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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5-02 (토) 18:56
분 류 주일설교
첨부#1 20200503_이번_주_설교.doc (79KB) (Down:29)
ㆍ조회: 948    
사역(Ministry)의 원리 (눅 9:1-9)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싶은가요? 주님께서 부르시며 일하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러면 당연히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알고 계신가요? 공생애가 시작된 후 약 1년 반 정도 예수님은 홀로 사역을 해왔습니다. 12제자들과 함께 있었고 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따랐지만, 그 동안은 12제자 중 한 사람도 그의 사역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역을 보고만 있지 않았으면, 사역을 받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헤롯 왕에게 목 베임을 받고 난 후에는(9절) 이 세상에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제 12제자를 동역자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원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부르시고 일군 삼으시며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역(ministry) 혹은 섬김의 원리를 알려주십니다.

1절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라고 시작합니다. 여기 ‘부르다’라는 헬라어 단어는 ‘얼굴을 맞대어 보도록 주님 앞으로 부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방 사람들을 하나님 자신 앞으로 부르실 때에(행 2:39) 사용되었고, 선택한 자들을 부르셔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사명을 주실 때(행 13:2; 16:10)에 이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불렀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무슨 부탁을 하기 위하여 부르신 것이 아니라, 주의 일을 위하여 공식적으로 위임하기 위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이 내적으로 훌륭하거나 개인적으로 신실하고 능력이 있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많이 부족한 것이 있어도 단지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통해 역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빚으실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들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었는가를 그대로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비록 3년 간이나 주님을 옆에서 보고 배우고 체험했던 그들이었으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기 전에는 믿음의 성숙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제자들에게 인내하시면서 사랑을 보이셨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그런데 서론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주께서 12제자를 부르시는데 자신들이 먼저 주님을 따르며 그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주께서 먼저 주권적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상사역의 마지막에 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라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이사야, 다른 모든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12제자들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하여 특별한 목적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구속 역사를 펼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택하셨듯이, 선지자들을 택하셨듯이, 오늘도 교회의 지도자들과 일군들, 성도들을 택하셔서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12제자가 부르심을 받아 주님을 따른다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기에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다 마찬가지이지만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던 일들을 버려두고 주님과 함께 옆에서 보고, 듣고, 체험하고, 배우고, 때때로 오해도 하고 실수도 하면서 3년 동안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훈련의 한 과정이라고 여겨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신 까닭이 훈련을 시켜 세상에 보내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을 유대 땅, 자신의 백성에게로 단기선교를 보내는 장면입니다.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2절)라고 하였듯이, 복음을 전하며,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픈 자들을 고쳐주라고 보내는 것입니다. 사역의 목적이 이렇게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던 것과 똑같이 사랑의 열정을 가지고 병자(죄인)들을 고쳐주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병행구절에서는 둘씩 내어 보내셨다고 합니다(막 6:7). 아마 처음 시작하고 시도해보는 사역이라 짝을 지워준 것 같습니다. 홀로 있는 외로움은 유혹을 받게 하고 약해지게 합니다. 둘이 친구가 되면 그러한 위험을 줄이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로 격려할 수 있고, 서로 의견도 나눌 수 있고, 전도도 번갈아 가며 할 수 있고,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에게 증인이 되기도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냥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1절하) 하였습니다. 여기 ‘능력(power)’ 그리고 ‘권세(authority)’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능력’은 제자들이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신적인 능력으로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것을 말하며, ‘권세’는 그 능력을 발휘하도록 신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는 능력이 주어졌고, 신적인 권위까지 보장된 것입니다. 이 권세를 가지고 귀신들과 병마들이 떠나가도록 명하며, 실제로 힘을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곧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죄 사함의 구원이 임함을 선포하며, 그 선포한 내용을 뒷받침하도록 능력과 권세가 주어진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열정으로 해야 합니다.
