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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9-30 (목) 06:02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77    
욕심과 기도 (약 4:1-3)


우리가 다 경험이 있듯이, 믿는 가정이라고 해서, 아니 교회라고 해서 다툼이나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다 똑같지 않은데 어떻게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서로 다른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만 세상의 모임들보다는 다툼이나 논쟁이 덜 하겠지요. 초대교회들 안에서도 다툼이나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가 오늘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다툼이 있는지, 그 결과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이 중요한가 하면 우리의 삶에 가장 필요한 기도 응답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947년 Tennessee Williams 가 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라는 희곡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었을 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영화로도 나왔었습니다. 어쩌면 사람의 일생은 이런 기차를 타고 가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 욕망의 끝은 한이 없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다 원하는 것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고 그 욕망은 중단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욕망이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고 만족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1절)라고 하였습니다. 두 개의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중에 싸움이, 다툼의 원인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리고는 첫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형식으로 수사학적인 질문을 합니다. 즉 우리가 싸우고 다투는 이유는 정욕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싸움’과 ‘다툼’이라는 헬라어 단어가 모두 복수형으로 된 것을 보면 갈등이 한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고질적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정욕(h`donh,, lust or desire)’이라는 단어는 자신의 욕망을 뜻하는 것으로, 삶의 만족을 최고 목적으로 삼는 쾌락주의와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단어를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눅 8:14)라고 하실 때 ‘일락’에 사용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 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것들을 말합니다.
비록 우리 믿는 자들이 성령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성이 남아 있기에 이런 정욕, 욕망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아무도 이 죄의 성향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성령의 역사로만 그 지배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2절 상)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헬라어 원어에 의하면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에서 쉼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한 번역은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므로 살인을 한다. 그리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입니다.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살인까지 하게 되며, 시기와 질투를 해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다투고 싸운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미움(경멸)과 살인을 연결시키셨고(마 5:21-22), 사도 요한도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하는 것이라고 했으니(요일 3:15), 욕심 때문에 누구를 미워하고 시기하며 싸운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욕심 때문에 싸우고 다툴 뿐만 아니라 그 결과 하나님에게 구하지 않아서 응답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2절의 결론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이 이루어지기를 원했지만 엉뚱한 곳에서 구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습니다(마 6:9-13, 7:7-8). 아니 하나님께 구할 수 없습니다. 그저 죄의 성향인 쾌락과 욕심, 이기심이 자신들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둔 것입니다. 아니 구한다 하더라도 그 정욕에 사용하려고 구했다고 합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3절)고 하였습니다. 믿는 자들의 기도 응답의 중요한 원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우리들이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잘못된 동기로 기도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개인적인 정욕,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려야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해야 하지, 내 뜻, 내 욕심이 이루어지기 바라는 동기라면 결코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우리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을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계속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20세기 유명한 신약 신학자이며, 영국의 런던 대학교의 교수였던 Tasker 박사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구하는 것 그 이상의 기도를 할 필요가 없음이 분명하다고” 하였습니다. 구체적인 기도가 필요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의 말씀을 사랑하며, 그의 약속하신 말씀을 신뢰하며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기도한다면 응답하신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마음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태초에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추구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온 이후로 이 거룩한 갈망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죄의 성향을 추구하는 욕망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즉 자기가 갖고 싶은 것 다 가져야 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아야 하고, 인정받아야 하고, 높아지고 싶은 충동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며, 주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거룩한 갈망이 있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 속의 더러운 죄의 영향을 받아 늘 시기, 질투하며 싸우고 다투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 사도는 기도의 두 가지 자세를 말해주었습니다. 하나는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뜻대로 내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욕심이 많으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자기 정욕대로, 이기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욕심을 채워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당연히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 자세는 온유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여유가 있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늘 항상 함께 하시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먼저 앞서지 않습니다. 나서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계획이, 그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가진 여유입니다. 온유한 마음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스스로 자주 일어나는 욕망, 욕심을 버리기 위해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에 분명히 욕심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응답해주지 않는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자꾸 내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내 마음의 동기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늘 아름답고 거룩한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이요”(마 5:8)라고 하신 것처럼, 올바른 동기로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봅니다. 늘 우리의 마음이 정결하고 순수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는 반드시 들으십니다.
이런 자세로 살기 원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민감하여 아름다운 자연 앞에, 변해가는 나뭇잎만 보아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옆에 누가 해주는 말 한마디에도 하나님을 느낍니다. 보이는 것, 듣는 것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길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늘 마음을 온유하고 청결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고, 그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사랑이 많으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 이상으로 크고 놀라운 비밀을 보여주시며, 채워주실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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