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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8-23 (일) 08:3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864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1) (눅 11:1-4)


믿는 자들이던 믿지 않는 자들이던 다 기도는 합니다. 그런데 너무 다릅니다. 누구에게 기도하며, 어떻게 기도하는 가가 다릅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기도하며, 어떻게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십니까?
제자들과 함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중,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계속 가르쳐주시면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그리고 말씀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제자도(discipleship)에 대하여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이 있는 베다니를 떠나 예수님께서는 종종 하시던 대로 한적한 곳에서 기도를 하셨습니다(1절상). 기도를 마치시고 나자 한 제자가 예수님께 여쭈어봅니다.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1절하). 그는 아마 세례 요한의 제자가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본 모양입니다(눅 5:33).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2절 상)고 하시면서, 그 유명한 주의 기도(Lord’s prayer), 혹은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십니다. 사실 주님의 제자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기도의 형식(pattern), 기도의 방법(how to pray)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매번 이와 똑같이 기도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기도문을 반복하지 못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고 여러분의 마음을 쏟아 붓는 ‘주의 기도’라면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만약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 무엇을 기도해야 할 지 모른다면 기도를 하지 않을뿐더러 기도가 우리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 지지 않기에,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론 잘못 기도하기 때문에 응답이 없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올바른 기도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저는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몇 주일에 걸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자세히 살펴보며, 우리도 그와 같이 기도함으로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펼쳐지며, 그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먼저 기도의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결코 기도는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편안하게 살려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그 영광이 이 땅에 나타나기를 바라며 구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고 하였습니다. 즉 기도응답을 하시는 이유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목적과도 같이, 기도 또한 나의 소원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그의 영광이 나타남을 보기 원하고, 그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구하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가 나옵니다(2절; 마 6:9-10). 그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그의 나라가 임하기를 구하며, 그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3절). 기도는 결코 하나님을 설득시켜서 나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고자 드리는 간구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과 의와 권세를 인정하고, 우리의 원하는 것이 그의 뜻과 영광을 위하는 것과 하나됨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첫째,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기도입니다. 누가복음에는 빠져있지만, 마태복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시작합니다(마 6:9).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가족이 된 성도들의 영적인 아버지이십니다. 불신자들은 영적으로 다른 아버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를 부인하고 거역하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 8:44 상)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요 1:12). 세상과 구별시키고 있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3:1)고 하였습니다.
만유의 창조주이시면서,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1) 어떤 것에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나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좋지 않은 환경 속에 무서워할 수 있으나, 우리는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2)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하여 겁낼 것이 없고, 오히려 소망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앞날을 모르는 우리들이지만, 육신의 아버지도 자기 자녀를 돕고 보호할 줄 아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돌보지 않겠습니까(마 7:11, 요 10:29)? 3) 우리는 외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거나, 가족으로부터, 친구로부터, 다른 성도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거나 거절을 당한다 하더라도 외로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버리시거나 떠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마 28:20). 4) 나 개인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없애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여' 라고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버지"입니다. 복수를 사용하였습니다.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다른 가족들과 함께 사는 자녀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주기도문 전체에서 1인칭 단수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전부 1인칭 복수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나 개인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최선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은밀한 골방에서의 기도도 중요하지만 합심하여,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5) 기도응답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가리켜 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 계시다 함은 무한함(infinity)을 의미합니다. 그 모든 능력과 권세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를 가리킨다기 보다, 하늘에 있는 그 모든 자원이 우리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할 때 우리의 것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6)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면, 하물며 양자된 우리들이겠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그의 자녀인 표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50)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꺼이 들으시는 귀와 그 능력과 영원한 복을 그의 자녀들이 부르짖을 때에 빌려 주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간구가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이며, 하나님의 뜻과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그래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하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둘째로,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드러나도록 드리는 기도입니다.
