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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2-03 (월) 06:1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1    
메시아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확실히 믿으십시오 (눅 7:18-23)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성도들이라고 하여 의심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 혹은 예수님에 대하여 의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신앙이 성장하려면, 성숙해지려면 의심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진리를 알기 위한 갈망이 있다면 말입니다.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롬 14:1)고 하였습니다. 사실 올바른 신앙생활은 맹신이 아닙니다.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 감화 감동시키시면, 우리의 지정의를 사용하여 깨닫게 하시고 확신하게 합니다.
그러면 신앙생활하면서 믿음이 흔들리는 의심이 찾아올 때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이 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백부장의 종의 죽을 병을 치유하시고(7:1-10), 나인성 과부의 죽었던 아들을 살리셨다는(7:11-17) 소식이 옥에 갇힌 세례 요한에게까지 들린 것이었습니다(마 11:2). 요한의 제자들이 들려준 것입니다(18절). 누가복음 3장에서 세례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기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으로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 분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3:16). 그리고 요단강에서 예수님에게 세례를 배풀 때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마 3:16-17).
그 후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디바가 로마로 가는 길에 그의 동생 헤롯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만나 좋아하게 되어 유혹을 합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갈릴리로 돌아온 후에 부인과 이혼을 하고 헤로디아와 결혼을 합니다. 세례 요한이 이 사실을 듣고 공공연히 헤롯 왕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을 하자(눅 3:19-20), 헤롯이 군중들이 두려워 금방 죽이지는 못하고 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마 11:2, 14:5).
그로부터 1년 정도 지난 즈음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관해 의심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 이가 당신이 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19절) 하니, 그 제자들이 가서 그대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20절). 사실 세례 요한의 경우나, 대부분의 믿는 자의 경우에 의심이라기 보다 혼동(confusion)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요한은 구약에 계시된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에 의심을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만 이제까지 알고 있는 메시아에 대한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일부분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기대하고 있던 메시아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눅 3:17)고 예언한 것처럼 심판의 주로 오시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대가 부분적으로라도 이루어지지 않자 혼동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경우처럼 사실 복음서에 나타난 사람들의 의심에 대하여 꾸짖으시는 주님의 말씀은 거의가 신자들을 향한 것이지 불신자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이었던 당시에는 많은 진리의 말씀들이 불분명하여 설명이 필요했고,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12제자에게도 반복하여 예수님께서는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리고 "언제까지 의심하려느냐"(마 14:31; 21:21; 막 11:23; 16:11; 눅 12:28 등)고 꾸짖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의 의심을 이해는 하지만, 결코 그 의심들에 대하여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도 성도들에게 경고하기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약 1:6)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요한은 이미 주님의 오심은 메시아 도래임을 선포하였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하며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하며 그의 겸손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예수님께 "오실 그 이"가 참으로 당신이냐고, 아니면 다른 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오실 그 이"라 함은 메시아, 만왕의 왕을 가리킵니다(시 118:26; 마 3:11; 막 11:9).
어떤 면에서는 세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낸 자체가 그에게는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의 마음에 예수님이 정말 메시아며, 그를 구세주로 믿지만, 그 진리에 대한 뒷받침이 될만한 일들을 겪어보지 못했기에 확신하지 못하고 의심의 구름이 끼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믿고는 있지만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의 믿음에 혼란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지하 감옥에 갇혀서 설교도 못할 뿐 아니라 거의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겨우 가끔 찾아오는 그의 제자들의 방문을 받고 있던 요한은 어쩌면 메시아에 대하여 점점 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메시아라면 왜 속히 악한 자들을 심판하지 않고 계신가’ 하는 의심이 든 것 입니다. 그러니, 세례 요한과 같은 선지자도 혼동이 오고 의심을 하는 데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세례 요한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적어도 세 가지 정도의 그 의심의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아주 어려운 환경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세례 요한의 경우는 최악의 상태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담대히 죄를 죄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분봉왕 헤롯에게 조차 말입니다. 그 신실함으로 인하여 옥에 갇혔습니다. 헤롯 안디바에 의해 사해의 북동쪽에 자리잡은 무덥고 고립된 Machaerus 라는 고성(古城) 지하 감옥에 갇힙니다. 그리고, 약 1년 정도가 지난 후에 소식을 듣고 자신의 두 제자를 예수님께 보낸 것입니다.
참 선지자였고, 참 신자였던 그가 지하 감옥의 오랜 생활 속에 구약에서 말하는 위로의 하나님(시 119:50; 사 51:12)이 왜 지금 자신을 이 어려운 상황에서 악한 자를 심판해주시지 않는지 의아하였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참 메시아라면, 왜 이 종에게 이렇게 고통 가운데 내버려 두시는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공의는 다 어디에 있는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여 찬송의 옷으로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사 61:1-3) 약속하신 메시아가 예수님이 정말 아닙니까?
