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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8-29 (일) 00:3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733    
허락하신 것으로 무엇을 하십니까? (눅 19:11-28)


이 세상에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돈으로 좋은 침대를 살 수 있을지 언정, 잠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비싼 음식을 살 수 있어도, 식욕을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많은 책들을 살 수 있어도 지능을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쾌락을 살 수 있어도, 평안을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사람을 사귈 수는 있어도, 우정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성경책을 살 수 있어도, 천국을 살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사실을 동의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돈을, 재물을 위하여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인생의 최우선순위가 돈, 재물인 분들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최우선순위로 살면 우리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데도 말입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대로 예루살렘으로 오르시는 마지막 길에 여리고의 삭개오 집에 들러서 구원을 선포하신 후,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제자들과 따르던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비유의 말씀하십니다.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 임하는 줄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11절). 그들은 예수님이 이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군대를 일으켜 로마정부를 뒤엎고 세상을 정복하여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 재림하셔야 세워지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그 때가 아니기에 지금 제자들과 따르던 사람들이 알아야 할 진리를 열 므나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에 가는 귀인으로 비유합니다(12절). 여기 “귀인(euvgenhmj, of noble birth)”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이 고상하고 존귀한 사람을 뜻합니다. 자신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으로 하나님 아버지에게 갔다가 다시 오는 메시아, 그리스도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비유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입니다. 주전 40년에는 헤롯 대왕이 로마황제 안토니(Mark Anthony)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분봉왕으로 책정 받기 위하여 갔었고, 예수님 태어날 때쯤 주전 4년에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아켈라오(Archelaus)가 로마황제 아구스도(Augustus)에게 가서 분봉왕으로 책정 받기 원해서 간 적이 있습니다. 즉 당시 잘 알려진 사건을 배경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귀인이 종 열명을 불러서 은화 열 므나를 나누어 줍니다(13절). 한 명에게 한 므나씩 말입니다. 한 므나는 당시 약 3달 치 노동자의 삯이었습니다. 60므나가 한 달란트였습니다. 그러니까 한 므나도 적지 않은 돈인데, 한 달란트는 굉장히 많은 돈입니다. 한 므나씩 주면서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장사를 하라고 주인이 명령하였습니다.
이 므나의 비유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마 25:14-30). 유대인을 독자로 기록한 마태복음의 비유에서는 그들의 재능에 따라 많은 돈을 맡겼습니다. 세 사람에게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오늘 본문처럼 열명에게 똑같이 나누어 준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의 독자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비유이기는 하지만 주인에게 각각 한 므나씩, 즉 60분의 1을 받은 것입니다. 왜 맡긴 돈이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나는지 알겠지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 그리스도인들보다 가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는 느닷없이 백성들이 귀인을 미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14절)! 여기 그 백성은 제자들을 비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므나씩 받은 종들로 비유한 것이고, 여기 백성은 마치 잠시 후에 유대종교지도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로마인들에게 예수님이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그들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훗날 있어질 일을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사실 이 또한 아켈라오가 아구스도 로마황제에게 분봉왕 자리를 원했지만, 유대인들이 쫓아가서 반대하여 결국 이스라엘 땅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다른 형제들(Herod Antipas and Herod Philip)과 함께 다스렸던 것입니다.