2절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였지요. 우리의 기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양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기도가 그저 단순히 나의 필요한 것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된다고 해서 경망스럽게 말하거나, 친구에게 하듯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속성, 성품, 계획, 뜻 등을 모두 말합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두 번째로 시내산에 오를 때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5-7)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하셨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황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자신을 계시하였습니다. 여호와라는 의미는 '스스로 계신 자'라는 뜻이며(출 3:14)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 '엘로힘'은 '창조주', 그의 전능함을 가리키며, '엘 엘리욘'은 '하늘과 땅을 가진 자', '여호와 이레'는 '공급하시는 주님', '여호와 라파'는 '치료하시는 주님', '여호와 샬롬'은 '평화의 주님', '여호아 라아'는 '주는 우리의 목자', '여호와 삼마'는 '지금 함께 하시는 주님', '여호와 짜디크누'는 '주는 우리의 의'라는 뜻입니다. 이외에도 종종 그 이름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십니다. 그런데 이 모든 속성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삶에서 그대로 나타났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고 하였듯이 예수님을 통하여 완전히 드러내셨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이름을, 그 성품을, 계획과 뜻을 거룩하게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신들과 구별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한다는 것은 사람이 절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그 이름을 입 밖에 내지 말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까? 물론 마귀의 아들들이야 당연하겠지만, 성도들 가운데서도 종종 그러한 모습을 봅니다. 정말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무의식 중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고, 자신의 구차한 변명으로 사용하는 경우 말입니다.
그 이름을 거룩히 여김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벧전 3:15) 라고 사도 베드로는 권면합니다. 우리 마음에서부터 하나님 아버지를,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할 때에 우리의 삶에서 그를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잘 알 때에 그의 이름을 높여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함께 하시는,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그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은 매일의 말과 행동과 생각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하며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져 있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거역하며 살면 곧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섬길 수가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거룩하여진 성도들과, 자녀들과 교제하기 원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고 하셨듯이, 바로 주님과 교제하는 삶이 기도응답의 비결입니다. 할렐루야!

셋째로,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2절하) 라고 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고 나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유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온전히 거룩하게 되는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가장 큰 바램은 그 나라가 임하여 예수님이 친히 주님(Lord)으로, 만왕의 왕으로 통치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그 나라의 영광과 권세가 임하고는 있으나,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친히 다스리실 때까지는 아직 완전한 그 나라가 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지요.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주님의 통치를 온전히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기도들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계획과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주로 구하지 않습니까? 사실 성도의 삶에서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옛 습관과의 싸움, 그리고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닐까요. 아직도 내 삶에 예수님이 진정 주인으로 되어있기 보다는 나, 내 자신이 중심이 되어 있지는 않는지요. 나를 비롯하여 우리 주위의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친히 주께서 그들을 다스리심에 순종하여서 그 나라가 확장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대적은 공중권세를 잡고 사탄이 다스리는 현 세상입니다. 사탄이 다스리는 나라의 본질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백성들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 18:36)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 인간들이 이루는 나라는 아무리 노력해도 온전한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죄인이 어떻게 신성한 나라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인간사회를 개선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 곳에 이룬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나라를 이룰 수 없습니다. 다만 변화 받은 성도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맛을 볼 수 있기는 해도,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스스로 왕국을 건설하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고 하였습니다. 즉 믿는 성도들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마음을 온전히 주께 드려, 그의 통치를 받고 살면 그 안에는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삶의 주로 영접하게 되면 그 나라는 거기 임하며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마음이 온전히 주께 드려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지배를 받으며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이 돌려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오늘은 우리가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본을 따라 그 첫 부분을 함께 보며 교훈을 받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세상을 지으실 뿐 아니라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니 우리는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갖고 주장하시는 분이 그의 자녀들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며 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라는 기도였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 드러나도록, 그 영광을 모든 사람이 보도록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 삶 전체를 통하여 그 이름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찬양을 받게 되기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의 기도는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됨을 확신하며, 무엇보다도 먼저 그 이름이 온 세상에 높이 드러나 거룩하게 되며, 영광을 받으시게 되도록 간구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우리의 삶 전체가 온전히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가 되도록 하나님 아버지 앞에 진실하게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 귀하신 이름을 찬양하며 높이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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