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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3-28 (일) 01:1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7    
죽임 그 이후 (눅 16:19-31)


죽음을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아마도 예외 없이 다 생각해보셨을 것입니다만, 젊은이들은 어쩌면 자신들과 상관이 없다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면서 현실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한번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가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천지창조를 하시고, 인간을 만드시고는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창 1:31). 그 때는 인간에게 죽음은 없었습니다.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사탄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정녕 죽을 것이라고 한대로 그들에게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창 2:16-17). 즉 태초에는 이 세상이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의 불순종으로 악이 주장하는 세상, 즉 질병, 재앙, 부패, 그리고 죽음이 만연한 세상에 인간이 종속되어버린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의 죄가 모든 인간에게 전가되어 육체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단절되는 영적인 죽음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롬 5:14).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영생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엡 2:8).

누가복음 16장에 들어와 예수님은 유대종교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을 상대로 말씀하였습니다.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세상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는 불의한 청지기라고 비유의 말씀을 하시고(1-12절), 결코 두 나라를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난 주일 살펴보았듯이 여전히 돈을 좋아하는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 나라 중심의 바른 신앙으로 사람의 눈보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씀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이미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구약성경의 말씀을 성취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 이루시는 것이었습니다.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16-17절).
그리고는 오늘 본문의 유명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다고 하면서 불의한 청지기 비유(1-12절)를 시작할 때처럼, 똑같이 한 부자가 있었다고 합니다(19절). 이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하였습니다. 당시 돈을 좋아하던 바리새인 부자처럼 말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명품 옷을 입으며 매일 파티를 열고 즐기는 이름없는 부자입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거지 나사로라고 이름을 알려줍니다(20절). 거지라고 번역된 원어는 ‘아주 가난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 떨어지는, 즉 부자가 버리는 음식으로 배를 채웁니다(21절). 가난할 뿐만 아니라 피부병도 있습니다. 개들이 와서 피부의 종양이 난 데를 핥더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너무 대조적인 두 사람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을 두 사람도 맞이합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22절)라고 하였습니다. 부자던 가난한 거지던 다 죽습니다. 다만 이생에서의 삶이 그렇게 달랐듯이, 죽은 후에의 삶이 너무 다릅니다. 거지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이끌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여기 “아브라함의 품”은 ‘낙원’ 혹은 ‘천국’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눅 23:42-43 참고). 즉, 유대종교인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는 말은 곧 천국에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천국에 갔다고 하였습니다(롬 4장). 사실 나사로의 헬라어 이름(Lazarus)이나 히브리식 이름(Eleazar)의 뜻은 ‘하나님이 돕는다’ 입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도움을 입어 천국에 갔다는 상징적인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자는 장사를 지냈으나 음부(Hades), 곧 지옥으로 갔습니다(23절). 나사로는 장사도 못 지냈을 것입니다. 그냥 죽은 시신을 갖다 버리는 곳에서 불에 태워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아마도 장례식도 화려하고 크게, 많은 사람들의 조문 속에 치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죽은 후 음부에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입니다. 뜨거운 불 속에서 너무 목이 말라서 혀에 물을 조금 적시게 하여 시원하게 해달라는 요청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24절).

