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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1-17 (일) 07:2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757    
더 늦기 전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눅 13:22-30)


우리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어떤 좋은 기회를 놓쳐서 후회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왜 그 때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기회는 또 올 수 있으나 어떤 기회는 전혀 다시 오지 않기도 합니다. 이미 늦은 경우입니다. 버스가 지나간 다음에 손 흔들어 보아야 소용이 없듯이 말입니다. 문제는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기회인 경우입니다. 정말 놓쳐버리면 영원히 후회하며 고통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기회를 살려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당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가운데 들르시는 곳마다 말씀을 가르치고 계십니다(22절). 도중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23절)? 그러니까 예수님은 구원을 얻을 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로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구원을 얻는 자가 지금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참 믿음의 질(quality)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24절)고 말입니다. 여기 “힘쓰라(ἀγωνίζομαι, strive)”는 동사는 명령형으로 쓰였으며, 주로 운동선수가 경기할 때 온갖 노력을 다해 싸울 때 사용하는 단어로 ‘애쓰다, 분투하다’라는 뜻입니다. 참된 회개로 자신을 부인하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고 하셨습니다. 자기 의로 들어갈 수 없는, 자신을 부인하고 들어가는 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존경하고 찬양하지만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고 그를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명령은 ‘어떤(a) 문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가 아니고 “좁은(the narrow) 문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을 사람은 반드시 이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옳은 문,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한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을 명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만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오직 한 길이라고 전하고, 가르칠 때, 우리는 우리가 보기에 여러 종교들 가운데 바른 종교라 생각하여 전파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하신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미 그 문에 들어왔기 때문도 아니요, 우리의 정서와 맞아서,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옳은 것 같아서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좁은 문을 전하는 것은 이 문 만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문이요,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과 영생을 찾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좁은(narrow) 복음을 전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이유가 때가 되면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 가는 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24절하). 늘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문을 닫을 때가 있습니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25절) 하셨습니다. 집 주인이 잠 자리에 들면 문을 잠그듯이, 주님께서 문을 잠그면 아무리 문 밖에 서서 두드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율법의 규례들을 지키고 있다는 것으로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유대인들이 율법의 사소한 규정까지 다 지켰다고 해도 주인이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이유는 그들이 좁은 문, 좁은 길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26절) 하더라도,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27절) 하실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과 함께 자리를 했다 하더라도, 먹고 마셨다고 하더라도, 진리의 말씀을 배웠다 하더라도 모른다고 하십니다. 오히려 악을 행했다고 합니다. 회개하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주님을 따르지 않았기에 율법의 규정들을 좀 지켰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고 하셨습니다. 입으로는 ‘주’라고 부르며 따랐는지는 몰라도 그들의 마음은 불법, 즉 반역이었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말씀에 불순종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여기 ‘알다’라는 말은 ‘친한 관계 속에서 안다’라는 히브리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결혼한 부부가 서로 아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입으로 ‘주여’라고 불러도,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무슨 능력을 나타내도 주님과는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맺어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로, 양과 목자로, 신랑과 신부로 관계가 맺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28절)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종착역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사탄 마귀의 나라, 지옥이기에 거기서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방인들 가운데 좁은 문으로 들어가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동서 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니”(29절)라고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멸시했던 사람들이 동서남북에서 와서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게 되는데, 바로 참된 회개를 하고,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30절)고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할 때 나중이라고 생각한 이방인들이 먼저가 되고, 먼저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이 나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너무 다른 것입니다(사 55:8-9).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집 주인되시는 예수님이 언제 문을 닫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마치 우리의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듯이, 때때로 갑자기 다가오듯이 말입니다. 중요한 결정은 미룬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일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기회가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간 10처녀 비유(마 25:1-10)에서, 미련한 5처녀는 기름이 떨어져 기름을 사려고 나갔지만 바로 그 때 신랑은 이미 오고 말았습니다. 구원의 좁은 문은 닫혀졌습니다. 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지 마십시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절하)라고 하였습니다. 더 늦기 전에 지금 결단하셔야 합니다. 지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셔야 합니다. 지금 회개하셔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붙드셔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당시 이스라엘 나라 백성이면 하나님 나라에 간다고 믿었던 유대인들처럼, 교회에 속하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냥 교회 다니기만 하면 구원 받는 줄로 압니다. 아니 어떤 이들(Universalists)은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고 ‘만인구원론’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원해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지 다 구원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세례 요한도 회개하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회개는 우리 자신의 지정의로 행하던 길에서 하나님 의의 길로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좁은 문을 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한 삶은 변화된 삶을 가리킵니다.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아주 단순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무슨 우리의 공로로 구원 받는 것은 아니지만, 자꾸 옛 사람으로 돌아가 주님께서 금한 것을 잡으려 하면 하나님 나라로부터 멀어집니다. 아니 어쩌면 그 사람은 참으로 믿는 자가 아닌 것이겠지요. 비록 거저 주시는 구원이지만, 주님께 나올 때에는 우리가 가진 것 모두를 포기해야 합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 “YES”라고 한 사람은 세상 것들에 대하여 “NO”라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된다는 것은 내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보다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게 살 때에 핍박이나 환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요 15:18-20상)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연합할 때 우리는 마귀와 전쟁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마귀도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고요. 그러나 전쟁 중에 그러한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신 주님께서는 기쁨과 평안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 16:20이하). 주님께서 마귀를 물리치고 이기셨으니 용기를 가지라고 하십니다. 담대하라고 하십니다(요 16:33).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믿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 만날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확실히 구원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이 정말 여러분의 모든 죄를 사하신 구세주이십니까? 여러분의 삶에 주인이십니까? 아직도 아니라면 지금 이 순간 믿으셔야 합니다. 미루지 마십시오. 성경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큰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말로만 ‘주여’가 아닙니다.
