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2,605,341
오늘방문 : 58
어제방문 :
전체글등록 : 3,237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2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1-06 (월) 08:2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27    
품격이 있는 교회(성도) (벧후 1.3-7)


2020년 새해를 맞았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작년에 25주년 맞이하여 뜻 깊은 행사들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했더니 행사들마다 놀랍게 역사하셔서 많은 분들이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제 2020년 새해를 맞으면서 앞으로 우리 교회가 더욱 추구해야 할 가치를 생각해봅니다. 5년 후, 2025년에 우리 교회의 모습이 어떨까? 어떻게 성장해야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실까? 개척할 때부터 우리 교회는 이 지역사회에 모범이 되는 모델교회를 꿈꾸며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달려왔습니다. 사람들만 많이 모이는 교회이기 보다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들처럼,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모여 이 지역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하여 선한 영향을 끼치는 교회를 세워나가기를 소망했습니다. 양보다는 질이 있는 교회 말입니다. 내용이 있는 교회 말입니다. 애초에 경향가든교회로 이름을 했더니 갈비 음식점 이름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그 때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를 오면 실제로 영적인 양식, 맛있는 먹을 거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만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교회를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4년 전에 가든교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에덴동산처럼 쉼이 있는 교회로, 아름다운 교회로 되었으면 했습니다.
이제는 내용이 있는 교회에서 품격이 있는 교회를 추구하기를 원합니다. 격이 있는, Class 가 있는 교회 말입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품격이 있는, 고상하고 덕이 있는, 아름다운 향기를 품어내었으면 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단정한 교인들로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예수님이 그런 품격이 있는 분입니다. 상스럽지 않은 분으로, 존중할만한 분으로 성경 전체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상스럽지 않고 격이 있는 말과 태도와 행동을 나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배롭고 큰 약속을 받은 자들이기에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핍박을 피해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 성도들에게 우선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주어졌다고 합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니라”(3절)고 하였습니다. 작년 교회 표어처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앎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영광과 덕(goodness)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삶에 필요한 것들이 주어졌습니다. 바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약속대로 보내주신 성령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4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기리기 위하여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의 사역과 관련하여 주신 보배롭고 큰 약속입니다(요 14:15-17; 16:7, 행 1:4-5, 8). 우리가 정욕으로 세상의 썩어질 문화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도록 약속대로 성령님을 보내시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죄성(sin nature)의 문화를 물리치고, 신성(divine nature)의 새 문화를 창조하게 하신 것입니다. 정욕적이지 않고, 상스럽지 않고, 세속적이지 않고, 시기와 질투하지 않고, 편가르기나, 거짓과 다툼이 없고, 오히려 화평과 관용하며 양순하고 긍휼과 선함이 가득한 모습이 드러나게 하신 것입니다. 품격이 있으며 거룩한 모습으로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5-7절)고 하였습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Savior)와 주(Lord)로 믿는 기본적인 믿음이 있다면, 거기에 걸맞게 덕을 나타내라고 합니다. 여기 ‘덕(virtue)’은 도덕적인 탁월함을 뜻합니다. 불신자와 달리 우리는 도덕적으로 부끄럼이 없어야 합니다. 아니 불신자들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믿는다는 사람들이 부도덕하게 살면 주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며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보다 더 욕을 먹게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가지고 사는 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고 ‘지식’이라 함은 머리로만 아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지식, 즉 생활에서 실천되는 지식을 뜻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바로 알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지 아니면 상처가 되는지 구별할 수 있는 지식입니다. ‘절제(self-control)’는 자신의 욕구를 통제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뜻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기꺼이 그런 것들을 버릴 수 있는 힘이 절제입니다.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세상적인 것에 대해 전혀 부러움이 없는 것입니다. ‘인내(perseverance)’는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잘 지고 간다는 뜻입니다. 인생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것을 다루는 용기를 말합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잘 견디는 것입니다. 억지로 어쩔 수 없어서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에 견디는 것입니다. 목숨조차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경건(godliness)’은 3절에서도 언급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타나는 태도를 뜻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고 믿기에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죄를 거절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선한 말과 행동으로 경건함을 나타냅니다. ‘형제우애(brotherly love)’는 가족 간의 사랑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주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이룬 교우들을 친 형제, 자매로 여기며 서로의 짐을 지고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한 식구이니 당연히 짐을 나누어 집니다. 힘들어하는 형제, 자매를 나 몰라라 하지 않습니다. 손을 내밀어 붙잡아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사랑(agape)’은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아는 희생적인,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레 19:18; 마 22:39) 혹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말씀하시며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따지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것이 없어도,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거저 주는 사랑입니다. 아무리 내게 잘못을 해도 예수님처럼 용서하고 용납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 예수 그리스도의 특성들이 우리의 삶에 보여지는 것이 품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특성들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에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3절에서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이미 주셨다고 했고, 4절에서는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약속을 하신 대로 보내주셔서 우리 안의 성령님이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대로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면 됩니다. 나를 양보하면 됩니다. 그러나 내 자아를 양보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면 결코 품격이 있는 성도가 되지 못합니다.
