 합니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14절) 하였습니다. 결코 목사 안수를 받을 때에 주신 은사, 곧 예언의 말씀의 은사를 무시하지 말고 담대하게 선포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로 불러주신 그 소명을 확인하는 안수식을 기억하라고 하면서 힘들더라도 그 책임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를 섬기는 교인들도 그 소명을 인정하고 잘 따라가야 할 책임이 있음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선한 일꾼이 되기 위한 자질들을 설명한 다음, 바울은 이 모든 일에 전심을 다하라고 합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15절)고 하였습니다. 사역을 할 때에 고통이 따르겠지만 인내하며 계속 꾸준히 최선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그저 가끔씩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매일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살고, 숨쉬고, 몰두하라는 것입니다. 아니 일이 아니라 삶 자체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19세기 영국의 역사가이자 기독교 사상가였던 Thomas Carlyle 은 ‘잠자면서 성자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전심전력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성숙해지는 것 아닙니다. 참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해야 진보가 있습니다.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저 세월이 오래 지났다고 저절로 진보가, 성숙해지는 것 아닙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여전히 어린아이의 신앙에 머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아직도 우유병을 물고 있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결국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결론적으로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으로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16절)고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가장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대상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입니다. 다른 사람은 우리의 지배를, 다스림을 잘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심지어 자녀들도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은 자신의 삶을 잘 통제하고 다스리고 살아가는 능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잘 받으며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을 지켜나가면서 본을 보이면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진정한 리더십, 지도력입니다.
그래서 디모데가 이 일을 인내하면서 계속하면 자신이 받은 구원을 완성하게 되고, 그를 듣는 자들도 구원하게 된다고 합니다. 인내는 구원 받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구원은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심과 함께 구원이 시작되고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나중에 온전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즉 훈련된 사람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비록 종종 시험이 있더라도 헌신이 변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로서 본이 되는 삶과 하나님의 말씀이 지도자 자신과 그가 인도하는 사람들을 지켜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영적 리더십이나 권위는 인간적인 자격이나 조건, 신분이나 나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역은 인간관계를 잘 갖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권위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목사는 교인들보다 더 순수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교인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목사가 교인들보다 성경을 보는 수준의 차이는 분명히 높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지성이나 영성을 더 개발하고 훈련시켜 나가야 합니다. 목자가 양떼를 인도하고 갈 때에는 줄을 메어서 끌고 가지 않습니다. 자신의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양떼들을 목자의 소리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목사라도 말씀에 능통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말씀을 연구하고 소화시켜 설교로 만들고 하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문제는 설교와 삶이 따로 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교인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진보를 나타내야 합니다. 그래야 지도력이 발휘됩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목사뿐만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들은 마찬가지입니다. 장로, 안수집사, 권사, 구역장, 권찰이면 평신도들보다, 구역원들보다 성경을 더 많이, 잘 알아야 합니다. 더 성경공부를 많이 하고 소화시켜서 인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생활이 깊어야 합니다. 지성과 영성이 더해져야 합니다.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본을 보여야 합니다. 더 성숙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함께 교제해 가면서 시간이 흐르게 되면 그들에게 우리 지도자들의 진보를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더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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