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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2-18 (목) 07:00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33    
피할 것과 힘쓸 것 (딛 3:9-15)




교회가 올바로 세워져서 이웃들에게 진리의 복음이 잘 전해지려면, 교인들이 변화된 삶의 모습으로 이웃에게, 사회에 보여져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모습이,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레데 섬에서 목회하는 디도에게 1장에서 교회 안에서 감독(목사와 장로)들의 자격을 설명하면서, 그들과 교인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언급을 하였습니다. 2장에서는 집사들, 즉 교회 안의 직분자들의 자격과 믿는 교인들 사이가 어떠해야 하는지 말했습니다. 그리고 3장에 들어와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라와 사회와 이웃을 떠나 사는 것이 아니기에,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나라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하기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성품을 보여주는 행동들이 드러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말씀하였습니다(3:1-2). 6 가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이었습니다. 1)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be subject), 순종하라(be obedient)’고 합니다. 2)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를 예비하라고 합니다. 즉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들을 억지로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면서,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준비를 늘 하라고 합니다. 3) 아무도 훼방하지 말라고 합니다. ‘중상모략, 혹은 모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 이웃과 다투지 말라고 합니다. 가능하면 화평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대할 때에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5) ‘관용하라(be considerate, gentle)고 합니다. 6)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라고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5절).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큰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었기에, 영생을 소망을 기업으로 이을 자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6-7절). 그러면서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8절)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디도서의 결론에서 바울은 교인들에게 피할 것과 힘쓸 것을 말하면서 마지막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9절)고 합니다. 거짓교사들에 의하여 교회 안에 분란이 일어나는 것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이 구약의 율법을 해석하는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어, 족보, 전통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주장하며 교회를 어지럽힌 것입니다. 특히 새 신자들을 헷갈리게 한 것입니다. 족보에 대한 관심은 아마도 유대인의 민족적 우월감, 일체감을 확립하려는 열망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혈통의 순수성, 유대인들의 전통과 특권의식을 고수하려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이런 것을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로 치부합니다. 중요하지 않는 이슈로 분쟁을 일으키거나 율법에 대한 주장으로 교회 안에서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당시 그레데 섬의 교인들이 쓸데없는 주장과 신학적 논쟁으로 다투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이 무익하고 헛된 것이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복음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서로 논쟁하고 다투는 동안 분노와 미움이 생겨서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복음 전도에 방해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 중요하지 않은 신학적인 논란이나 검증 불가능한 사변적 이론들, 기괴한 성경해석, 말장난에 불과한 주장들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무익하고 헛된 것입니다. 또는 정치적인 견해 차이로 개인적인 주장과 선호 때문에 다투고 분열하는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를 섬기는 방법에 있어서 차이 때문에 분쟁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교회는 제 사명을, 역할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죽어가는 세상에 구원과 사랑과 소망을 전해주어야 할 교회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경계해야 합니다. 피해야 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10-11절)고 합니다. 거짓교사들에 빠져서 이단에게 속한 사람들을 한두 번 훈계하고서 듣지 않으면 멀리하라고 합니다. 그들에게도 기회는 주었습니다.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는 사람들을 훈계하는 목적은 회개하고 올바른 진리의 복음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훈계하는 내용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한두 번 훈계를 했음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그 때는 멀리해야 합니다. 쫓아내야 합니다. 더 이상 교회를 어지럽히게 두면 안됩니다. 이 과정은 예수님께서 죄를 지은 교인들을 어떻게 치리하는지 가르쳐주신 대로 하면 됩니다(마 18:15-17). 한두 사람이 찾아가서 권고하였는데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기를 거부하면 두 세 증인들 앞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회 앞에서 다시 책망하고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출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이방인같이 여기라고 했습니다. 그런 자들은 더 이상 교회에서 교제와 예배와 섬김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교인들로부터, 교회와 단절되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달라질 것입니다. 만약 그냥 방치해두면 결코 그들이 회개에 이를 수 없습니다. 택자라면 돌아올 것이고, 택자가 아니라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겠지요. 은혜를 거부하고 계속 잘못을 회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부패하여서 스스로 기만하며 정죄한 자로 계속 죄를 짓는 것입니다(11절).

바울은 디도에게 보내는 서신의 마지막 당부로 자신이 보내는 주의 종, 선교사들의 필요를 채워주라고 하며, 안부를 전합니다. 우선 자신의 앞으로의 계획을 말합니다.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과동하기로 작정하였노라”(12절)고 합니다. 아데마에 대해서는 신약성경에 알려진 바가 없어서 잘 모르나 전승에 의하면 바울의 제자로서 나중에 루스드라의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두기고는 잘 알려진 인물로서 바울과 함께 여러 번 선교여행을 하였습니다(행 20:4; 엡 6:21-22; 골 4:7-8). 또한 디모데를 불러오기 위하여 에베소로 보냈던 바울의 동역자이었습니다(딤후 4:12). 바울은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디도를 대신하여 그레데 섬으로 보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두기고는 이 서신을 쓴 후에 바울과 함께 마게도냐 지역을 다니며 함께 일한 것을 보면, 아데마가 디도의 후임으로 그레데 섬으로 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가 도착하기 전까지 디도가 사역을 하다가, 바울이 그 해 겨울을 니고볼리에서 보낼 때에 디도를 만나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 자신의 계획을 말하면서 바울은 “교법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저희로 궁핍함이 없게 하고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13-14절)고 합니다. 교법사는 율법사 혹은 법을 전공한 자를 의미합니다. 즉 신약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만약 세나가 유대인이었다면 율법학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바울의 제자가 되고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헬라인이었다면 로마법에 능통한 변호사이었을 것입니다. 아볼로야 유대인으로서 성경에 능한 자로 아가야와 고린도에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쳤던 사역자이었습니다(행 18:24-28; 19:1, 고전 1:12, 3:4-6, 4:6). 이 두 사람이 아마도 바울이 쓴 디도서를 디도에게 전하였을 것입니다. 디도와 교인들은 그들을 친절하게 대하며, 궁핍함이 없도록 살펴보고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이었습니다. 바로 사랑의 열매,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바로 3장 8절에서도 언급한 선한 일에 힘쓰는 아름다운 것으로 사람들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찌어다”(15절)라고 하면서 편지를 마감합니다. 디도는 이 문안인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그레데 섬의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격려와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교회를 섬기면서, 여러 가지 사역을 하면서 피해야 할 것과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 안에서 쓸데없는 논쟁을 피하라고 합니다. 주님의 일을 잘 하기 위한 토론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신학적인 문제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성경해석의 논쟁, 개인적인 취향에 따르는 정치적인 견해, 심지어 교회를 섬기는 방법 등의 차이로 인한 분란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 되기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성숙한 모습이 필요합니다. 많은 경우에 의견이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빌 2:3).
그리고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잘 알아서 거짓교사, 이단의 말에 현혹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단에 속한 자들을 피해야 합니다. 한두 번 훈계를 하지만 듣지 않을 때에는 쫓아내야 합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자들입니다.
반면에 선한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믿는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고 한 것처럼, 믿음의 가족들에 말입니다. 궁핍한 자들, 어려운 자들,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특별히 주의 종들, 사역자들에게 더욱 잘하셔야 합니다. 말씀이 선포되기까지 설교자의 생활과 필요와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목회가 즐겁게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합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7)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마음과 생각이 중요합니다. 선한 마음과 선한 생각에서 선한 행동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눅 6:45). 바울이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고 말씀하신 것처럼, 늘 옳고, 정결하고, 사랑하며, 격려하며, 덕을, 품격을 나타내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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