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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9-16 (목) 07:45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868    
하나님의 지혜로 선한 열매를 맺으십시오 (약 3:13-18)


야고보서 3장에 들어와서 12절까지 사도 야고보는 가정에, 공동체 안에서 말의 절제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였습니다. 혀를 길들이라고 했습니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와서 되겠느냐고, 마음을 다스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니 우리의 혀가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사용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중요한 것을 알았던 솔로몬은 그의 아들들에게,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잠 4:7)고 권면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을 성경말씀을 통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지혜와 명철을 가지고 선행을 보이라고 합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지혜를 가지고 선한 행동을 보이라고 합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13절)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에게 지혜가 있다면 온유함으로 선한 행동을 보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마 5:5)라고 하셨습니다. 온유(prauthj, meekness, gentleness)의 뜻은 근본적으로 ‘부드러움(mild, soft)를’ 말합니다. 이 단어는 부드럽게 다가오는 봄 바람을 묘사할 때나 약을 먹고 통증이 점차 없어짐을 나타낼 때에 사용한 단어입니다. 혹은 야생동물이 조련사에 의하여 잘 길들여져 사용하기 편하게 됨을 나타내기도 하였습니다. 모가 나지 않은 부드러운 마음, 승복하는 조용한, 친절한 태도를 일으키는 성향 혹은 덕목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자연적인(natural) 덕목이 아닙니다. 성령에 의하여 다듬어진 성품, 덕목입니다. 온유함은 절대로 유약함이나 나태함, 게으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nice 한 것을 가리키는 것도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원래 nice 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도 있지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니까 하면서 적당히 다 그냥 넘어가 버리는 우유부단함도 아닙니다. 정반대로 온유는 속 사람이 강하여야 절제 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힘이 있으나 절제하며 부드럽게 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온유함이 있는 자가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온유함으로 선하게 행동함으로 하나님의 지혜가 있음을, 하나님을 경외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세상 지혜, 거짓 지혜는 가정을, 공동체를 하나됨을 깨뜨리며 분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14절)고 하였습니다. 독한 시기와 다툼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마음에서 시기 질투가, 분노가 일어나 다투려고 하려고 할 때에 그것을 드러내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진리를 거스려 거짓을 행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15절) 때문입니다. 이런 지혜는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탄 마귀로부터 온 세상적인 지혜요, 정욕적인 지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에 속한 것이기에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의 생각과 감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16절)고 한 것처럼, 이 세상이 요란한 것입니다. 모든 악한 일의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길을 가는 것은 올바른 지혜, 지식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 지 생명의 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잠언서에서는 그런 자들을 미련한 자, 어리석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 지식은 올바른 길을,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자신이 누군지, 지금 그대로 걸어가면 어디로 가게 되는지 분명하게 가르쳐주는 지식입니다. 그렇다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과거에 그런 미련하고 어두운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초대교회 당시 당시 헬라 철학이 교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원래 복음의 능력은 생활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도란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그런데 헬라 철학은 이원론적이어서,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켜 육적인 삶을 경멸하고 영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바람에 신앙을 생활에서 떠나 신비로운 체험을 추구하게 했습니다. 자꾸 교회를 떠나 수도원에 들어가 신비의 체험을 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 안에서 이런 철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 사이에 결코 이런 분열이 있으면 안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바로 가르쳐서 참된 믿음을 갖도록 요구하지만, 이미 참된 믿음을 가진 성도들 사이를 세상 철학 사상의 영향을 받아 구별하지는 않습니다. 차별하지 않습니다. 엘리트 그룹이 생기면 안됩니다.

사도 야고보는 이러한 세상의 지혜, 사탄 마귀로부터 오는 지혜와 달리,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17절)고 하였습니다.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지혜, 지식은 시기나 질투, 다툼으로부터 자유하게 합니다. 성령의 선한 열매들을 맺게 합니다.
첫째, 성결(pure)입니다. ‘오염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더럽혀지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둘째, 화평(peaceable)입니다. ‘화목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화평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마 5:9)라고 하신대로, 화평하게 합니다. 화목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셋째, 관용(reasonable)입니다. ‘이치에 맞고 정당하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넷째, 양순(gentle)입니다.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고 배려한다’는 뜻입니다. 겸손하고 온유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다섯째, 긍휼(mercy)이 가득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동정이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긍휼이 여기는 자가 복이 있나니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이요”(마 5:7)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여섯째, 선한 열매가, 선함이 가득합니다. 이는 이미 2장 14-20절에서 설명한 참된 믿음의 행동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말합니다. 일곱째, 편벽(impartial)이 없습니다. 이는 ‘편견을 가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짓(hypocrisy)이 없습니다. 가식이나 위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성품들로 말미암아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18절)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들과 화평을 누리며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앞서 언급하였듯이 우리 복음의 능력은,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성품을 배우게 합니다. 점점 닮아갑니다. 비록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말씀이 있기에, 말씀과 함께 하며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면서 주위에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시기, 질투를 하지 않습니다. 비록 잠시 마음에서 죄성이 요동을 치기는 하지만 금방 성령님에게 복종합니다. 분열을 조장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고 하신 명령에 순종합니다.
아시다시피 초대교회라고 해서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헬라파 교인들과 히브리파 교인들 사이에 과부들의 구제 문제로 분쟁이 생겼을 때에, 사실 교회가 나뉘어질 수 있는 큰 위기였습니다. 헬라파와 히브리파는 모든 것이 너무 달랐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이 문제를 아주 지혜롭게 해결했습니다. 사도들이 구제까지 간섭하는 것은 잘못이기에, 집사들을 세워서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분열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지식은 요란하게 하고, 분열을 일으키고, 모든 악한 일을 조장합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지혜로, 명철로 무장해야 합니다. 우선 속 사람이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서 성결과, 화평과 관용과 양순과 긍휼과 선함이 가득해야 합니다. 편견과 거짓을, 위선을 물리쳐야 합니다. 어찌하든지 화목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의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기독교 역사상 이런 열매를 가장 많이 보여준 교회가 청교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의 기초가, 사상이 다 성경에서 나왔기에, 성경에 나타난 주제들을 깊이 묵상하고 그것들을 자기의 것으로 삼고 가르치며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배우고 묵상해야 합니다. 우선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로 충만하여 교회를 세워가며, 사명을 감당하면 그 어떤 위기에서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이런 복음의 능력, 진리의 능력이 나타나서 선한 열매가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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