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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2-04 (목) 05:55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833    
기도하고 찬송하니 (행 16:19-2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기도와 찬송, 예배입니다. 알면서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기도와 찬송을 합니까? 물론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회 혹은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기도와 찬송도 하지만, 평소에 스스로 기도와 찬송을 하십니까? 아니 특히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기도와 찬송을 하십니까?

오늘 본문의 문맥은 사도 바울이 실라와 함께 제 2차 전도여행 중 더베를 거쳐 루스드라에 가서 그곳에서 디모데라는 신실한 청년을 만나 제자를 삼고 그를 데리고 여러 성으로 다니며 말씀을 전하니 여러 교회가 믿음이 굳어지고 믿는 자의 수가 날마다 더해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행 16:1-5). 그런데 소아시아 지역 드로아로 가려다가 성령의 인도를 받고,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자 행선지를 바꾸어 마게도냐 빌립보 성으로 가서, 자주장사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고, 그 온 가족이 믿고 세례를 받아 빌립보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6-15절). 루디아의 사랑을 받아 그 집에서 며칠을 유하다가, 바울과 실라는 다시 복음을 전하고자 기도처로 가는 도중에 점 치는 귀신들린 여종이 사도 바울에 의하여 치유를 받아 그 귀신이 떠나고 자유하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16-18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물리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종은 일평생 묶인 귀신으로부터 풀려나 좋았지만, 그 여종이 점치는 것으로 인하여 돈을 벌었던 주인들은 분노했습니다. 자기들 이익의 소망이 끊어져 돈을 못 벌게 생겼으니까요. 그래서 바울과 실라를 잡아 관원에게 끌어 가서 누명을 씌웁니다(19절). 복음 전하는 것을 가리켜, 이 유대인들이 빌립보 성에 와서 심히 요란하게 하고(20절),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21절)고 말입니다. 사실 그들이 귀신들린 여종에게 투자하여 점 치는 것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잘못은 감추고, 헬라인들은 유대인들을 경쟁 상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임을 부각시키면서 로마에 맞지 않는 이상한 풍습을 전한다고 고소한 것입니다.
이렇게 무리들이 일제히 고소하자, 로마 관원들이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심하게 매를 칩니다(22절). 그들의 인격을 짓밟는 그러한 수치와 모욕을 당할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습니다. 그들을 많이 때린 후에 간수를 시켜 깊은 옥에 가두고 발에 쇠고랑을 채웁니다(23-24절). 여기서 말하는 감옥은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토굴 혹은 지하감옥과 같은 곳입니다. 악령이 역사하여 그곳에서 바울과 실라로 하여금 분노하고 불평하며 원망하게 하려고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당연히 그렇게 불평하고 원망할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빌립보에 왔고, 기도처를 가다가 좋은 일을 하고서 이렇게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준 것도 이 여종이 여러 날을 간청하여 고쳐달라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준 것입니다(18절).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이런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혹은 좋은 일, 선한 일, 주님의 일을 하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고난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귀신들린 여종을 치유해 주었다는 이유로 수치와 모욕을 당할 뿐 아니라, 심한 육체적 고통 가운데서도 한 마디 변명을 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자신들을 변호할 수 있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핍박을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로마 시민권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처럼 아무 말하지 않고 다 당하고 맙니다. 바보라서 그렇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 세상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0:22). 사탄 마귀가 우리를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담대하십시오. 이 세상을 이기신, 악한 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2하-33)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선한 일, 주의 일 하다가 핍박을 받게 되어 있는데 그 때 억울함을 호소하며 변명하고, 싸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영광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악한 영이 주장하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 영광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너무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 생각하십시오.

심한 고통 중에 발에는 쇠고랑이 채워졌고, 깊은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25절)고 하였습니다. 누명을 쓰고, 옷을 찢겨 거의 벌거벗김을 당하고 심한 매를 많이 맞고 깊은 옥에 갇힌 그들은 한 밤중에 일어나 함께 기도하고 찬양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비슷한 환경에 있었다면 기도하고 찬양하였겠습니까? 아니면 그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원망하였겠습니까?
이런 심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주님의 일 때문에, 선한 일 하다가 오히려 누명을 쓰고, 핍박을 받을 때에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 원망하고, 사람들과 싸우고, 낙심하면서 침체된 모습을 보이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사탄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과 실라의 기도는 감옥에서 풀려 나가게 해달라고, 살게 해달라고 하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신실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도 초대교회 성도들이 함께 불렀던 찬송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둘이 함께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미, 찬양은 곧 감사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주님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을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또한 찬양은 주님에게 헌신의 표시입니다. 고난을 당하더라도 남은 힘까지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들의 찬양과 기도를 옥에 갇혀 있던 죄수들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그들에게 감동이 되었겠습니까? 아니 그토록 매도 많이 맞고 해서 아플텐데 기도하며, 노래를 부르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 죄수들도 감동을 받고 나중에 기적적으로 옥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성도들이 해야 할 가장 소중한 일임을 모든 죄수 앞에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어려운 환경을 초월하여 그렇게 하나님을 선포하고 기도하며 찬양할 때에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듣고 성령이 역사하여 감동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면 오히려 어려울 때에 바울과 실라처럼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들이 그 고통 속에서도 그렇게 하나님을 높이는 기도와 찬양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에게 삶을 다 맡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기면 불평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 주시는 평안으로 한 걸음씩 주님을 따라가면 됩니다.
여러분! 복음 때문에, 주의 일 때문에 핍박이, 어려움이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습니까? 악령이 자꾸 무엇으로 묶으려고 합니까? 바로 그 시간 아니라도 잠시 후에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기도하세요.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신 하나님되심을 선포하세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세요. 하나님께서 다 보고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께서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양을 들으시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큰 지진이 나서 옥문이 다 열리고, 두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쇠고랑까지 다 벗어졌습니다(26절).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겪는 어려움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되심을 고백하며, 간절히 드리는 기도와 찬양을 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기적을 베푸십니다. 당연하지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들이 자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E. M. Bounds 목사님은 ‘해와 빛이 떨어질 수 없고 꽃과 향기가 분리될 수 없듯이, 기도와 찬양은 서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기도가 생명 줄이라면 찬양은 날개다.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 영혼에게로 오시게 하고, 찬양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 올라가게 한다. 기도는 우리의 죄 고백과 하나님의 용서,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감사와 관련이 있다. 기도와 찬양이 있는 사람은 신앙생활이 깊어지고, 기도와 찬양이 없는 사람은 영혼이 피폐해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찬양은 곡조가 있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공적인 예배 때만 아니라 늘 기도와 찬양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찬송을 부르십시오. 하나님이 정말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며, 감사의 찬양을 드리십시오. 성경에 찬양과 기도의 힘을 말하는 구절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를 들면, 다윗은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시 34:1-2)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찬양을 듣고 곤고한 자가 힘을 얻고 기쁨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 5:16-18)고 하였습니다. 기도하고 찬양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악령을 물리치시며 놀라운 기적을 베푸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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