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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3-11 (목) 06:46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978    
주 안에서 형제 자매가 되었으니 (몬 1:8-17)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예수님이 머리가 된 공동체를 이루고 세워가면서 서로 주 안에서 형제, 자매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맺어진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엡 2:19). 그래서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라고 찬송합니다. 그렇게 주 안에서 형제, 자매가 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1-7절에서 바울은 자신과 빌레몬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참으로 귀한 성도 빌레몬의 사랑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빌레몬이 집을 열어 가정교회를 이루고, 교인들을 섬기며 참된 믿음의 교제를 나누며 전도의 열매를 맺고 있음을 칭찬하였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 실제로 자신이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담력을 가지고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8절) 하였습니다. 앞서 그의 사랑으로 인하여 바울이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고 했습니다(7절). 바로 이러한 빌레몬의 사랑과 섬김이 이제 바울이 부탁할 이야기의 근거가 됩니다. 물론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도의 권위로 담대하게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 있습니다(8절). 그러나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9-10절) 합니다. 사도의 권위로 명령하는 것보다 빌레몬의 하나님과 성도들에 대한 사랑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성도들을 위하여 행동하는 능력이 그 사랑에서 오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바울 자신이 나이가 많고 예수님을 위해 감옥에 갇힌 것을 빌레몬이 기억해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감옥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그는 두 사람 사이의 친분으로 친구에게 말하듯 빌레몬에게 호소합니다. 여기 ‘간구하다(appeal)’는 뜻은 ‘호소하다’ 입니다.
그런 다음에 빌레몬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영적으로 낳은 아들, 즉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은 오네시모를 위하여 호소한다는 것입니다. 빌레몬은 이 편지를 읽으면서 오네시모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배신하고 도망간 종, 도둑과 같은 오네시모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를 바울이 지금 자기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바울의 전도로 말미암아 오네시모가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제자가 되었으니 그 둘 사이도 형제가 된 것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저를 돌려 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11-12절)고 합니다. 비록 오네시모가 낮은 종의 신분과 전에 법을 어긴 범죄자로 빌레몬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을 것 같으나, 이제는 달라졌고 바울에게도 빌레몬에게도 유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이익이 되는, 도움이 되는’이라는 뜻입니다. 정말 그 이름대로 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사회에서는 종의 신분이지만, 그의 믿음의 고백과 변화된 삶을 기초로 바울은 그를 자유롭게 하였습니다. 심지어 그의 사역에도 동참하도록 기쁘게 환영하며 동료로, 아니 심복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네시모는 바울에게 또한 그의 사역에 유익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빌레몬에게도 유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마 바울 자신이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의 영광에 사로잡혀 회심하고, 눈이 멀어 어느 작은 집에 사흘 동안 있었던 경험을 되돌아 보았을 것입니다. 눈도 안 보이고, 먹을 것도 없었으며, 자신의 과거 때문에 사도들 사이에서 의심을 받고 있었을 때에 아나니아가 찾아와 그를 안수하고 형제라고 불러준 기억을 하면서 말입니다(행 9:17). 또한, 바나바가 그를 데리고 사도들에게 소개하면서 정말 예수님을 만나 변화 받았다고 인정할 때에(행 9:27) 자신도 과거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분명히 오네시모도 회심하고 변화 받은 후에 바울을 도와 사역에 참여하면서 정말 변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변화를 받았다고 해서 과거의 책임과 관계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제자 훈련을 시키면서 종종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복종할 것을, 종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역할을 일러주었기에 오네시모는 주인에게 돌아가는 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 의무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어쩌면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돌아가는 것은 인간적으로 싫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도망한 노예는 죽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제 오네시모에게 믿음이 생겼으니 진리의 말씀을 따라 정식으로 용서와 승인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네시모는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결코 과거의 잘못을 그냥 덮어버리고 도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를 직시하고 용서를 빌고, 자신이 행한 바 그 결과에 대하여 담대히 직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저를 내게 머물러 두어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13절) 하였지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14절)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실제로 오네시모를 오래 자기 곁에 머물러 두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서로 소중한 친구, 동역자가 되어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계속 로마에 머문다면 자신을 믿음과 사랑으로 잘 섬길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빌레몬이 그의 주인으로 당시 법으로 오네시모는 그의 소유였기에 그의 승낙이 없이는 그렇게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직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의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노예제도는 분명히 성경적이지 않으나 하나님이 허락한 그 당시의 사회적으로 되어있는 제도이기에 바울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미 바울이 빌레몬이 속한 골로새교회에게 보낸 편지에도 종들에게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2, 24)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인들에게는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골 4:1)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에 붙들려 있으면 사회의 악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기에 오늘날도 악이 득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마음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냄으로 빌레몬이 이러한 선한 일을 억지로 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자발적인 사랑으로 하기 원했습니다(14절하). 전적으로 그에게 맡기면서 합당한 판단으로 오네시모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강압적으로 하기 원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조정하거나 죄책감으로 하기 원하지 않았습니다. 빌레몬도, 오네시모도 모두 진리의 말씀을 따라, 신앙양심에 따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따라 반응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갖게 해준 것입니다.

그런 다음 바울은 빌레몬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사실을 언급합니다. “저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를 인하여 저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 이 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15-16절)고 합니다. 자신이 오네시모를 잠시 빌레몬에게 보내는 것은 두 사람이 만나서 엉클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난 후에 다시 자신의 곁에 두고 함께 선교 사역을 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다시 바울에게로 보냈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오네시모가 배신하고 도망친 것이 빌레몬의 믿음의 성숙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네시모를 사용하며 빌레몬이 더욱 주님을 닮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마치 요셉이 형들의 배신으로 인하여 오래 고생하였으나, 나중에 하나님께서 선을 위하여 형들을 사용하신 것을 깨닫고,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라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네시모의 배신을 오네시모, 빌레몬, 바울 그리고 그들의 사역을 통해 유익을 얻게 된 많은 사람들을 위한 복으로 바꾸셨던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도망을 갔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임하였던 것입니다. 빌레몬은 큰 손실을 보았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더 풍요롭게, 더 성숙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하신 말씀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를 종으로 생각하지 말고 사랑 받는 형제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종의 신분에서 풀어주어 자유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그러했는데 하물며 빌레몬은 더욱 그렇게 주 안에서의 형제로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16절의 사랑은 아가페를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용서하고 용납하는 사랑입니다. 빌레몬도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를 다 용서해주신 하나님처럼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용납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록 여전히 오네시모는 종이지만 두 사람 사이는 사랑하는 형제 사이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찐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라”(17절)고 합니다. 형제애, 우정으로 두 사람 모두 가지고 있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사역에 대한 열정을 통해 일체감을 갖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이미 바울과는 그런 관계가 되었으니 그들 두 사람 사이도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동무, 동역자 의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주 안에서 형제, 자매가 되었다는 의미는 우선 서로 믿기 전의 모습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믿기 전에 서로 어떤 이해관계로 엉클어진 문제가 있다면, 믿은 후에 반드시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형제, 자매로서의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의 또 다른 옥중서신 에베소서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절하-3절)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그 큰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서로 형제 자매가 되었으니 서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무슨 잘못을 했더라도 하나님처럼 용서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풀어야 합니다. 만약 용서하지 못하면 가장 마음 아파할 분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자녀들이 서로 미워하고 하나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었으니 함께 일을 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주님 사랑으로, 온 가족을 사랑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동역자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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