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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8-22 (일) 06:3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856    
예수님을 만나면 사람이 변합니다 (눅 19:1-10)

우리 주위에는 예수님을 만나 믿고 나서 변화된 사람이 많습니다. 아니 저를 포함해서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로 영접하고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무엇인가 변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고후 5:17). 생각이, 사고방식이, 삶의 태도가, 말과 행동이 믿기 전과 비교하면 조금이라도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면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렇게 변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삭개오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는 마지막 길목인 여리고를 통과하다가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바디매오를 고쳐주시고, 구원하시며 그의 믿음을 칭찬하신(눅 18:35-43) 후에 삭개오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2절)고 하였습니다. 그 이름의 원어의 뜻은 ‘순수한, 선량한, 의로운”라는 의미입니다. 아마 부모가 아들이 그런 사람이 되라고 지어준 이름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는 부모의 뜻과 달리 세리장이 되어 동족 유대인들에게 비난을 받는 대상이었습니다. 유대인인데 로마정부를 위하여 세금을 많이 거두어 자신을 위해 돈을 착복하는 그냥 세리들도 유대인들에게 매국노라는 욕을 먹고 죄인이라고 치부당하였는데, 삭개오는 세리장이니 오죽 하겠습니까? 그는 부자 중에 부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도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이 늘어갈수록 번민이 더해갔던 것입니다. 양심이 걸렸던 것입니다. 죄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는데, 자신의 마을을 지나가신다고 하니 예수님을 보고자 하였습니다.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3-4절)고 하였습니다. 키가 작았던 그는 사람이 많으니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뽕나무 위에 올라갔던 것입니다. 사실 세리장으로서의 신분으로 체면을 무릎 쓰고 나무 위에 올라간다는 것은 그만큼 사모하였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갈증이 있었던 것이라 생수이신 예수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차마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망설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5-6절) 하였습니다. 이미 그를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주권적으로 그가 부르기도 전에 먼저 부르십니다. 더군다나 그의 집에 머물러 그와 함께 식사를 하시겠다고 합니다. 당시 집에 머물겠다는 뜻은 식사를 함께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그의 집을 방문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말입니다.
삭개오는 자신을 부르신 자체도 놀랄 만한데 자신의 집으로 오시겠다고, 식사를 하겠다고 하니 전혀 예상을 못한 뜻밖의 초청에 그는 아마 무척 흥분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에서는 스스로를 초대하는 것은 무례한 일입니다. 에티켓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 랍비나 종교지도자들처럼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자들은 스스로 자신을 초대하곤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삭개오는 즐거워하며 급히 뽕나무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모시고 자기 집으로 갑니다. 예수님의 초청에 즉각적인 순종을 보인 것입니다. 기쁘고 즐겁게 순종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는 이미 그의 마음에는 그를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자기의 집으로 영접하므로 구원과 영광을 동시에 누리는 특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 세리장인 삭개오를 욕하고 비난했던 여리고 주민들은 실망을 합니다.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7절)고 하였으니 말입니다. 죄인의 집에 들어가 예수님이 식사를 하며 교제를 하니 자신들이 기대하는 메시아로는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이 예수님의 행동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아마 불평하며 투덜거렸을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하고 있는데 어떻게 원수인 로마정부를 대표하여 우리의 돈을 착복하는 죄인과 식사를 하다니, 어떻게 저런 매국노 혹은 반역자의 집에 들어가 교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예수님은 이전에 바리새인들의 집에서 식사하며 그들이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배반했는지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반역자라고 여기는 죄인과 식사를 하고 교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자신의 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진리의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삭개오는 변화를 받고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7절과 8절 사이에는 시간의 간격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8절)라고 예수님에게 고백하는 것을 보십시오. 바로 전 장인 18장 18절에서 23절에 나온 부자 관원과 얼마나 다릅니까? 그 때 이 관원이 예수님에게 나아와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지키라고 하니까, 다 지켰다고 하니 예수님께서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했을 때(눅 18:22) 그는 근심하고 돌아갔었습니다. 이유는 그가 복음을,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로 영접했다면, 믿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삭개오는 복음을, 진리의 말씀을 듣고는 예수님이 요청하기도 전에 자신의 재물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며, 누구의 것을 도둑질한 일이 있으면 율법에 있는 대로 사배로 갚겠다고 한 것입니다. 과도하게 세금을 거두어 착복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속인 것의 사배를 갚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9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가 재물을 가난한 자에게 절반을 나눠주겠다고 해서, 도둑질한 것이 있으면 사배로 갚겠다고 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가 정말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변화를 받아 그런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런 결단을 하게 된 것이 진정한 회개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회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한 것입니다. 더 이상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보니 돈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삶의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고, 살아가는 목적이 바뀌게 되었고, 태도와 행동이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예수님이 선언한 것입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부르는, 아니 세리장이니 죄인 중의 두목이겠지요. 그런 자를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이라고 하시니 대반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자신들은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들,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도 회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유대종교지도자들보다 훨씬 나은 것이었습니다. 아니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요, 영생과 영벌의 차이입니다.
또한,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집안 식구들 모두에게 구원이 임했습니다.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9절) 하셨습니다. 이유는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며 교제하실 때 옆에 있던 그의 아내와 가족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함께 다 믿은 것입니다. 그의 아내가 동의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삭개오가 재산을 나누겠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요? 온 집안 식구가 삭개오처럼 변화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론적으로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0절)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인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온 목적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은혜를 베풀고 구원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는 15장에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잃어버린 드라크마 동전 하나, 잃어버린 탕자의 비유에서 이미 강조하신 예수님의 사명, 왜 2000여년 전에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던 그 이유를 다시 적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나오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세례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눅 3:7절하-8절)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진심으로 회개하였기에 그 합당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속 사람이 바뀐 것이었습니다. 전인격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서론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로 영접하여 변화된 삶을 사시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분들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2000여년 기독교 역사상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를 받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간 수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생각이, 태도와 생활방식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살아가는 이유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만약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면 당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처럼, 많은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만났어도, 말씀을 들었어도, 그 능력을 보았어도 정말 변한 게 없다면 진정으로 예수님을, 복음을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변한 것이 있기에 그것이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변한 삶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예수님이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사실을, 부활 승천하여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증인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고 있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 은혜를 베풀기 위하여, 구원으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죄의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시고, 참 자유를 주시려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교제하시려고 초청하십니다. 신령한 복을 주시려고 초청하십니다. 변화된 삶으로, 의미있는 인생을 살라고 초청하십니다. 아직도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여 변화된 삶을 살지 못하는 분이 계십니까? 삶의 평안과 기쁨이 없으십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약 600여년 전에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회개하고 돌아오는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렘 32:38-41)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새 언약의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또한 약속대로 오신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오늘도 초청하십니다. 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고생하며, 고통을 당하는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쉬게 하시려고, 놀라운 복을 주시려고 말입니다. 삭개오처럼 기쁘고 즐겁게 영접하시면 됩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성령으로 여러분 안에 거하시게 되고, 교제하게 되면 변하게 됩니다. 사람이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확 달라집니다만, 어떤 사람은 조금씩 달라지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닮듯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으니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시기와 질투가 축복으로, 원수까지 용서하며 기도하는 사람으로, 이기적으로 나 만을 위하여 살다가 이웃을 위하여 사랑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돈, 재물을 위하여 살던 인생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대 반전이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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