정말 믿는 하나님 나라 백성은 매일 어떤 어려움, 문제에 부딪쳐도 변함없이, 신실하게 주를 사랑하며, 섬기며, 교회를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돌보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그런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구원이 확실한지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록 함께 교회 생활을 할지 몰라도, 주를 인정하고 복음의 초청에 긍정적으로 반응을 하였었는지는 몰라도 여러분의 삶에서 열매가 없다면 말입니다. 영원히 예수님과는, 성도들과는 갈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이, 형제가, 친구가 잘 믿고 신실하게 사는 것과 여러분의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부르시고 계십니다. 초청하십니다. 아직도 마음을 열고 그 구원의 은혜를 받아 들이지 못하시는 분 계십니까?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내일이면 이미 늦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모양, 지식, 지혜, 돈, 명예를 보고 부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리나 창기에게까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누구에게나 필요한 하나님의 사랑이기에 부르십니다. 응답하시고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응답하시면 생각지도 않은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인생에게는 단 두 가지의 선택 밖에 없습니다. 좁은 문의 협착한 길을 가든지, 크고 넓은 문의 세상 길을 가든지, 주님을 만나서 그를 찬양하고 살든지, 마귀의 종이 되어 그를 저주하며 핍박하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든지, 부끄러워 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아직도 결정하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너무 늦기 전에 선택하십시오. 회개하고 돌아서십시오.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며 평안과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이미 좁은 문으로 들어오셔서 협착한 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계시는 성도 여러분!
처음 구원을 확신한 때, 이른 아침에 부름을 받아 저녁을 맞는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다 그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고 하였습니다. 정말 감사하십시다. 불러주신 은혜, 일하게 하신 은혜, 양식까지 주시는 은혜, 일찍 부름을 받았던지, 늦게 부름을 받았던지 상관없이 순종하면, 믿으면 주시는 동등한 구원의 은혜이었습니다. 에녹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300년 동안 섬겼습니다. 아브라함은 약 100년을 섬겼고, 모세는 80년을, 다니엘은 약 70년을, 사도 바울은 약 30년을 섬기다가 주께로 갔습니다. 좁은 문, 좁은 길, 생명의 길은 희생이 따르고, 자신을 부인하며 외로이 걸어가는 길입니다. 계속 힘을 내시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그 길을 벗어나지 마십시오. 끝까지 잘 버티십시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끝까지 충성하십시오. 저도 주님을 섬긴 지가 약 45년이 넘습니다. 이민목회만 29년, 우리 교회 설립 27년 째입니다. 정말 누가 무어라 해도 흔들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며 주를 섬기어 왔는지 돌아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벌써 2021년도 셋째 주일 맞이하였습니다. 지난 시간까지를 살펴보며, 허락하여 주신 교회에서 믿음으로 예배하며, 기도하며, 봉사하며, 주님과 교제하며 동행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겸손히 남은 시간들을 아낍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든지, 무슨 잘못을 범하든지, 어떤 삯을 받든지 상관하지 맙시다. 그것은 우리 주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그들과 비교하지도 맙시다. 다만, 오늘도 우리를 사용해서 잃어버린 영혼을 부르시고자 하시는 주님께 순종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순결한 신부답게, 믿는 자답게 삽시다. 부족한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주께로 정한 까닭에 꼭 여러분을 사용하시겠다는 주님의 각오에 그저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일합시다.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는 주님, 아니 내일이라도 부르시면 만나야 할 주님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Marana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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