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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9-06 (일) 08:5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797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3) (눅 11:4)


지난 시간까지 우리가 배운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우선 누구에게 기도하는가 가르쳐주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시며 사랑이 풍성하신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내용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도록 기도하며, 둘째, 그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며, 셋째,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도록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넷째,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로서,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영적, 육적 일용할 양식을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다섯째로, 또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는 기도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4절상) 하였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보다 훨씬 중요한 기도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우리에게 ‘죄 지은(ovfei,lw, owe a debt)’라는 단어는 흔히 사용하는 죄(a`marti,a, sin)라는 단어와는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이 ‘죄 지은’라는 단어의 뜻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갚아야 할 빚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원어에 가깝게 직역을 하자면,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자들을 탕감해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였습니다. 마음과 몸과 영혼이 다 더럽혀졌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 십자가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인이라 칭하시며, 더 이상 우리는 죄 때문에 궁극적인 심판은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안에 죄성(sin nature)은 남아 있기에 연약하여 때로 죄를 짓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빚을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기도에 하나님 아버지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그 빚을 탕감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아버지로서 자녀가 짓는 죄를 용서해 주시기 원하시기에 고백하라고 합니다. 이유는 죄를 지음으로 아버지와 자녀 사이가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늘 가까이 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열두 제자들을 다락방에 모으셔서 그들의 발을 씻기신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베드로가 '아니 감히 주님께서 제 더러운 발을 씻기시다니요. 안됩니다'라고 했을 때에 주님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나는 너와 상관이 없다'고 하자, 베드로는 '그럼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온몸을 목욕시켜 달라'고 했지요.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요 13:10)고 하였습니다. 즉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세주로 믿는 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들은 온 몸이 이미 깨끗함을 받았기에 영생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발이 더러워진다는 것입니다. 매일 거룩하신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난 말이나 생각이나 행동들을,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그 무엇이 있다면 우리는 자백하여 더러워진 발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요, 자비요,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실한 성도는 이 하나님의 용서의 약속을 악용하여 함부로 죄를 짓지 않지요. 오히려 용서하심의 큰 은혜를, 긍휼을 감사하며, 감격하며, 죄와 싸우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죄 용서함을 받는 기도에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라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었으니 우리의 빚도 탕감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잘못한 모든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너무도 중요하기에 마태복음에서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기도가 끝나자 마자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고 하셨습니다. 우리말에는 ‘과실’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죄를 말합니다. 사람이 내게 잘못한 것을 내가 진실로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잘못도 용서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두려운 말씀입니다만, 너무나도 옳은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진실한 성도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게 되어 있습니다. 금방은 아니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용서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그 심령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비와 긍휼의 성품이 있어서 용서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어서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고 하였지요(마 5:7).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징입니다. 사실 하나님께 참으로 죄 용서함 받음을 체험한 성도는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께 형제가 나에게 죄를 범하면 얼만큼 용서합니까 7번까지 용서하느냐고 물었을 때에 70번씩 7번이라고 용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마 18:21-22). 그리고 그 말씀을 마치신 후에 비유로 해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마 18:23절 이하). 어떤 임금이 종들과 빚을 계산하는데 1만 달란트, 오늘날 노동자 하루 품삯(1데니라온)을 $150로 환산하면 1달란트가 약 6개월 월급이니 $18,750으로, 약 $187,500,000 정도 빚을 진 종에게 그 몸과 처와 자식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빚을 갚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갚을 수가 없지요. 예수님께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설명하고자 엄청난 1만 달란트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종은 임금에게 사정하여 참아달라고, 조금씩이라도 갚아 나가겠다고 빌었습니다. 임금이 그 종을 불쌍히 여겨 그 빚 전부를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약 $15,000의 빚을 진 다른 종에게 붙들고 목을 잡고 그 돈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이 불쌍한 종이 참으라고 어떻게 해서든지 갚겠다고 사정을 하였지만 용서하지 못하고 옥에 가둡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다른 친구들이 임금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임금이 대노(大怒)하여 말하기를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마 18:32-33)하고, 그를 옥에다 가둡니다. 얼마나 그 주인이 의로운 분노로 인하여 치를 떨었겠습니까? 그래서 그를 ‘악한 종’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하나님이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심으로 긍휼을 입고 그 많고 많은 죄들을 용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잘못하는 것에 대하여 불쌍히 여김이 없다면, 당연히 불쌍히 여김이 마땅함인데 그렇게 긍휼을 베풀며 용서하지 못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노하실 것입니다. ‘악한 종’이라고 부르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너희도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고 예수님이 말씀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 2:13)고 하였습니다.

