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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2-07 (일) 07:2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880    
핑계 대지 마십시오 (눅 14:15-24)


전도해보신 분들은 알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복음을, 진리를 거절합니다. 이 세상의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복음의 가치를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5:7)고 하셨습니다. 개나 돼지가 보석의 가치를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한 나라의 대통령이 큰 파티를 준비하고 초청하였는데 핑계를 대면서 가지 않는 사람은 대통령을 하찮게 생각하기에, 대통령이 마련한 파티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안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지도자 집에 초청을 받았을 때에 비유의 말씀으로 잔치에 초대를 받아 가거든 높은 자리에 앉지 말고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자신을 낮추라고 하시고, 손님들을 초대한 주인에게는 대접을 하려거든 초대한 사람들에게 나중에 대접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능력이 없어 대접을 하지 못할 사람들을 초대하여 대접하면 나중에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눅 14:1-14).
그러자 그 자리에서 함께 음식을 먹으며 이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15절하)라고 합니다. 뜬금없이 이 말을 한 사람의 동기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해서 그렇게 말했는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들을 옹호하려고 최후의 잔치에 포함되기만 하면 어떤 자리에 앉든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것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의 말을 듣고 또 다른 잔치의 비유를 통해 바리새인들의 불신앙을 꾸짖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열고 많은 사람을 초청하였습니다(16절). 마태복음 22장에서는 왕이 잔치를 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리에 초청 받은 사람은 영광인 것입니다. 그런데 초청 받은 모든 사람이 여러 핑계를 대고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시 높은 사람의 결혼 잔치와 같은 것은 잔치가 준비되기 전에 미리 구두로 초청하고, 잔치 준비가 되면 다시 초청하는 것이 상례였다고 합니다. 오늘날처럼 초대장에 올지, 오지 않을 것인지 체크해서 보내지는 않으나, 처음에 초청을 받아 응하고서는 두 번째 초청을 거부하는 것은 초청한 사람에 대해 큰 모욕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17절)라고 한 것을 보면, 이번 초청은 두 번째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어느 누구라도 자기 자녀의 결혼식 준비를 열심히 하여 크게 잔치를 베풀고 온다고 한 손님들이 핑계를 대고 오지 않으면 상당히 실망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초대한 사람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모두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왕의 초청을 거절한다는 것은 곧 왕을 거절한다는 뜻이며, 왕으로 인정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모욕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들의 핑계 거리를 살펴봅시다. 어떤 사람은 밭을 샀으니까 가보아야 하겠다면서 거절합니다(18절). 아니 잔치에 참석하고 나서 가보면 될 것 아닙니까? 분명히 부자라서 밭을 샀을 것이고, 노예도 있어서 그 밭을 돌보고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왕의 잔치에 갈 수 있습니다. 밭을 산 것을 자랑하는 것처럼 거들먹 거리며 핑계를 대는 것은 초청한 사람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소 다섯 쌍을 샀기 때문에 가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19절). 마찬가지로 이미 매매가 끝났기 때문에 시험해 보아서 잘못 샀다 하더라도 무를 수가 없으니까, 얼마든지 잔치에 참석하고 가도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도 소 다섯 쌍을 샀다고 핑계를 대고 그저 자랑하는 것일 뿐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장가들어 신부를 맞이하였기에, 아내를 즐겁게 해야 하겠기에 못 참석한다고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20절). 이 사람 역시 신부를 사랑하고 신실함을 과시하는 것 같지만, 얼마든지 그 날 잔치에 참석을 하고 나서도 신부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가기 싫어서 핑계 거리를 삼은 것입니다.
세 부류의 사람들 모두 일상생활에 얽매여, 정욕에 이끌려 핑계를 대고 의지적으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자리를 거절합니다. 자기 자랑들뿐입니다. 왕의 잔치보다 자신들의 일상이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이에 초청한 주인이 진노하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21절)고 합니다. 이미 잔치 준비가 다 되었으니 초청 받지 못했던 천한 자들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미 앞 단락의 잔치 비유에서도 자신들 스스로 높다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부르기 보다 “잔치를 배설하려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13절)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거절하면 그들이 천하게 생각하고 멸시하는 자들이 초청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이 주인이 시킨 대로 저들을 다 불러 데려왔어도 자리가 남았다고 하니(22절),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3절)고 합니다. 억지로라도 잔치 자리를 다 채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왕의 잔치에 유대인들만 초청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초청을 받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방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지 강권하여 모든 사람을 초청하라고 합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지상대사명(The Great Commission)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하셨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일들이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롬 9:25-26; 호 2:23; 1:10)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하여 유대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라고 하였습니다(롬 11:11).