오늘날도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이 능력과 권세가 주어진 줄 믿습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과 권세입니다. 죄인들을,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으로 사역해야 합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3절)라고 하십니다. 즉 사역자들은 그들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채우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허리띠에 돈을 넣지 말고 주머니를 비우라. 지팡이도, 양식도 가지지 말고 옷도 한 벌만 갖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사역을 하는데 근본적으로 필요한 옷 한 벌 외에는 가지지 말고, 그들이 필요한 것은 주께서 허락해 주실 줄 믿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병행구절에서는 지팡이나 신은 취하도록 되어 있어(막 6:8-9) 오늘 본문과 상충되는 듯 보이나, 오늘 본문이 지팡이를 금한 것은 새로운 지팡이를 사지 말라는 것이며, 걷는 데 필요한 지팡이는 허락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서는 다니는데 없어서는 안될 신은 꼭 필요한 것이니 신(sandal)도 허락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일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지 않겠느냐? 필요를 채우시는 주님을 확실하게 믿으라는 것입니다. 한편 새 지팡이나, 양식이나 돈을 가지지 말라 하신 이유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마 10:10절하)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사역자들이 말씀을 신실하게 가르치고 전파할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필요한 것들을 채워줄 뿐 아니라 관대함으로 배려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사역자들의 필요를 채워주실 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또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4절)고 하였는데, 마태복음에서는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마 10:11)고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사역자를 반갑게 맞이할 합당한 성품이 있는 자, 경건하고 정직한 자를 찾아내어 거기 머물면서 사역을 마칠 때까지 머물러 지내는 것입니다. 사역자는 합당한 자를 찾아야지 겉만을 보고, 편안한 것을 생각하고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진심으로 받아줄 사람을 찾아내어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족하며 겸손히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사역을 축복하는 사람을 찾아내어 일을 마칠 때까지 그와 함께 있음에 만족하는 사역입니다. 또한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사역을 집중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역자의 목회를, 섬김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평안을, 복을 빌어 주라고 합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 10:41)고 하였듯이, 사역자가 하는 주의 일에 열린 마음으로 협조하며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사역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사역자를 경멸하거나 업신여기는 자들은 버리는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5절)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 10:14)고 하였습니다. ‘너희 발에 먼지를 떨어 버리라’의 뜻은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은 부정하다고 그들의 땅에 갔다가 나올 때에 그렇게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렸듯이, 사역자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 말씀도 받아 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은혜나 축복이 사라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거짓 선지자들이나 목자들, 이단들은 영접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요이 1:10-11). 그러나 참된 목자들, 사역자들을 영접하지도 않고 말씀을 듣지도 않으면 은혜도, 축복도 없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 사역자들이 복음을 전하며 말씀을 가르치는데 한번 거절한다고 쉽게 포기하고 그 사람을 버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 선배 사역자들이 그러했다면 우리 가운데 누가 예수를 믿었겠습니까? 그들이 꾸준히 사랑으로 다가왔기에 주를 영접하고 사랑을 깨달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벧후 3:9).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복음에 대한 이해가 느리고, 믿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계속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거역하며 끝까지 부인하는, 양심에 화인 맞은, 버려진(유기된) 자들을 뜻합니다. 그렇게 구원의 복음을, 은혜의 복음을 거역하며 이 일에 헌신하는 사역자들을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자들에게는 무서운 심판 날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불과 유황으로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보다 더 무서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정말 예수님 말씀대로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6절)고 하였습니다. 놀라운 역사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의 목을 벤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가 이 모든 일을 듣고는 심히 당황하였다고 합니다(7절). 왜냐하면 예수님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죽었던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거나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엘리야 선지자 나타났거나(말 4:5), 옛 선지자 중 하나가 살아났다고 사람들이 말했기 때문입니다(7절하-8절). 그래서 불안해하는 헤롯 왕도 예수님이 누군지 알기 위하여 만나기 원했다고 합니다(9절). 물론 호기심 때문이지 정말 복음을 듣기 위하여서는 아닙니다. 세상 권력에는 관심이 없는 주님이신데 자신이 위협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주이시며, 그리스도시라고 정직하게 고백하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은 그 때처럼 주님이 그의 백성들을 직접 부르고 보내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주의 일을 위하여 보냄을 받았는지 어떻게 압니까? 1) 꾸준히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 부흥을 위한 강한 열망이 일어나야 합니다.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로 주께서 소원을 주십니다. 2) 교회에서 인정을 받고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즉 여러분이 복음을 전파하며 말씀을 가르치고자 하는 갈망은 있는데, 교회에서 여러분을 잘 아는 다른 성도들의 격려와 지지가 없으면 재고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늘 다른 성도들, 지도자들을 통하여 한 개인의 소명을 확인하십니다. 3) 하나님께 받은 소명은 일할 수 있는 기회로 나타나야 합니다. 어디서 사역을 할 것인지 정해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 세 여건이 다 조성되면 하나님의 소명이 확실하니 순종해야 합니다. 신적 위임, 명령이니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큰 화를 입게 됩니다.
한편, 어떤 면에서 모든 성도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복음을 전파하고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도록 위임을 받았습니다. 모든 성도가 목사나 전도사,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지 않았지만, 모든 성도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실제 주를 위하여 섬기고 봉사하시는 여러분들에게도 적용이 가능합니다. 오늘 말씀해드린 사역(섬김)의 원리들을 적용해 보십시오. 친히 주님께서 명하신 사역입니다.
분명한 목표인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살리는 봉사자, 전도자들이 되십시오. 허물이 있는 사람들을 품어주며, 긍휼히 여기는 사랑의 열정을 보이십시오. 그리하여 그 섬김이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신임을 얻도록 노력하십시오. 주님께서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섬기십시오.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여러분을 존중하며 섬김을 받는 자들과 사랑을 나누시고, 평안과 축복을 빌어 주십시오. 분별력을 가지고 일을 합시다. 끝까지 거절하는 사람들이야 하나님의 심판에 맡겨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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