하여튼,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열명의 종들을 불러서 그 동안 그들이 각각 은화 한 므나를 가지고 어떻게 장사를 했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15절). 첫째 종이 나와서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16절)고 보고합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17절)고 합니다. 10배의 이익을 남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10 마을을 다스릴 권세를 주었습니다. 이어서 둘째 종이 나와서,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18절)고 합니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19절) 합니다. 5배를 남긴 것입니다. 그에게도 공정하게 5마을을 다스릴 권세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20-21절)라고 합니다. 여기 또 “한 사람(e`,teroj)”의 헬라어 원어를 보니 앞에 나온 두 사람과 같은 부류의 한 사람(avlloj)이 아닌, 다른 부류의 사람을 뜻합니다. 즉 처음 두 사람과 달리 세 번째 종은 주인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도 없고, 열정도 없는 그냥 엄한(auvsthro,j, harsh or strict)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주인의 돈을 잃어버리기 라도 하면 큰 책망을 들을 줄 알고 그냥 수건으로 잘 싸서 두었던 것입니다. 야단을 맞을 것만 생각하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분명히 장사를 하라고 명령을 했는데 말입니다. 허락한 것을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자기 합리화만 하고 있습니다. 정말 주인을 두려워한다면 명령을 따라서 장사를 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종은 주인의 눈에는 그저 게으른 종, 자신을 잘 모르는 종인 것이었습니다. 여기 “두지 않은 것을 취한다”는 뜻은 노력하지 않고 대가만 취한다는 것이며, “심지 않은 것을 거둔다”는 뜻은 지주가 땅을 그저 소유하고 자신은 일하지도 않고 이익만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주인을 오해하고 있습니까? 아니 선하고 사랑이 많은 주인을 나쁜 사람으로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22-23절)고 하였습니다. 즉 그를 악한 종이라고 하면서, 그가 말한대로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처럼 무섭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엄한 사람으로 알았다면 왜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느냐, 분명히 가서 장사를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그렇게 숨겨 놓을 줄 알았다면 그 돈을 은행에 두고 그 이자라도 남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주인은 결국 곁에 있는 자들에게 말해서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고 합니다(24절). 이것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주인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은 이미 열 므나가 있다고(25절) 하니 주인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26절)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믿음으로 허락하신 것으로 신실하게, 충성스럽게 일하는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풀지만, 그렇지 않고 주님을 잘못 알고 게으른 자들에게는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14절에서 귀인이 왕 됨을 원하지 않던 그 사람들을 다 죽이라고 합니다. “나의 왕 욈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27절)! 바로 적극적으로 예수님이 왕 됨을 원하지 않던 원수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소리치던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서기관들을 비롯한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임할 심판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비유의 말씀은 우선 눈에 보이는 하나님 나라는 때가 되어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실제로 이 세상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예수님에 대한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잘못 알면 큰 일입니다. 오해를 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기 때문에 악한 종이라고 하십니다.
은사에 따라 열심히 일하라는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와 달리, 오늘 므나의 비유는 우리의 능력이나 은사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허락하신 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 자세를 보시는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각각의 은사, 능력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나겠지만, 어떤 결과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신실함, 성실함입니다. 10므나를 남기던, 5므나를 남기던 얼만큼 남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1므나만 남겼어도 주인이 칭찬하고 한 고을을 맡겼을 것입니다. 세 번째 종을 악한 종이라고 한 까닭이 그가 은사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받은 한 므나를 가지고 전혀 일하지 않은 게으름을 탓한 것입니다. 주인을 잘 모르는 그의 어리석음을 탓한 것입니다.
저는 10명에게 각각 똑같이 1므나를 준 것을 보면, 므나는 우리 믿는 자 허락하신 믿음, 구원을 받는 믿음이라고 해석합니다. 똑같이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믿음으로 열심히, 신실하게 살아갑니다. 충성합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에 믿음을 더해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허락하신 믿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게을러서 그렇든지, 아니면 주님을 오해하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냥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럭저럭 살다가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빼앗길 수도 있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물론 그런 믿음은 처음부터 참 믿음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겠지요. 참 믿음이 있다면 그냥 그 믿음을 수건에 싸서 둘 수 없습니다. 참 믿음은 역동적입니다.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앞으로 재림하시면 이 땅에서 신실하게 일한 성도들에게 주실 영광스러운 상이 확실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상급이 미래에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이사야서 64장 4절을 인용하면서,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고 하였습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 속히 재림하지 않으십니까? 왜 예수님께서 믿음을 허락하시고 곧 바로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으십니까?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일을 하라고 아직 우리를 이 땅에 남겨 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각자 사명이,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사가, 능력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신실한가’ 입니다. 성실하게 충성을 다하느냐는 것입니다. 허락하신 믿음을 감사하며 감격하며 주인이신 예수님에게 충성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지 않는 것이 곧 죄입니다. 잠언서는 자주 자주 우리에게 게으름의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 외에도 우리 각자에게 허락하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십니까? 허락하신 분의 뜻에 맡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최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그리고 그 다음은 무엇이며,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돈, 재물이 최우선입니까? 그래서 사업이, 직장생활이 우선입니까? 아니면 건강입니까? 명예입니까? 가정입니까? 자녀입니까? 취미생활입니까? 왜 사십니까? 무엇을 위하여 오늘도 살아갑니까?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정말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꾼입니까? 그렇다면 살아가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제자답게, 일꾼답게 살아야 할 목적이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라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신실하게 일하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입니다. 명령에 순종하면, 신실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그러나 일하지 않고, 게으르면 다 빼앗길 수 있습니다.

한편, 아직도 예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아직 살아 있을 때에 죄인임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주님께서 놀라운 구원과 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것으로 남은 인생 하나님 나라 위하여 열심히 충성하셔서 먼저 믿어서 그렇게 살고 있는 분들처럼 상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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