그래서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여 종들은 길과 산으로 나아가 아무든지, 도덕적으로 악한 자든지 선한 자든지 상관하지 않고 모두 데려옵니다. 세리든지 창기든지, 간음한 자든지, 살인자든지, 도적질한 자든지 상관없습니다. 세상 사람 눈에 보기에 아무리 착해 보이는 자들도 소용 없습니다. 모두가 초청에 응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구원 받기에 합당한 자는 인간적인 외적 요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개인적으로 믿음을 갖는 사람입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 잔치의 초청에 그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응한 자는 영광스러운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 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또 이 세상에서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남들에게 악하게 살지 않았다 하더라도 누구나 예외 없이 왕의 초청에 응하여야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24절)라고 명하십니다. 즉,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만왕의 왕의 초청을 거절한 자들은 결코 천국 잔치의 맛을 보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천국의 잔치 자리에로의 초청을 거절하는 자들의 결국, 초청을 받고 잔치에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데 여러 핑계를 대고 참석하지 않은 자에 대한 결국을 교훈하고 계십니다. 이미 예수님은 지난 3년 가까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하여 선포하며 가르쳐 왔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구세주로, 메시아 임을 선포하였습니다. 기적을 행하시며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거의 모든 유대인들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주로 믿지 못하고 거절합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왕이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잔치에 초청을 거절합니까? 그저 자신의 일들에 얽매어 이기적인 욕심으로만 살아가고 있습니까? 정말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차려 놓고 왕과 함께, 왕자와 함께 즐기며 그 영화로운 자리에 초청하건만 왕이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거절했습니다. 사실 제일 먼저 초청을 받는 특권이 있었기에 당연히 와서 그 은혜를 누렸어야 할 사람들이었으나 자신들의 이기적인 삶, 자기 의를 내세우는 교만한 삶 때문에 거절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왕의 사자들, 종들을 붙잡아 능욕하고 죽이는 자들이 기독교 역사상 많았습니다. 오늘날도 있습니다. 복음을 들고 전하며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로 초청하지만 오히려 신실한 그들을 핍박하고 능욕하고 죽이는 자들 말입니다. 모슬렘 권에 있는 사람들이나 공산권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유진영에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많습니다. 참된 복음을,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괴롭히는 사람들 말입니다.
하지만 귀한 사랑의 자리를 거절한 그들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자들에게로 향하셔서 초청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기에, 율법을 지키고 살기에 때가 되면 천국 잔치에 그들의 자리가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바깥에서 울며 이를 갈고 후회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단 한가지 이유 때문에 말입니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왕이신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 그 귀한 은혜를, 사랑을 거절한 이유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비록 스스로는 의롭다고 여기는지 몰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합당치 않은 자들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고 하였습니다. 즉 천국에 합당한 자는, 구원을 받는 자는 인간적으로 착하거나 종교적으로 열심인 자들이 아닙니다. 단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메시아로 받고자 하는 왕의 초청에 응하는 자입니다.

한편, 마태복음에서는 초청을 받고 잔치에 참석했는데 왕이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을 보고 쫓아 내는 장면이 있습니다(마 22:11-13). 예복을 입는다는 뜻은 초청을 받고 그 큰 사랑을 깨달은 후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멋대로 초청에 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제사를 드리지 않고 자기 멋대로 제사를 드렸던 가인(Cain)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참 성도의 바른 예복은 하나님께서 주신 의의 옷,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거저 주시는 옷입니다. 그래서 은사, 곧 은혜로운 선물이라고 하지요. 이 옷을 입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그 나라에서 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고 하였고,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고 하였습니다. 아니 이미 이사야 선지자가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고 하였습니다.  
더러운 육신의 옷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거룩한 하나님의 의가 입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자녀다운 거룩한 삶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복을,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는데 함부로 살 수가 없지요.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도 초청을 받은 사람은 많습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외치는 자의 초청을 듣는 이는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내 개인생활로, 생업으로, 이기적인 욕심으로 여러 핑계를 대면서 초청을 거절합니다. 아니 어떤 이는 거절할 뿐 아니라 초청장을 주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반드시 왕이신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제발 핑계 대지 마십시오.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초청하십니다. 그저 믿음으로 초청에 감사하면서 참석하십시오. 나 같은 죄인도 사랑으로 초청하시기에 말입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누군가 강권하여서 초청에는 응하지만, 자기 멋대로 잔치에 참여합니다. 왕을 존경한다면, 왕에 대한 예우를 생각한다면 예복을 입고 잔치에 참석해야 하는데, 예복도 입지 않고 참석합니다만, 결국 그도 마찬가지로 심판을 받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다 택함을 입은, 왕의 초청에 응하여 예복을 입고 잔치에 참여하는 택자이기를 바랍니다! 고귀한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 아들과 함께 즐거운 축복의 자리에서 함께 영화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예수님이 믿어집니까? 내가 믿는다는 표현보다는 믿어져서 믿는 것입니다. 고귀한 선물이 선물로 순수하게 생각되고 받아 누리는 그것이 은혜 입니다. 불가항력적인 은혜, 그 은혜의 옷을 입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인쳐진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의 유전인자로 인하여 여러분을 닮아가듯이, 하나님의 의가 여러분을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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