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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8-27 (목) 07:48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876    
잊지 못할 사람들 (딤후 4:9-22)



하나님 나라의 일은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동역자가, 지체들이 필요합니다. 바울에게도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힘들게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마지막 서신 끝부분에서 자신과 함께 주님을 섬겨온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역에 필요했던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이었습니다. 한편 신실하지 못하여 바울을 떠난 사람들도 있었으나, 신실했던 사람들을 디모데에게 언급하면서 문안인사를 전하라고 합니다.

우선 바울은 죽기 전에 영의 아들 디모데 목사를 만나기 원했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9절)고 하였습니다. 21절에 다시 겨울이 오기 전에 속히 오라고 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바울은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감옥에서 이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 온 것을 알고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힘든 목회를 하고 있는, 그렇게 아끼는 디모데를 만나 안아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저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히 13:23)고 한 것을 보면, 신실했던 디모데는 바울의 제자답게 그의 뒤를 좇아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도 갇히기도 하고, 아마 순교의 길까지 따라 갔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신실하지 못했던 동역자들도 있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10절) 하였습니다. 사실 혼자 있다고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버림을 받게 되면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신 곧 신뢰를 저버리는 것만큼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데마는 바울의 친구이자 동역자였습니다(골 4:14; 몬 1:24). 그는 처음에는 누가와 함께 바울의 선교사역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바울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믿음의 길에서 떠난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때문에 말입니다. 바울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애초에 참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참된 성도라면 끝까지 신실해야 합니다. 고난이 있어도 말입니다. 세상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 사랑을 점검하십시오.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데마가 떠났을 뿐 아니라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갔다고 합니다. 성경에 그 이름만 있지 더 이상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고 있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만, 성경학자들은 그레스게는 바울이 선교의 목적으로 교회를 개척하도록 로마로 향하는 4차 선교여행 할 때에 갈라디아로 보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데마와는 다른 경우로 생각합니다.
디도도 마찬가지로 교회 개척을 목적으로 달마디아(혹은 일루리곤)로 보낸 것으로 압니다. 그는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 9번, 갈라디아서에 2번 언급합니다. 그에게 보낸 목회서신에서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딛 1:5)라고 하였습니다. 즉 그는 바울이 믿을만한 신실한 동역자였습니다.
어찌했던 그렇게 자신을 떠난 사람들도 있는데,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11절)고 하였습니다. 의원 누가는 언제나 조용히 섬기며 바울의 신실한 친구요, 동역자로 함께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를 “사랑 받는 의원 누가”(골 4:14)라고 표현했으며, 동역자로 말했습니다(몬 1:24). 비록 바울의 곁에 있기에 위험이 따르고 고난이 있지만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디모데가 자신을 보러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11절하). 요한이라고도 불리는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로 삼촌과 함께 바울의 1차 선교여행에 동참했다가 중간에 그들을 떠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었습니다(행 13:13). 바울은 함께 일하다가 그만두는 그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로 2차 선교여행을 떠나려 할 때에 바나바와 바울이 다투기도 했습니다(행 15:39). 그래서 바울이 바나바와 헤어져서 실라와 함께 2차 선교여행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가가 믿음의 성숙해지고 지속적으로 헌신하고자 하는 모습을 듣고, 보고 난 후 나중에 다시 그와 함께 일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자신의 일에 유익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위에 미성숙한 믿음으로 중도 탈락하는 분들이 있지만 시간이 흘러 믿음이 성장하면 다시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그의 가까운 동역자들을 생각했습니다.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12절)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두기고를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골 4:7)고 했습니다. 그만큼 가까웠고 사랑을 받고 있고, 신실한 일군으로 함께 주의 종이라고 인정한 두기고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13절)고 부탁합니다. 바울은 ‘가보’라 이름하는 성도를 신뢰했기에 그의 집에 자신의 개인적인 물건과 자신이 쓴 중요한 성경책들을 맡겼던 것입니다. 자신이 겨울을 감옥에서 보낼 것을 생각하며 따뜻한 겉옷, 곧 털로 짠 외투였습니다. 가죽(양피지) 종이에 쓴 책은 그가 기록한 성경으로 여겨집니다. 보통 갈대 파피루스를 사용하는데 중요한 내용은 가죽 종이를 사용했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생각하는 바울에게 떠오르는 대적들 중에 한 사람을 언급합니다.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가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14-15절)고 합니다. 구리 장색은 구리 세공하는 사람으로 대장장이를 의미합니다. 디모데가 로마로 올 경우 이 알렉산더의 방해를, 핍박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을 체포하는데 이 알렉산더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다 보고 계시니 그를 심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행한 대로 주께서 벌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였기에 반드시 갚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원수 갚은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고 하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데마처럼 무명의 신실하지 못하던 자들이 있었는데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16절)고 합니다. 로마 제국의 분봉왕 앞에, 유대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자신이 변호를 할 때에 곁에서 증인이 되어야 할 자들이 다 자신을 버렸다고 합니다. 누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고난과 핍박이 겁이 나서 도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믿고 그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오히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17절)고 합니다. 주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며 강건하게 하셔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사슬에 매인 채, 친구도 없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그는 로마제국의 법정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대적하며 핍박하는 자들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건져주셨다고 간증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으로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18절) 하고, 찬송을,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나라의 일군들은 주님께서 끝까지 보호하시고, 그들의 영혼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사탄 마귀의 그 어떤 악한 궤계도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시는 손길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롬 8:35-38).

