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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3-04 (목) 06:53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761    
참으로 귀한 성도 (몬 1:1-7)

주후 62년경 로마제국의 작은 도시 골로새에서 한 범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노예가 주인 몰래 로마로 도망친 사건이었습니다. 아마 이 범인이 거기서 사도 바울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사건은 영영히 해결되지 않은 채 잊혀져 버렸을 것입니다. 범인은 바로 오네시모였습니다(10절). 그가 어떻게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되었는지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바울을 만나 회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두 사람은 교제를 통해 친구가 되면서 오네시모가 전 주인 빌레몬과의 관계와 자유를 찾아 도망치게 된 경위를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자라면서 바울의 동역자로 선교 사역을 도왔습니다. 바울은 그가 새 사람이 되었기에 주님 앞에서 인정받을 만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빌레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짧은 1장의 편지를 통해 오네시모의 범죄와 믿음과 신앙고백과 은혜, 사랑과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죄를 범한 오네시모와 빌레몬과의 화해를 구하면서 믿음을 실천하는 두 사람의 모습과 중재자 바울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과 빌레몬 사이의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옥중에 갇혀있던 바울은 빌레몬을 가리켜 “우리의 사랑을 받는 동역자”(1절)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사랑을 받는 동역자라고 합니다. 오늘날로 표현하면 목사의 사랑을 받는 동역자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일을 함께 하는 자입니다. 또 2절에 그의 아내로 여겨지는 압비아와, 학자들마다 의견이 달라 그의 아들인지, 장로인지 확실하지 않은 아킵보를 가리켜 “우리와 함께 군사된” 자로 말합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아킵보에게 직접 “주 안에서 직분을 삼가 이루라”(골 4:17)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일하던 자입니다. 그러므로 아마도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이자, 골로새교회의 장로 혹은 집사이었을 것 같습니다.
한편 바울은 또한 이 편지의 수신자 “네 집에 있는 교회”라고 합니다. 바로 빌레몬의 가정을 가정교회로 지칭하는 말입니다. 빌레몬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빌레몬이 노예들을 거느린 부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과 디모데가 그의 친구들이자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며 선교사역에 헌신하고 다른 성도들을 섬기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가정을 열어 예배를 드리며, 교제하면서 교회의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즉 초대교회는 성전에서도 모였지만, 가정교회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빌레몬도 굘로새교회 교인이면서 그의 가정교회를 섬기는 자였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부흥하기 원하는 건강한 교회들은 바로 이 진리를 실천하며 교회 운동을 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가정들이 문을 활짝 열고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레몬과 교인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3절)! 그의 서신 서두에 종종 그러했듯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모든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아낌없는 은혜와 평강을 풍성하게 경험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빌레몬과 그의 가정에 감사를 전하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4절).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5-6절)고 합니다. 빌레몬의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칭찬합니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그에게 범죄한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가 성도들과 나누는 교제가 그들 사이의 선, 곧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에게까지 미치도록, 주님이 알게끔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7절)고 합니다. 빌레몬의 사랑과 섬김으로 인하여 성도들이 믿음의 격려를 받았고, 마음이 평안을 얻게 됨으로 그와 함께 사랑과 선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성도입니까?

빌레몬을 통하여 오늘 우리는 참으로 귀한 성도는 어떤 분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첫째, 참으로 귀한 성도는 제사장 직분을 감당합니다. 중세 시대 영적으로 타락해가던 로마 캐톨릭으로부터 개혁을 부르짖던 종교개혁자들의 주장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만인제사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사제나 신부만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고, 평신도는 직접 나갈 수 없다라는 잘못된 천주교 교리를 지적하고 나선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가르침은 평신도들도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특권이 있고, 이는 특권인 동시에 모든 성도가 다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음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첫 종교개혁이 사제의 손에만 있던 성경책을 평신도의 손에 넘긴 사건이라면, 둘째 종교개혁의 과제는 사역을 평신도의 손에 제대로 넘겨 그들을 평신도 사역자로 세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만인제사장’의 진리가 그 내용입니다. 그러나 잘 지켜지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성도들 가운데 실제로 사역하고 있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얼마나 됩니까? 교회가 점점 양적으로 늘어가면서 방관자(bench warmer), 마치 공연장의 구경꾼들만 많아지지, 실제로 일하는 일군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빌레몬처럼 교인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참으로 귀한 성도인 것입니다. 마치 고린도교회의 스데바나, 브드나도, 그리고 아가이고와 같은 성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고전 16:18)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참으로 귀한 성도는 참된 믿음의 교제를 합니다. 그 본질은 ‘koinwni,a(fellowship),’ 즉 나눔입니다. 바로 믿음의 교제입니다(6절).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삶을 나누고, 서로의 삶 속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빌레몬의 집에서는 믿음과 사랑의 살아있는 참된 교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의 교제 결과가 그들이 주님 안에서 누리는 선한 것들을 알게 하며, 주님의 평안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빌레몬이 자기 집에 모이는 성도들에 대한 관심과 돌봄으로 그 성도들이 삶의 위로를 얻기도 하고 주님 주시는 평안을 체험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집은 마치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초대교회 교인들은 서로 참된 교제를 나눔으로 얻은 기쁨과 위로로 세상을 정복하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은 바로 이 믿음의 교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교제하며 힘써 기도하면서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기의 삶을 나눌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사랑과 믿음의 교제를 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의 교제가 우리에게 치유와 위로, 격려 더 나아가 변화를 체험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주님의 마음을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아닙니까?
20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이러한 믿음의 교제를 강조한 Thomas Allen 목사님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메마른 교회 안에서 오아시스처럼 물을 내뿜는 공동체들만이 슬픔과 문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진지한 관심을, 삶의 치유책을 제공할 것이다. 교회 역시 참되고 역동적인 공동체 생활, 즉 초대교회에 나오는 ‘koinwni,a (fellowship)’를 드러내 보일 때에만 비로서 참된 교회의 역할을 온전히 발휘하고 세속적인 세상에 성공적으로 침투하여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참으로 귀한 성도는 전도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는 그들로 또 제자를 삼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마 28:19-20). 그들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빌레몬이 속해 있던 골로새교회는 이러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 1:6) 하였습니다.
사실 증식하지 못하는 세포가 병든 세포인 것처럼 재생산하지 못하는 성도도 영적으로 병든 성도인 것입니다.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마침내 주님 앞으로 인도하고 제자로 삼는 일이 성도의 존재 목적입니다. 건강한 성도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저는 본문을 통해 참으로 귀한 성도의 특징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자’ 입니다. 구경꾼이나 방관자가 아닙니다.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나누고 기도해주는 제사장 사역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목사나 전도사 등 교역자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가 감당해야 합니다. 둘째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교제, 사랑과 믿음의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서로 진솔이 삶을 나누는 공동체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사랑과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 돌보는 것입니다. 셋째로, 삶의 목적이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전도와 제자 삼는 일을 효과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몸소 실천하는 본을 보이면서 택한 백성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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