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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4-18 (일) 01:3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835    
참 믿음이 있으면 (눅 17:5-10)


많은 분들이 믿음의 양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자신의 믿음 혹은 어떤 사람의 믿음이 ‘많다(크다)’ 혹은 ‘적다(작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표현이 믿음이 ‘강하다’ 혹은 ‘약하다’ 라는 의미라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아니면 믿음이 ‘성숙하다’ 혹은 ‘미성숙하다’ 라는 의미라면,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큰 믿음, 작은 믿음이 아니라 참 믿음이냐 아니냐, 믿음이 성숙하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신구약 성경에서 계시하는 하나님이라면 아무리 작은(적은) 믿음이라도 능력이 있습니다. 크고 위대한 하나님을 믿기에 큰 믿음, 위대한 믿음, 강한 믿음, 성숙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지난 주일에 어찌하든지 조심해서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지 말고, 누가 우리를 실족하게 하거나 잘못하면 용서하라고 했습니다(1-4절). 기억하십니까? ‘받은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의 잘못은 물에 새기라’는 혹자의 말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5절) 라고 합니다. 즉 그들이 생각하기를 믿음이 작아서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지난 주일 설교를 듣고 자신이 믿음이 작아서 누구를 용서를 못한다고 생각하신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누가가 제자들을 ‘사도들(avpo,stoloj,,, apostles)’ 곧 ‘보냄을 받은 자들’이라고 부른 것은 아마도 제자들이 얼마 전에 복음전파 사역을 위해 파송을 받아 나가서 일을 마치고 돌아왔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라는 요청을 듣고,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 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6절)고 하였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믿음을 더해달라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유는 그들은 믿음을 양적으로(quantitatively) 생각했던 것입니다. 믿음의 양이 크고 작음에 따라 말씀에 순종하거나 못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종종 제자들의 믿음이 적은 것을 탓하신 적이 있습니다. 산상수훈 설교를 들을 때도 먹을 걱정을 하느라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믿지 못하였습니다(마 6:25-34). 갈릴리 바닷가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도 주님께서 그 배에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워 떨었습니다(마 8:26).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오다가 바람을 보고 빠져 버렸습니다(마 14:31).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도 주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을 먹일 것을 걱정하는 제자들이었습니다(마 16:8). 그때마다 그들의 믿음이 적은 것을 탓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에게 믿음이 적다고 할 때에는 믿음의 질(quality)을 말씀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믿음이냐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겨자씨 비유를 한 것입니다. 겨자씨가 얼마 작은지 아시나요?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참 믿음이면 능력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정말 살아계신, 전지전능하신,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면 그 믿음은 역사한다는 말입니다. 그 믿음은 누구나 용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믿음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고, 그 단단한 뽕나무에게 명하여 바다에 던져지라 하면 뿌리가 뽑혀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절하)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 앞에 놓인 어떤 큰 장애물도 물리칠 수 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믿음이라 하여도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이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이 아니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살아 역사하지도 않고, 전지전능하지도 않는 비인격적인 신을 향하여 아무리 큰 믿음이 있어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또한, 믿는 하나님이 작은 분이면 그런 하나님에 대하여 큰 믿음이 있어도 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근본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살아계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조금도 의심 없이 믿고 의지하는,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종종 어떤 분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미 예비해 주셔서 아무런 걱정이 없을 때에는, 즉 내 손 안에 무엇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잘되고 만사형통 할 때에는 쉽게 주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변하여 어려워지고, 불확실해지고, 삶의 위협을 느낄 때에는 믿음이 사라지고 맙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의 믿음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건강할 때, 삶의 필요한 것들이 다 있을 때는 믿음이 크고 강한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믿음이 작고 약하여져서 의심하게 되어 불안해합니다. 전혀 능력 있는 삶이 되지 못하는 믿음 말입니다.
