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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9-26 (일) 09:3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700    
예수님을 거절하면 (눅 20:9-19)

우리 주위에는 아무리 예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말해 주어도 믿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예수님이 2000여년 전에 오셨다가 부활하신 뚜렷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고집스럽게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꾸준히 기도하고 그들을 사랑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지만, 꼭 알아야 할 것은 만약 그들이 숨 거두는 순간에도 예수님을 거절하면 결국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바로 마지막 날의 백보좌 심판입니다(계 20:11). 불 심판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리라”(계 20:15)고 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무슨 권세로 성전을 청결케 하며, 성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느냐고 질문하는 위선적인 산헤드린 공회 지도자들에게 대답 대신에, 세례 요한의 사역이 하나님으로서냐 사람으로서냐(4절) 라는 주님의 반문에 모르겠다고 하던 그들에게(7절), 자신도 어디로서 온 권세인지 가르쳐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후(8절), 오늘 본문에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이야기하시면서 교훈하십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열심히 만들고 잘 준비해서 농부(소작인)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습니다(9절). 오래 있다가 열매를 거둘 때가 되어서 열매를 세로 거두려고 종들을 농부에게 보내었는데,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심히 때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10절).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었더니 그들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함으로(11-12절), 후에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면서 아들만큼은 공경하고 제대로 대하겠지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는 주인의 상속자니 죽이고 우리가 그 유업을 차지하자 하면서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 쫓아 죽여버립니다(13-15절상).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오면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입니다(15절하). 당연히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16절상), 비유를 듣던 그들이 그렇게 안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16절하).
물론 이 비유에서 집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며, 포도원은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비유하며 하나님께서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들포도 열매를 냈기에 심판하시겠다고 예언하신 대로 앗수르에게, 바벨론에게 망한 적도 있습니다(사 5:1-5). 농부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같은 유대종교 지도자들이며, 하나님의 종들은 그 동안 하나님께서 보내셨던 선지자들입니다. 마지막 선지자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눅 16:16). 포도원 주인의 아들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셔서 그 나라가 좋은 열매를 맺기 원하셨습니다. 선택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나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허락하시고 청지기의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약속의 땅이었고, 소망이 있는 땅, 구원과 안전보장, 대적들로부터 건져 주시고 지켜 주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복을 누리지 못하고 계속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려다 사랑으로 용서하시며 시시때때로 선지자들을 보내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말미암아 감사는커녕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하고 말았습니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는 그 몸이 톱으로 켜임을 당하여 죽임을 당하였고(참고- 히 11:37), 예레미아 선지자는 진흙 구렁텅이에 던짐을 당하고 돌에 맞아 죽었으며, 엘리야와 아모스는 생명을 건지기 위하여 도망다녔고, 미가 선지자는 그 메시지를 듣기 싫어하던 자들에게 얼굴을 맞았으며(왕상 22:24), 스가랴 선지자는 실제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그 백성들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대하 24:20-22). 즉 구약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악한 마음을 잘 증거하였고, 이제 그 악함의 절정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기에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를 듣고 저들 스스로 그렇게 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으나,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이 바로 그 농부들이다. 주인의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그 아들까지 죽이려 하는 사악한 자들이다.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너희는 깨닫고 있느냐? 포도원은 그의 나라며, 종들은 그의 선지자이며, 내가 그 아들임을 알고 있느냐? 너희들이 말한대로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안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저희들에게 익숙한 구약성경 시편 118:22-23절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17절)라고 물으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퉁이의 머릿돌(cornerstone)은 건물을 짓는 데에 가장 기본이 되는 기초(foundation) 돌을 말합니다. 이 기초 돌이 잘못 깎여져 있다던가, 잘못 놓이게 되면 건물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균형을 잃게 되며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때때로 건축자들이 올바른 돌을 고르기 위하여 어떤 돌을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의하면 저들이 잘못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버린 건축자가 바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유대종교 지도자들이며, 오늘날로 말하면 믿지 않는 이 세상을 뜻합니다. 버려진 돌이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돌을 회복시키셔서 모퉁이 돌이 된 것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메시아적 시편을 인용하여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같은 진리의 말씀을, “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벧전 2:6-8상)고 하였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도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선포하기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19-20)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제 직접적으로 인용한 구약성경 말씀을 저들에게 적용하여 이르시기를,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로 가루를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18절)고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마 21:43-44)고 하였습니다. 저들의 마음에 조금도 불확실한 것이 없게 하시기 위하여 이 유대종교지도자들을 비롯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임할 심판을 직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거역하고 반항하는 자들에게 임할 심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대신하여 열매 맺는 다른 사람, 즉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이방인들에게 포도원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16절).