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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1-30 (목) 11:09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94    
믿음의 유산 (딤후 1:1-8)
우리는 다음 세대에 우리의 믿음을 전수하고 있는지요? 우리의 후손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할 수 있나요? 진실한 믿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을 갖고 살며, 우리의 후손들에게 그런 믿음을 남겨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그런 믿음의 유산을 받아 신실하게 주님을 위하여 수고했던 디모데가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자신이 죽을 날이 가까워 옴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긴박감을 느끼며 디모데전서에 이어 사랑과 배려가 담긴 편지를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썼습니다. 주님을 신실하게 신뢰하며 담대하게 행할 것과 고난에 동참할 것을 격려합니다.
우선 바울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1절) 라고 합니다. 즉 자신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당시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것을 확신시키며,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사형 집행 앞에 그리스도 예수를 보게 될 기대감과 그 생명의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될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감옥(토굴)에서 다시 나가게 되리라는 기대를 전혀 할 수 없었던 그는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2절) 라고 축복합니다. 바울은 독신으로 평생을 살았기에 당연히 디모데는 친 아들이 아니라, 그의 영의 아들로 생각하고 마지막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극진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주님으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디모데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냥 형식적인 인사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애정을 가지고 주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디모데 위에 넘치기를 바라면서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디모데를 인하여, 그의 믿음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3절) 하였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감사하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청결한 양심으로 3대에 걸쳐서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이었습니다. 여기 ‘청결한 양심(clear conscience)’은 말 그대로 순수하고 깨끗한 신양양심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 3대 째 내려오는 청결한 양심의 믿음을 5절에서 설명합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 확신하노라”! 청결한 양심의 믿음을 여기서는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진지한(sincere) 믿음, 가식이 없는, 위선이 없는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22)에서 ‘거짓이 없이’로 사용되었습니다. 디모데의 이런 믿음은 그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물려 받은 유산이었습니다. 로이스나 유니게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헬라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지금 유대주의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 여자들이었습니다(행 16:1). 즉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로이스와 유니게에게 신앙교육을 받았던 디모데였던 것입니다. 바울이 만났던 로이스와 유니게에게서 보았던 청결한 양심의 순수한 믿음을 디모데 속에도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바울은 그런 믿음을 가진 디모데를 보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4절) 합니다. 디모데가 바울과 헤어지면서 눈물을 흘린가 봅니다. 왜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자신의 연약함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생각하면서 바울과 헤어져서 홀로 목회를 한다고 하니 외로움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아니 자신의 능력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일에 좌절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영의 아버지와 헤어진다는 사실 때문에 슬퍼해서도 눈물을 흘렸겠지요. 그래서 바울도 죽기 전에 그를 만나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만날 때의 기쁨이 얼마나 클 것인지 상상하며 말입니다. 마치 헤어진 자녀를 위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바울은 디모데 안에 있는 연약한 모습을 생각하고 그를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오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6-7절)라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안수 받을 때의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참된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분명히 그 안에 하나님의 은사, 곧 성령님이 내주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모든 능력을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은사가 계속 불일듯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 3:20)라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그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공격(딤전 1:3-7; 4:6-7)과 몸이 약하여(딤전 5:23) 의기소침해질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즉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선포할 때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롬 5:5)라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근신하다(self-discipline)’는 뜻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분별력을 가지고 신중하고 명료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롬 12:3) 자신을 절제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자신을 쳐서 주님의 뜻을 복종할 수 있었던 그 능력입니다(고전 9:27). 그러니까 우리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담대하게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가진 자로서,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8절)고 하였습니다. 우선 복음을 전하는데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부끄러움은 종종 침묵을 통해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힌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는 자들과 하나가 되라고 합니다. 오늘날의 말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열심히 믿기에 욕을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방을 받고, 욕을 먹더라도 오히려 자랑스럽게 고난에 동참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과 함께 고난을 기꺼이 받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5:18-20). 세상이 자신을 미워한 것처럼 제자들도 미워하고 핍박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도 이 서신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고 하였습니다. 당연하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보수 개혁주의의 신앙을 가진 것이 정말 큰 복입니다. 여러 교파가 있고, 신앙 칼라도 다 다릅니다. 그 중에서 성경의 진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내일이나 변하지 않음을 믿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최고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도 복음 때문에 핍박이, 고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함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바울처럼, 아니 디모데처럼 청결한 양심의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담대히 복음을 위하여, 주님 나라 위하여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그런 청결한 양심의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셨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시고, 훈련시키시는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능력을 주십니다. 그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담대히 우리 자신을 성령님께 내어드리는 책임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누구나 연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으로 연약함을 극복하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다가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겨내도록 도우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확실히 믿으십시오.
또한, 우리의 다음 세대에 이러한 믿음을 계승해야 합니다. 몸소 본을 보이며, 가르치며,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을 주님에게 의탁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그들도 우리와 같이 부르신 부름에 합당한 사명을 잘 감당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정들에게 그런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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