어떤 성도가 수년 동안 주를 희생적으로 신실하게 섬기었는데 큰 환란과 어려움이 계속 닥치게 되면 웬만한 믿음이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하여 의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의심을 계속하게 되면 결국 사탄의 궤계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의적으로 죄를 계속 짓는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가 큰 환란을 당하면 사탄의 거짓을 믿으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진리를 의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세례 요한은 자신이 품고 있는 의심과 혼동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신은 옥에 갇혀 갈 수 없었기에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낸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호소하며 부르짖는 심령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왜 나를 도와 주지 않느냐고, 제발 나를 좀 도와 달라고, 확신을 갖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주님의 큰 사랑과 자비가 그 호소에 응답을 하십니다. 세례 요한을 위하여 제자들 앞에서 기적을 베푸십니다.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21절)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그가 흔들리지 않으면 영적 축복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23절).

둘째로, 불완전한 계시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듣고는 있었지만,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세례 준 이후로 직접 만나본 경험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옆에서 직접 듣고 지켜본 제자들도 믿음이 적다고, 의심을 한다고 주께 야단을 맞았는데 하물며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요한이야, 약 1년씩이나 지하 감옥에서 고립된 생활을 한 후에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물론 그 제자들이 주님을 직접 만나고 경험한 사실을 지금 말해주는 것도 간접으로 대하는 진리이지만, 예수님께서 특별히 요한을 위하여 그의 제자들 앞에서 베푸신 기적들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정말 메시아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진리에 대한 불완전한 지식으로 말미암아 의심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정확하고도 올바른 이해의 부족 때문입니다. 성경의 중요한 진리들을 정확하고 올바로 깨닫고 있는 성도들은 의심하거나 혼동을 잘 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올바로 깨달으면 의심은 아침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부활을 의심했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을 풀어 설명해 주심을 듣고야 확신했던 것입니다(눅 24:25절 이하).
그래서 우리 모두는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의심을 물리치고 확실히 믿고 살기 위해 말입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하신 것처럼, 우리 가든교회의 성도들은 진지하게 말씀을 듣고, 읽고, 배우며 더욱 확실한 신앙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셋째로, 세상적인 영향 때문입니다. 신실하고 경건했던 세례 요한이라고 완전히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실 그 이"가 메시아였기에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기대하던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요?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면 무엇보다도 로마의 식민 지배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줄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믿음이 없는 이방인들이나 잔혹한 로마인들은 포함되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줄로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로마 제국에 대하여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도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또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면 모든 고통에서 자유함을 줄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모든 병, 굶주림, 환란을 제거해 주실 것으로 알았습니다. 비록 주님께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고 먹여주시고 하였으나 전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로부터 건강, 부, 명예, 즉각적인 축복 등을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의 정치적인 왕이 되기를 거부하신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이나, 로마의 정치, 군사 제도를, 부패한 이스라엘의 종교제도도 바꾸려 하지 않으시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아직도 죄가 만연하였고, 불의가 득세함이 여전하였던 것입니다. 심판이 임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기대하는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그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의심이 생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신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혼동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을 읽을 때에도 사람의 생각으로,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진리나 그 계획을 이해하려니 깨닫지를 못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며, 그의 계획이나 성품을 이해하지 못합니다(고전 2:14; 요 10:24-26). 무지와 불신앙은 항상 사람의 영적인 눈을 가립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마음이 혼란해지고 머리가 혼동되어 의심하는 세례 요한을 위하여 주님은 그 제자들을 향하여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22-23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단지 ‘내가 메시아니 의심하지 말라. 그냥 믿어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단순한 대답이 요한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메시아임을 확인하는 증거를 직접 보여 주었습니다. 요한을 위한 직접적인 증거였습니다. 요한이 지금 겪는 육체적인 고통으로부터의 자유함을 허락하지는 않으셨지만,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사 35:5; 61:1). 즉 ‘요한아, 이것은 전주(prelude)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곧 하나님 나라가 펼쳐질 것이다. 지금은 내가 관심이 있고, 내가 고치기 원하는 것을 고치듯이, 나는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라는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곧 헤로디아의 요청에 의하여 목 베임을 당하는 순교를 하였습니다(마 14:10). 그러나 제가 믿기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증거가 그로 하여금 믿음을 새롭게 하였고, 더욱 메시아이신 주님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었기에 담대히 순교를 감당했다고 생각됩니다. 아마 마지막 말씀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23절) 하신 말씀이 더욱 힘을 내게 했다고 믿습니다. 부드러운 경고와 꾸짖음 같은 교훈이었습니다. "실족한다(skandali,zw)" 함은 ‘죄에 빠지게 한다, 혹은 믿음을 저버린다’라는 의미로, 짐승을 잡기 위하여 놓는 덫(trap)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여기서 영어 scandal 이 나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구원을 받는 진리, 복음은 불신자들에게는 거침돌, 실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세상 사람들이 불신앙으로, 회의주의(skepticism)에 영향을 받아 실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과 증거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고 복 있는 자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에 대하여, 진리에 대하여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속히 의심의 안개를 걷혀 버릴 빛을 찾으셔야 합니다. C. S. Lewis 는 ‘시선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선을 주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을 마음에 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당하는 큰 어려움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알지 못하여, 혹은 세상 속에 살다가 그 영향을 받아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마음이 심란하여 지고, 머리에 혼동이 와서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족하여서는 안됩니다. 속히 하나님을,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더욱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3)고 하셨듯이, 우리는 때때로 의심할지라도 하나님은 늘 신실하신 분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럴 때에라도 우리는 그 분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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