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세례 요한이 처음 사역을 시작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회개를 촉구하였을 때에, 덩달아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고자 했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그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마 3:8) 나아와 세례를 받지, 그렇게 거짓으로 세례를 받으려 하느냐고 꾸짖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열매는 예수님을 진실로 믿게 되어 죄로부터 회개하고 돌아선 의의 삶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을 갖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 1:11)고 하였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 1:10) 하였듯이, 분명히 믿음에 대한 회개의 열매, 의의 선한 열매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불신의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의 죄로부터 회개하고 돌아서지 않았기 때문에 영적인 열매가 없었던 것입니다. 즉 무지와 교만으로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를 거절했기에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무서운 심판의 표현을 18절에 “깨어지겠고 . . .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하면서 사용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또 왕이 보신 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단 2:34-35)!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자신의 죄를 사하시며 구원할 자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심판의 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올 자가 있는가 하면(요 14:6), 심판을 자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 16:22)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렇게 처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이 세상 구속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 원하셨으나, 오히려 그들이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다른 이방민족을 택하셔서 자신의 증거를 삼으셨습니다. 바로 신약시대에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탄생한 교회를 사용하여 구속역사의 완성을 맡기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여 “내가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리라”(롬 9:25-26)고 이방인 중에서 부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하나님의 교회는 그 어떤 것도 대항할 수도 없고, 지옥의 권세라도 무너뜨릴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18).

사랑하는 여러분!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 인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19절)고 한 것처럼, 오늘 본문의 비유에서 산헤드린 공회의 지도자들이 과거에 하나님의 종들을 죽였던 자들과 일반이며, 자신들이 결국 하나님의 아들을 죽일 포도원 농부임을 알았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죽일 결심을 했었습니다(눅 19:47). 백성들이 두려워 당장 실행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자기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될 건축자들임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렇게 예수님을 거절했기에 예수님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뿐 아니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계 역사상, 아니 지난 2000여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하기를 거절합니다. 예수님이 참으로 그리스도였음을 증거하는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 증거들을 믿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구원의 섭리, 그 놀라운 은혜, 인간들의 불신앙과 거절에 대하여 그 오래 참으심, 결국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죽게 하신 사랑에 대하여 자주 자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기에 의로운 심판에 대하여서도 말씀하십니다. 본문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참으로 악하다는 것입니다. 목이 곧은 백성들이라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많은 축복을 받으며 특권을 누리고 나서도, 그 수많은 선지자들로 진리의 말씀을 받을 수 있었던 기회, 그 아들로 인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건만 본분을 잃어버리고 마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사랑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했다면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영원을 좌우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받고 구원에 이르느냐, 아니면 끝까지 불신하여 귀한 은혜의 선물을 받지 않아 심판에 이르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세주로, 여러분 삶의 주인으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사실 줄로 믿습니다. 비록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어도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믿지 못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옥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육신은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면 그 영혼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속에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저주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리라”(마 25:41)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신자와 불신자가 확실히 갈라지는 것을 예수님께서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25:46)고 하였고,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고 하였습니다. 즉 육신의 사망과 영혼의 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만약 오늘 죽으신다면 내 영혼이 어느 쪽에 머물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만약 오늘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재림하신다면 천국으로 들려질 것입니까? 아니면 지옥의 심판을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 위하여 돌아가신 구세주로, 내 삶의 주로 영접하지 않으시면, 믿지 않으시면 심판, 둘째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믿으시면, 회개의 합당한 의의 열매를 맺고 살면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저는 저희 교회 교인들 가운데서 한 분도 심판에 이르지 않고, 오히려 영생을 누리고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종교 생활과 참 신앙 생활을 다릅니다. 대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 바리새인들과 같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도 종교 생활은 했습니다. 열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 신앙이 없었기에 외식적이고 위선적인 삶 밖에는 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자비와 긍휼의 손을 내미실 때에 뿌리치지 말고 돌이켜 그 손에 회개의 열매를 올려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구원에 이르는 진실한 믿음으로 영적 열매를 맺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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