나의 많은 빚이 갚아진 은혜를 깊이 깨닫는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진실로 회개한 사람은 당연히 내게 빚진 사람을 용서합니다. 무궁한 긍휼을 체험했는데 남에게 약간의 긍휼을 베풀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고 권면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진실로 용서함은 내가 용서함 받은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이지요. 또한 용서는 나로 하여금 죄책감에서 자유케 합니다. 용서하지 못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 받는 것으로부터 장애가 될뿐더러 내 마음에 평안과 만족, 행복을 빼앗아 갑니다. 미움의 감정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누구를 용서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있는 현상은 아닙니다. 육신을 지닌 사람의 본성은 죄성 때문에 용서와는 거리가 멀기에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입니다. 유명한 프랑스 왕, 루이 7세는 “Nothing smells so sweet as the dead body of my enemy. (내 대적의 시신을 냄새를 맡는 것만큼 달콤한 것이 없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죄성을 얼마나 잘 표현한 말입니까?
그런 죄성이 아직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의 새 성품이, 그 특징이 바로 용서입니다. 이유는 용서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던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억울한 재판을 받으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로마 군병들에게 모욕과 멸시를 받으며, 침 뱉음과 매질을 당하며, 십자가에서 죽으면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하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로서 본을 받고 모범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린아이들의 잘못을 용서하는데 그렇게 어렵지 않음을 잘 압니다. 특히 친부모라면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아직 미성숙하고, 경험도 적고, 알지 못하는 것이 많은 것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아이들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는다 하더라도 용서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 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미성숙한 사람의 잘못을 쉽게 용서하는 것입니다.
신자, 그리스도인이라 함은 그 표시(mark)가 용서함에 있습니다. 용서하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에 가장 크게 나타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경건한 하나님의 성품이 없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도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그가 성경을 많이 알고, 보수신앙을 가졌다 하더라도 죽은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자기에게 잘못하는 형제에게 미움을 품고, 쓴 뿌리를 가지고 말하고 행동한다면, 벽을 쌓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자요, 아니면 잊어버린 자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용서해야 할 또 한가지 중요한 이유를 제시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 받기 위해서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잘못을 하는 성도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다 하나님의 영적 자녀들입니다. 때때로 무지하고, 연약하고, 이기적이고, 불순종하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정기적인 용서가 필요하고, 또한 우리에게서 용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또한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의 죄도 용서 받지를 못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집니다.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교회가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데 꼭 필요한 열쇠입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공동체에 속한 성도들 사이 용서하지 못함으로 깨어지고 부서져서 불신자들로부터 욕을 먹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웁니까? 주님의 피로 맺어진 한 형제, 자매가 서로 용서하지 못할 때에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사명을 감당하는 데에 큰 지장을 가져다 줍니다. 분열을 초래합니다. 평안을 깨뜨립니다. 반대로 서로 용서하는 모습이 나타날 때에는 교회에 큰 유익을 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실수를 하더라도 쉽게 용납이 되는 교회가 건강하고 좋은 교회인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서로 용서하지 못할 때, 부모와 자식이 서로 용서하지 못할 때, 형제들이 서로 용서하지 못할 때 그 가정은 깨어지거나 평화롭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온 가족이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까요? 만약 이웃이 우리 가정이 믿는 가정인 것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용서가 사랑의 첫 단계요, 모든 의미 있는 관계의 열쇠입니다. 성도가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주신 말씀 가운데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3-14)고 하였습니다.
용서할 줄을 모르는 자를 신자라고, 성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크고도 많은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을 정말 믿고 체험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가 없겠지요. 앞서 예수님의 비유에서 언급한 엄청난 빚을 탕감 받은 악한 종처럼 말입니다. 만약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으시면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오 하나님, 내게 용서의 마음을 주옵소서. 그래서 제가 하나님 아버지와 온전한 교제 가운데 있게 하시고, 제가 형제나 자매를 용서하지 못하여 당신으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하는 죄가 있어 징계를 받거나, 주님 주시는 기쁨을 잃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제게 잘못한 자들의 죄보다 제가 하나님께 범죄한 죄가 훨씬 많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은 늘 용서하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분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셔서 용서하게 하소서 ’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용서하게 하실 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위한 기도와, 그 나라와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 원하는 기도를 하고 나서 우리들의 필요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필요한 영적, 육적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후에, 우리의 영적 삶을 위하여 우리가 짓는 죄를 용서함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교제를 끊기에, 늘 교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께, 아니 이미 죄를 용서하시고 다만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먼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용서하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위하여 죄 용서함을 위하여 기도하되 다른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하며 간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짓는 죄를 사하려면, 우리에게 빚진 것을 탕감해주려면 내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크신 하나님의 긍휼을 다시금 생각해 보며 그 은혜에 잠겨야 합니다.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며, 다른 사람을 진실로 용서하고 우리의 죄도 용서받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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