즉 하나님의 인격이 우리의 인격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매순간 성령님께 항복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자신의 몸을 쳐 주님에게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고전 9:27). 말씀과 기도로, 신앙성장을 위한 독서로, 자신보다 성숙한 믿음을 가진 분들과 자주 교제함으로 믿음의 교양을 쌓아야 합니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덕을 쌓으려고 하고, 말씀의 지식을 넓혀가고, 실제로 적용하고, 절제하며 인내하고, 경건하기를 힘쓰며, 형제우애와 이웃사랑에 힘써야 주어지는 것입니다. 품격이 있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의 교양이 없다고, 품격이 없이 상스럽다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 아닙니다. 그런데 기왕이면 말씀대로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만족하면서 아무렇게나 산다면 어쩌면 그 믿음이 참 믿음인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갓난아기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라듯이, 참 믿음이라면 자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믿고 난 후에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각자 고유한 개성을 주신 것이 있기에 변하지 않는 성격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성격이라면, 주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성격이라면 반드시 고쳐져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내려놓으면 성령님께서 고치십니다. 그래야 복음이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이민교회들, 교인들 가운데 품격이 없어서 교포들에게 욕을 먹었던 경우가 있지 않았습니까? 반대로 어떤 교회는, 교인은 품격이 있어서 교포들에게 칭찬을 듣지 않습니까? 주님을 몰랐던 자들도 교회로 인도가 되지 않습니까?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로 인도되는 이유는 예수님에게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하고 싶은 인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로 품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성경에 품격(dignity)이라는 단어와 동일한 의미의 단어를 찾아보았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지혜로운 현숙한 여인을 표현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바로 잠언 31장에 말입니다. 솔로몬은 지혜로운 현숙한 여인은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잠 31:25-26)라고 할 때, 품격을 ‘존귀’로 번역을 했습니다. ‘능력’은 속으로 강함을 뜻합니다. 외유내강을 말합니다. 이런 여인을 아내로 둔 남편은 복 있는 자로 설명을 하면서, 이런 품격이 있는 여인은 훗날 웃게 된다고 합니다. 그녀의 입에서는 지혜의 말이 나오고, 인애의 법 곧 사랑의 말이 나온다고 합니다. 즉 품격이 있는 성도는 속 사람이 강하며 존귀하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언급한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품격과 가장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가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딤전 3:8) 할 때 쓰인 ‘단정하다(dignify or worthy of respect)’ 입니다. 바울은 영의 아들 디모데 목사에게 에베소교회를 목회하면서 장로를 세울 때 어떤 사람을 세우는지 그 자격을 설명한(딤전 3:2-7) 후에, 집사들의 자격을 말하면서 제일 먼저 집사들이 단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집사의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품격이 있는 사람이 집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자에게도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11절) 첫째 자격에서 이 자질을 언급합니다. 여기 ‘여자들’은 남자 집사들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늘날 여자 서리집사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남자든 여자든 집사라면 단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장로들 혹은 장로들의 부인들이나 권사들도 말할 것도 없지요.
그러니 사실 모든 믿는 자들은 품격이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정도 차이가 있겠지요. 성숙도의 차이가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라면 신앙연륜이 쌓여갈수록 누구나 더 품격이 있는, 품위가 있는 성도가 되려고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를 맞아 여러분은 무슨 결심을 했나요? 조금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새해를 맞지 않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할 것들을, 고칠 것들을 과감하게 고치고, 버릴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미래를 위해 무언가 결단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새해를 맞았으면 개인적으로 새 출발을 위하여 새롭게 해야 할 일들을 시작합니다. 새로운 습관들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해봅니다. 얼마나 멋진 사람입니까?
그런데 여러분의 목사로서 교회적으로 새해의 바램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모두 내용이 있는 교인임은 물론, 품격이 있는 교인들이 되어서 우리 교회가 격이 있는 교회로 이 지역사회에 빛과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힘들고 지친 교포들이나 이곳 저곳에서 상처를 받은 심령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는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받게 되었으면 합니다. 말로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내용이 있고, 고상하고 품위 있는 교회임을 깨닫고 자신도 우리 교회에 속하여 품격이 있는 사람이 되기 원하는 분들이 많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이런 주님의 성품들을 구체적으로 실천해보기 원하는 리스트를 작성해 보십시오. 그래서 매일 그 리스트를 마음에 품고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마 올해 마지막 날이 되어서 뒤돌아 보면 자신이 변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입니다. 그런 놀라운 은혜가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098 수요설교 제자된 삶의 비결 관리자 2020-09-18 1
1097 주일설교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4) 한태일 목사 2020-09-13 17
1096 수요설교 영적 지도자의 헌신 (딛 1:1-4) 한태일 목사 2020-09-10 6
1095 주일설교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3) (눅 11:4) 한태일 목사 2020-09-06 13
1094 주일설교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2) (눅 11:2-4) 한태일 목사 2020-08-30 19
1093 수요설교 잊지 못할 사람들 (딤후 4:9-22) 한태일 목사 2020-08-27 11
1092 주일설교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1) (눅 11:1-4) 한태일 목사 2020-08-23 22
1091 주일설교 더 중요한 것을 먼저 하십시오 (눅 10:38-42) 한태일 목사 2020-08-16 22
1090 수요설교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딤후 4:6-8) 한태일 목사 2020-08-13 11
1089 주일설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참뜻 (눅 10:25-37) 한태일 목사 2020-08-09 34
1088 수요설교 잊혀진 축복(2020.08.05) 관리자 2020-08-07 15
1087 주일설교 무엇으로 기뻐하십니까? (눅 10:17-24) 한태일 목사 2020-08-02 40
1086 수요설교 네 직무를 다하라 (딤후 4:1-5) 한태일 목사 2020-07-30 21
1085 주일설교 Ministry Manual (눅 10:1-16) 한태일 목사 2020-07-26 48
1084 수요설교 기업을 이을 복된 자녀(갈 4:1-7) 관리자 2020-07-24 28
1083 주일설교 주님을 따라가려면 (눅 9:51-62) 한태일 목사 2020-07-19 36
12345678910,,,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