참 믿음은, 능력 있는 믿음은 우리가 먹을 것이 없고, 음식을 살 돈마저 없을 때도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건강하지 못하고, 직장을 잃어버리고, 사업이 망하고, 내 명예가 실추되고, 심지어 가족들마저 다 떠나가도 욥처럼 신실하신 하나님을, 절대주권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삶에 폭풍이 몰아치고 핍박이 계속되어도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제자들은 믿음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위하여 믿음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일의 성취를 위하여 믿음을 사용하려고 하니까 이기적이고, 양적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간구가 잘못임을 지적하기 위하여, 참 믿음은 질적인 것이며 하나님 중심적인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이어서 밭에서 돌아온 종의 비유를 말씀합니다. 제자들의 잘못된 요청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 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7절) 라고 하십니다. 여기 ‘종(dou/loj, slave)’은 노예를 뜻합니다. 너희가 만약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노예가 있어서 그가 일을 하고 밭에서 돌아오면 주인인 너희가 노예에게 ‘잘 했다. 고맙다. 여기 나와 함께 앉아서 밥을 먹자’ 라고 할 자가 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당시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주인과 노예 신분의 차이 때문입니다. 아니 노예로서, 종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돌아왔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8절) 한 것입니다. 밭에서 일하고 돌아왔으면 주인이 먹을 것을 준비하여 밥상을 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인이 다 먹을 때까지 심부름을 하고 나서, 그 후에 가서 먹으라고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명한대로 하였다고 (주인이) 종에게 사례하겠느냐”(9절)는 것입니다. 아니지요. 노예가 당연히 할 것을 했는데 주인이 ‘당신 오늘 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친절하십니다’ 라고 말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제자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10절)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러 가서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도 내쫓고, 많은 일을 했다. 그러나 너희가 한 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너희에게 기대하는 일을 한 것뿐이다. 일 하고 나서 무슨 큰 보상을 받을 것을 기대하지 마라. 그저 맡겨진 일을 다 한 후에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당연히 할 일을 했습니다’ 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요점은 제자들은 하나님의 ‘종(dou/loj, slave)’이라는 것입니다. 종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다 행하여야 할뿐만 아니라, 다 행했다고 해서 사례를, 칭찬을, 대접 받기를 기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dou/loj, slave)’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의 마음을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중심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이용하여 더 큰 일을 하여 자기를 나타내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대접을 받으며, 사례를 받는 영광을 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종임을 잊고,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 자기 영광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기 위하여 종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마땅히 주님의 명령을 따라 행해야만 하는 종들이며, 다 했다고 해서 대접이나 사례를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제파악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종인 줄을 모르고 사람에게 대접받으려 하고 자기 영광을 위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꾸짖은 것입니다.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마 23:5-7) 하였습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를 다 알고 계시고, 합당한 상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 편에서 상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불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종으로 삼으시고 일을 맡겨주시니 감사합니다. 먹이시고, 입히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 믿음의 삶의 모습입니다. 용서와 겸손의 삶입니다. 성숙한 믿음의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참 믿음이 있다면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이 크신 분이요, 위대한 분이기에 그 믿음이 크고 위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용서하고 용납합니다. 이웃을 사랑합니다. 종이기에 마땅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종은 자기의 것이 없습니다. 다 주인에게 속한 것입니다. 주님이 주인이기에 종을 책임지십니다. 종이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십니다. 자신에게 속한 종이니 지켜 보호하십니다.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절하)고 하였습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은 종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주님에게 속한 종은 당연히 순종합니다. 마땅히 순종하고서 주님에게 ‘내가 이렇게 순종했는데 고맙다고 해야 하지 않나요? 보상해 주셔야지요’ 하지 않습니다. 그저 충성할 뿐입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한 것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겸손히 보잘것없는 부족한 종입니다. ‘일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와 제 가족을 돌보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이런 참 믿음으로 반응을 하였다면, 이 믿음은 역사하는 힘이 엄청 크고 놀랍습니다. 한번은 자기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려 예수님에게 고쳐 달라고 도움을 청한 가나안 여인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도 쫓아 내버리라고 했을 때에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마 15:26)고 했더니,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 15:27-28)고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어떤 분인지 믿음의 대상에 대하여 확실히 알고(마 15:22) 믿었기에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것입니다. 참 믿음이었기에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장애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개라고 할 정도로 겸손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큰 믿음이라고 칭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참 믿음이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잘 알고 믿기를 바랍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순수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 살며,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이런 참 믿음의 간구가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하였습니다(약 5:16절하). 그 때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우리 가운데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에게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 3:20-21) 하였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종’입니다. 주님의 명령을 순종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을 줄 믿고 충성하십시오. 겸손히, 참고 인내하며 주님을 따라 가십시오.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우리의 삶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를 참 믿음, 강한 믿음, 성숙한 믿음으로 부르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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