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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7-15 (목) 06:14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683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입니다 (약 2:8-13)


한 나라의 시민으로 나라의 법을 지키는 것은 당연합니다. 물론 법을 지켰다고 나라에서 상을 주거나 칭찬하지 않습니다. 다만 법을 지키지 아니하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법을 지키면 칭찬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상을 주십니다.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의무를 행하였을 뿐인데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법 중에서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라고 칭찬합니다. 바꿔 말하면 다른 일을 많이 한다 하더라도 최고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 잘못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앞선 2장 1-7절에서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차별하면 안되는데,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욱 차별하면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절대로 사람의 외모를 보고, 외적인 것만 보고 판단하거나 정죄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차별을 당하고 사는 것도 억울하고 힘든데 교회 안에서조차 그렇다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구약에서는 십계명이요, 신약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예수님께서 한 율법사의 질문에 답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39절)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8절)고 하였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최고”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구약에서뿐만 아니라, 최고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법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최고의 법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인데,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9절)고 하였습니다. 즉 교회가 사람을 차별한다면 가장 큰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공정하게 대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전도와 선교를, 구제를 많이 한다 해도 사람들을 차별한다면 교회가 하나님의 최고의 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뜻이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이 세상에서 자기가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행복하기 원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자신의 삶이나 행복만큼 다른 사람의 삶과 행복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항상 어떤 일을 할 때에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그 사람의 삶이나 안위에 조금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나만을 생각한 것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결정한 것이냐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냥 좀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내 삶의 전체적인 목적과 삶의 방향을 설정할 때에 다른 사람의 삶과 행복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이 계명이 최고의 법인 것입니다.    

이어서 야고보 사도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10-11절)고 하였습니다. 다른 법을 지킨다 하더라도 최고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 다 지키지 않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1절에 “율법을 범한 자”란 정해진 한계 밖으로 발을 내디딘 사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법을 살인, 간음, 도둑질 등과 같이 금지하는 행동이 많은 규정과 같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오늘날도 성도들 가운데 그런 부정적인 법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법을 지키고 있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금지하는 것들만큼, 긍정적으로 무엇을 하라는 것도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최고의 법인 사랑의 계명입니다.
그리고 사실 11절에서 말씀하듯이 간음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살인을 하면 범죄자인 것입니다. 사실 성경의 가르침은 살인도 꼭 사람을 죽여야만 살인이 아니고, 형제, 자매를 미워하여도 살인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일 3:15). 그래서 1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법은 돌에 맞는 순간 깨져버리는 한 장의 유리와 같습니다. 사랑하라는 법을 지키지 않으면 다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죄가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빵 하나 훔쳐 먹는 것과 간음하는 것이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죄를 하나를 범해도 범죄자인 것입니다. 금지하는 것을 다 하지 않고 있더라도 하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그 동안 잘 하던 것 때문에 범죄자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교회에 십일조도 하고 구제도 많이 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12-13절)고 하였습니다. “자유의 율법”이라 함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약 1:25)라고도 한 복음을 뜻합니다. 복음은 강요하는 율법이 아닙니다. 복음은 모든 굴레, 억눌림에서 자유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복음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율법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복음을 믿는다 하면서 모든 율법을 지키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복음을 믿고 난 후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십자가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주신 기회를 사용하여 자발적으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장래에 있을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납니다. 믿음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게 됩니다. 시기와 질투, 자기 연민, 열등감 등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이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죄인으로서 멸망을 받아야 할 우리를 구원하셨기에 영원히 살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부터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의 표현은 어떻게 남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나의 소중한 것들을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복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긍휼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않고, 긍휼을 베풀지 않으면 긍휼이 없는 심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13절).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팔복 가운데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라고 하셨듯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긍휼이 여기면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는 것이 됩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이러한 물음에 대답해야 합니다. ‘사랑과 긍휼이 필요한 자와 얼마나 나누었느냐? 그들의 고통에 동참했느냐?’는 질문 말입니다. 바로 마태복음 25:31-46 에 나오는 예수님의 양과 염소의 비유의 가르침입니다. ‘고통 중에 있는 형제를 돌보았느냐’ 하는 것으로 양과 염소를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에 관계를 맺게 한 모든 분들에게 사랑과 긍휼을 베풀면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는 것이 됩니다. 긍휼이 심판의 정죄를 이기고 승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사랑과 긍휼을 베푼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일생을 마친 뒤에 남는 것은 당신이 모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뿌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긍휼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이웃과, 맺어준 형제, 자매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기 원하십니다. 뿌리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선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나의 믿음을 증거해 줄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이 사람이 완전히 의롭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내가 고난 당할 때에 저의 고통을 나눈 사람입니다. 나를 도와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랑의 증거가 없는 자라면 어떻게 참 믿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다른 것들을 아무리 잘 했다 하더라도 이미 하나님의 최고의 법을 거역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법을 다 범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의 편견이나 편애를 없애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사랑으로 대하여야 참된 경건입니다. 특히 믿음으로 인하여 고난 당하는 자들을 보고 그들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고통을 나누는 것이야 말로 주님 앞에서 칭찬 받을 일입니다. 하늘나라의 상이 클 것입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처럼 종교적인 열심으로 자기 만족을 위하여 신앙생활하면 안됩니다. 아직도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산다면, 삶의 목적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맺어준 사람들의 풍성한 삶이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정말 예수님의 제자인줄 압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사랑장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으로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고전 13:7 새번역)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그래야 합니다. 그저 불쌍히 여기시고 덮어주시기 바랍니다.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견디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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