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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7-18 (일) 01:0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04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여라 (눅 18:15-17)

언젠가도 말씀드렸듯이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굳어져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 말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어린아이일수록 쉽지, 어른이 되고, 더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되면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기가, 사고방식을 바꾸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것을 봅니다. 그러니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분이라면,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인다면 정말 훌륭한 분입니다. 나이가 많은데도 아집이나 고집이 없다면 정말 겸손한 분으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고 한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눅 9:23).

누가복음 18장에 들어와 누가는 재림을 기다리며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기록하였는데, 마치 불의한 재판관 앞에서 끈질기게 강청함으로 한 과부의 억울함이 해결되었듯이(1-8절)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우리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며 이런 믿음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나타나기를 위하여 끈질기게 밤낮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세상에 이런 믿음이 있는 자를 찾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어떤 태도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살아야 하는지 또 다른 비유의 말씀으로 바리새인들처럼 자기의 의를 내세우며 높이는 자들,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을 두고 말씀하였습니다(9-14절). 자기가 의롭게 살기 때문에 의인인줄 알고 자신의 판단으로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멸시하는 자들을 꾸짖으면서, 제자들에게 짤막한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13절하)라고 기도하는 세리처럼, 겸손히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자신을 낮추는 자가 되라고 하면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4절하; 눅 14:11)는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앞선 두 비유를 통하여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끈질긴 기도를 드리며, 낮아져야 한다고 하신 후, 오늘 본문에서는 같은 맥락 교훈을 주기 위하여 한 사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자신들의 어린 아기를 데리고 와서 축복해달라고 하는 부모들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15절) 하였습니다. 여기 “어린 아기(bre,fh, infants or toddlers)”는 갓난 아기부터 이제 막 걷기 시작한 2세 정도의 아이를 의미합니다. 당시 유대 부모들이 어린 아기들을 랍비에게 데려와 축복기도를 받기 원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도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을 꾸짖습니다. 여기가 어딘데 감히 어린 아기들을 데려오느냐는 식입니다. 어쩌면 많은 어른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와 배우기를 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어린 아이들보다 어른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마태복음에 의하면 아마도 이 사건이 있기 얼마 전에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고 물었을 때에, 한 어린아이를 불러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3-4)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들과 같이 겸손하고, 단순히 주를 믿고 의지하며, 가식과 위선이 없는 자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여 하늘나라 백성을 삼겠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금방 잊어버렸는지 또 실수를 범하는 제자들입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6절)고 하신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로 의존, 신뢰, 사랑, 순수함 등입니다. 우선 어린아이들은 힘이 없고 아주 연약하기에 부모를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부모에 대한 신뢰는 전폭적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 입니다. 부모만 사랑합니다. 부모에 대한 사랑이 제일입니다. 그리고 아직 때가 묻지 않아서 순수합니다. 꾸미지 않습니다. 부모가 하는 대로 다 따릅니다. 받아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특성들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며 신뢰하는 믿음, 사랑의 기초 위에 순수하고 정결한, 가식과 위선이 없는 그러한 자들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어린아이와 같이 복음을, 진리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제자들을 원하지, 당시 바리새인들과 같은 유대종교지도자들처럼 다른 바램들이 동기가 된 위선적인 불신앙의 사람들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7절)고 하셨습니다.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냐 하면 그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받든다(de,comai)”라고 하는 말은 우리 말로 떠받드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원래 의미는 “받아들이다(receive)”는 뜻입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엄마의 젖을 받아들이듯이, 부모의 사랑을 그저 순수하게 받아들이듯이 말입니다. 무슨 계산을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필요하기에 간절히 원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원하는데 겉으로는 체면을 살핀다거나, 속으로 원하지 않으면서 겉으로 받아들이는 척하는 것은 어린아이들의 특성과는 다릅니다. 원하는 것을 순수하게, 전심으로 받아들이는 어린아이의 태도는 어른들의 계산적인 태도와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버리는 것과 다릅니다. 전심으로 사모하고 다른 것을 잃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취하려는 자세가 하나님 나라에 적합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로 대표가 되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은 순수하고, 힘이 없고, 잘 믿고,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자라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되어 청결한 양심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디모데에게 있었던 믿음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딤후 1:3, 5절상)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2)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은 능력이 없고 연약함을 잘 깨닫고 전적으로 성령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요 15:5). 그리고 우리가 정말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성령님의 능력이 필요하기에,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 6:10) 한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의 육신적인 힘, 건강, 지혜, 지식, 돈, 권세, 이름 등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약해질 때 오히려 성령께서 강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가 약할 그 때가 곧 강함이라”(고후 12:9, 10절하)고 하였습니다. 전도도 우리의 힘과 지식,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자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3) 부모만 바라보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아버지만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자신은 무력하기에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니 저의 힘을 인하여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시 59:9)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그렇게 믿고 신뢰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대로 다 받아들입니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벧전 2:2절상)고 한 것처럼, 말씀을 사모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순수하게 받아들입니다. 사무엘이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라고 한 것처럼,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는 어린 아기들과 같은 자들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기들처럼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린 아기들과 같이 부모를 전적으로 의존하며 믿고 부모만 따라가듯이, 세상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주님만 따라가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정결하고 순수하게 믿고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라, 그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어린 아기와 같은 제자입니까?
어떤 분들은 참된 제자를 '예수꾼' 혹은 ‘예수쟁이’로 표현합니다. 공감이 가는 단어입니다. 오래 전에 우리 교회 구역예배 공과로 ‘예수꾼 만들기’라는 교제를 사용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붙잡힌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혀 마음이 온통 주님으로 가득찬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어린 아기에게 부모가 전부이듯이 말입니다. 무슨 일을 얼마나 많이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어떤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변화를 받고, 인격이, 성품이, 기질이 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 사고방식, 열정, 말, 손과 발의 움직임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어린 아기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라고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정말 하나님 나라 시민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된 하나님 나라 백성, 참된 하나님의 자녀, 참된 제자, 예수꾼이 되기 원하십니까? 어린 아기처럼 삽시다. 얼마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부모를 의존하고 삽니까? 철저하게 의지하고 따라가지 않습니까?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부모가 주는 것은 다 받아들입니다. 이런 어린 아기처럼 겸손히 자신을 부인하고, 순수하게 주님을 믿고 의지합시다. 주님을 사랑하되 온 마음과 목숨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합시다. 이미 성령을 받은 여러분들은 그 내주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온 마음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영접하여 구세주로 모시는 순간 함께 받는 성령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마음을, 생각을 어린 아기처럼 주께 드리면 됩니다. 주님을 사모하며,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시겠습니까?

어느 목사님의 예수꾼에 관한 짧은 시가 떠오릅니다.

   머리에는 예수님의 지혜가
   가슴에는 예수님의 열정이
   허리에는 예수님의 겸손이
   몸 속에 흐르는 피에는 예수님의 용서가
   두 손에는 예수님의 사랑이
   무릎에는 예수님의 기도가
   손바닥에는 예수님의 못 자국이
   그리고, 발바닥에는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 모두가 어린 아기처럼 온통 주님에게 마음이 가있고, 주님 사랑이 더하여 가는 참된 제자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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