바울은 19절 이하에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19-22절)! 여러분이 잘 아는 브리스가(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이 부부는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 고린도에서 만났습니다. 그들도 바울처럼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바울이 고린도에 머무는 동안은 그들의 접대를 받으며 사랑을 나누었습니다(행 18:1-3). 그들 역시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면서 바울을 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고 난 후에는 거기서 아볼로에게 복음을 설명하며 진리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행 18:24-26). 바울은 로마교회에 그들을 소개하기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롬 16:3)이라고 하였으며, 이어서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롬 16:4)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경건하고 헌신된 부부에게 바울은 사랑을 담은 마지막 문안인사를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또 오네시보로의 집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이미 디모데후서 1:16-18에 언급한 사람입니다. 그가 로마에서 자신을 열심히 찾아 다녔던 일을 언급하면서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라스도는 마게도냐 지역 고린도에 머물고 있으니 찾아서 문안하고, 드로비모는 병이 들어 에베소 지역 밀레도에 남아 있게 했으니 역시 찾아서 문안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들이 바울과 디모데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소중한 동역자들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겨울에는 여행하기가 쉽지 않고, 지중해에 폭풍우도 거세기 때문에 겨울이 오기 전에 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로마에 있는 으불로, 부데, 리노, 글라우디아 네 사람을 언급하며 그들이 안부를 전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아마 이방인들로서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는 자가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는 다시금 디모데를 축복하며 기원하면서 그의 마지막 서신을 맺고 있습니다. 얼마나 그가 디모데를 그리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복음을 위해, 진리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삶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아픔과 고난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의미 있는 보람된 인생입니다. 아니 복 받은 인생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옆에서 돕는 동역자들 또한 귀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 이후 30여 년간 복음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그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과거를 돌이켜 보니 정말 만감이 교차합니다. 특히 그를 도와준, 함께 사역을 한 성도들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물론 그를 힘들게 했던 대적들과 그를 버리고 떠났던 사람들도 기억했습니다.
여러분은 주의 종들에게 어떤 분으로 기억에 나기를 원합니까? 데마 같은 사람보다는 끝까지 신실했던 누가, 디도, 두기고, 가보, 브리스가와 아굴라, 오네시보로 등으로 남기 원하지 않습니까? 주의 종에게 잊지 못할 사람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입니까? 이런 신실한 성도들처럼 더욱 주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인생을 마감한다면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그런 신실한 주의 종들이,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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