그런데 그가 눈을 들어 천국의 아브라함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다고 합니다(23절). 오해하지 마십시오, 성경 어디에도 지옥에서 천국을 볼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주기 위하여 비유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24절)라고 했더니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25-26절)고 하였습니다. 즉 부자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산 것이 아니라 그저 세상 나라 백성으로 재물을 섬기고 살았지만,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 비록 병들고 가난했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고난을 받았기에 천국에서 위로를 받고 있다는 비유입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 사이는 큰 구렁이 있어서 오고 가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27-28절)고 합니다. 계속해서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혈통을 강조하던 유대종교인들처럼 말입니다. 택함을 받은 백성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지옥에서 너무 고통을 받고 있으니까 아직 죽지 않은 자신의 형제 다섯에게 나사로를 보내어서 증거하여 지옥에 오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형제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말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찌어다”(29절)라고 합니다. 그 형제들이 구약성경을 갖고 있으니, 성경 말씀을 잘 들으면 하나님 나라 중심의 바른 신앙을 갖게 되어 지옥에 가지 않고 나사로가 있는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30절)라고 대답을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자기도 이 세상에 살 때에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씀이 있었건만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에 지금 지옥에 있으니,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나 세상에 가서 그들에게 증거를 하면 회개하고 믿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부활의 기적을 보면 믿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마르다와 마리아의 남동생 나사로가 죽었다가 나흘 만에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살아나지 않았습니까(요 11장). 그래도 유대종교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 전에도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베푸시면서 자신이 정말 메시아임을 증명했었으나 믿지 않았지 않습니까? 마치 출애굽할 때 10가지 재앙의 기적과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하고도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그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즉 사람들은 아무리 기적을 보여주어도 하나님 나라의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또 기적만을 쫓아야 하는 신앙이기 때문에 그런 것 보여주지 않으면 다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31절)고 하면서 비유의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참 신앙을 갖게 되어 영생을 누리는 것이지, 죽었다가 살아난 기적을 보아도 회개하고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즉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말씀에서 은혜를 받고, 말씀대로 살아보고, 말씀의 약속들을 믿어 참 복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말씀을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지금 이 비유의 가르침이 이 세상에서 부자는 다 지옥에 가고 가난한 사람은 다 천국에 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돈이 많고 적음이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믿음이 있으면 부자던 가난한 자던, 건강한 자던 병든 자던, 유식한 자던 무식한 자던, 남자던 여자던 관계 없습니다. 물론 사람이 돈이 많으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돈을 의지하며 신경을 쓰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 귀에 들어가는 것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마 19:24; 막 10:25).
16장 전체 문맥에 비추어보면 오늘 본문도 바리새인들처럼 재물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다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13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 나라가 임했으니 회개하라고 선포하시는 말씀을 믿고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시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는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비유의 분명한 가르침은 죽음 이후에 삶이 천국과 지옥으로 극명하게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넘나들 수가 없습니다. 그 때가서 후회하면 너무 늦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하였고,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악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니라”(계 21:8)고 하였습니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대표인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죄의 대가로 누구나 죽습니다. 이 사실(fact)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2021년 종려주일로 지킵니다. 2000여년 전에 율법과 선지자들에게서 예언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30년은 부모를 도와 사적인 삶을 영위하시다가, 마지막 3년을 자신이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참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그 목적, 사명 때문에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구약성경에 예언된 대로(슥 9:9) 예루살렘 성에 나귀를 타고 들어오신 날입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메시아로,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친히 통치하실 왕으로 임하시는 줄 알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찬송을 부르며 대 환영을 했던 날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자 며칠도 되지 않아 모두 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믿었다면 예수님이 정말 예언되어진(사 53장) 고난의 메시아로 믿었다면, 자신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실 분으로 믿었다면, 구약성경이 예언한 대로(시 16:10-11) 사흘 만에 부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을 것을 믿었더라면, 아니 예수님이 3년 동안 그 복음을 선포하시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쳤는데 올바로 깨닫고 믿었더라면 죽은 후에 지옥에서의 고통을 면하고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 중 한 예로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고 지옥을 말씀하셨고, 이어서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 25:45)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죽음 이후의 삶을 맞이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그 후에 세상이 있기에 우리로 하여금 준비하라고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 복음에 대한 반응이 그 영원한 삶을 결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함으로 반응한다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눈물과 고통이 없는 곳, 병이 없는 곳, 아니 죄가 없는 곳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도 믿지 못한다면 죽은 후에 지옥의 뜨거운 불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책임이 당신에게 있습니다.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단들이 있지만 신구약 성경은 분명히 지옥이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금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회심하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마십시오. 인생에게 내일은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여러분 삶의 주로 받아들이시고 믿는 순간 하나님 나라 백성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됩니다. 양자가 되어 친 아들 예수님의 형제, 자매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연약한 자들에게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기적을 보여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라고, 말씀을 중심하고 살라고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믿고 나서 아셔야 합니다. 아기가 태어났다고 그냥 내버려 두는 부모는 없습니다. 먹이고 입히고 양육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으로 먹이고 입히고 양육하십니다.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러므로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경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종종 이 땅에서 여러 가지 고난을 겪게 됩니다. 세상 나라가 전부인줄 알고 사는 사람들, 돈을 섬기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난은 일시적입니다. 길어야 90세, 100세까지 입니다. 그 후에 억 천만년을 주님과 함께 화려한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확실히 믿고, 이 소망으로 산다면 이 세상에서의 고난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더 거룩하게 살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려고 합니다. 돈을 주인으로 삼지 않기에 돈의 눌림으로부터 자유 합니다. 오히려 돈을 다스립니다. 훗날 칭찬 받을 신실한 청지기로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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