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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1-09 (일) 10:3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625    
내가 들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 29:12-14)


저는 새해를 맞아 지난 신년 첫 주일에 올해 표어인 ‘주님 주시는 평안과 소망으로 선교적 삶을 살자’의 주제로, 약속하신 평안과 소망을 붙잡고 우리가 있는 곳이 선교지로 알고 선교사처럼 살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며, 그의 소유된 백성임을 깨닫고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하는 삶의 목적을 되새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며 다시한번 도전합니다.

오늘은 그러한 선교적인 삶을 살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도움이기에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해야 함을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예레미야를 통하여 바벨론 포로생활을 시작한 그들에게 거기서 잘 정착하여 번성하라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과 소망이라고 말씀하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주십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12-13절)!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나라를 빼앗기고, 성전이 파괴되고, 포로로 붙잡혀온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찾고 부르짖으며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록 멀리 이방나라에서 포로생활을 하지만 오히려 그런 곳에서 하나님만 깊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모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광야로 들어갔을 때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에서 죽을 줄 알고 불평하는 백성들이었지만, 거기서 그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메추라기를, 반석에서 물이 나는 것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보았습니다. 힘들고 위험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기적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바벨론 포로들도 그 이방나라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환란이 찾아올 때 어쩌면 빈 들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짖으며 기도하면, 온전히 하나님만 찾으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절대주권의 하나님은 우리가 간절히, 온 마음 다해 부르짖고 찾으면 우리를 만나주시는 인격적인 분입니다. 다른 우상 신들과 달리, 죽은 신들과 달리 정말 살아 계셔서 자녀된 우리가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성경 곳곳에서 이러한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신 4:29), “내 아들 솔로몬아 나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 28:9),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는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대하 26:5),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고 하였고, 신약에 와서, 예수님도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르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눅 11:9-10),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니리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절하, 24절하), 히브리서 기자도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사도 요한도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고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아니 우리의 세상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 맨 처음에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삶의 동기가 되어야 하고,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삶의 전부가 하나님을 찾는 것,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에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것을 찾고, 추구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를 찾고 추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명예를, 혹은 쾌락을 추구하고 삽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나 세상 권력을 추구합니다. 혹은 더 나은 교육, 더 나은 집, 친구들, 취미 등을 추구하고 삽니다. 또는 자식을 바라보고 삽니다. 자식이 잘 되기만을 구하고 삽니다. 아니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성취감을 추구하며 삽니다. 그렇게 살면 자신 내면의 비어진 공간이 채워지리라, 만족하게 되고 행복해 지리라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혜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듯이 우리 인간은 그러한 것들로 만족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주님을 찾아야 만나주시고, 채워 주시며, 만족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고라 자손의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 42:1) 라고 하면서,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기를 그렇게 원하듯이 자신의 영혼이 주님을 그토록 찾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주위에서 무어라 해도 자신은 하나님만 찾습니다. 하나님만 바랍니다. 아니 도와주실 줄 믿고 오히려 찬송을 드립니다.
본문 14절을 보십시오. 그렇게 부르짖고, 전심으로 찾으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정말 그들이 바벨론에서 여러 회당에서 그렇게 부르짖고 여호와 하나님을 찾을 결과 본향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산상수훈 설교의 팔복 가운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마 5:6)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의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르다면 반드시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하나님의 ‘의’를 원하십니까? 정말로 간절히 원한다면, 배부르게 하나님의 의가 넘칠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현재 우리가 원하는 만큼 하나님께 다가갑니다. 만약 우리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거나, 아니면 이것이 원래 내 자신의 모습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변하지를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여러분이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은 그 곳에, 그 상태로 있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나은 어떤 것을 갈망한다면 그것이 채워질 수 있습니다. 정말 여러분이 간절히 원하면, 찾으면 하나님과 아주 친밀하게 동행할 수 있습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더 나은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습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선교적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할 수 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몸에 깊이 배어 있는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모든 영역에 다 적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그렇게 간절히 원하느냐, 찾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찾으면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찾지 않으면 찾지 못할 것입니다.
혹시 우리는 변하기를 원하지도, 성장하기를 원하지도 않으며 그렇게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까?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에 만족하고, 아무리 애써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근본적인 문제는 핑계(excuses)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옭아매는 세 가지 핑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연민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진정으로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하는, 그래서 개인적인 책임을 피하게 하는 거짓입니다. ‘나는 원래 그래, 그런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든지,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나? 세상이 나를 타락하게 만들었지, 원래 인생이라는 것이 다 그렇고 그렇지 뭐’ 라든가, ‘나만 그런가, 다른 사람도 다 그런데 뭐’ 하면서, 과거의 일이나 현재의 삶에 대해 불평하거나, 아내나 자식들을 원망하면서 그들이 자기에게 더 잘해 주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하며 신세타령 하는 자기 연민에 빠지면, 자기 자신에게 열중한 나머지 자신이 사실상 우주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불쌍하게 생각하면서 의기소침해 있는 한,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두 번째 핑계는 ‘노력하는 중이다’(I try)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면 그저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변명에 불과한 말입니다. 무슨 일을 좀 해보라고 하면 ‘노력해 보지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든지, 말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저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노력해 보겠다고 말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올해 한해 동안 성경을 통독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습니다. 살을 뺄 수도 있고, 안 뺄 수도 있습니다. 욕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욕할 수도 있습니다. 술을 마실 수도 있고, 끊을 수도 있습니다. 진실할 수도 있고, 진실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도 있고 용서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노력하는 중이라’ 라는 말은 여러분이 느끼는 부담을 덜어주는 한낱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하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대부분 ‘노력하고 있다’는 말은 핑계입니다. 스스로나 다른 사람에게 모두 거짓말입니다. 세 번째 핑계는 첫 번째 핑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는 절대로 변하지 않을거야’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이 ‘나는 고칠 수 없어’, ‘변할 수 없어’ 라고 생각이 굳어졌다면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무서운 것은 스스로 변화되기를, 고치기를 진정으로 원하기 전에는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는데,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기를 원하지도 않는데 일부러, 억지로 하지는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냥 그렇게 폐인으로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 같으면 부끄러운 구원이 될 것이고, 아니면 예수님을 믿지 않기에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속에 살 것입니다.
오히려, 나는 스스로 바꿀 수 없지만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찾고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켜 주실 수 있고,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갈망해야 할 것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매일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고 살아갑니다. 선택의 대부분은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사소한 결정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중립적인 결정은 없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은 앞서 했던 선택과 나중에 하게 될 선택이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선택도 그저 ‘사소한’ 선택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가 빛을 향하여 한 발짝 더 나아가던가, 아니면 어두움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아무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 선택조차도 우리를 둘 중에 한 방향으로 이끌어 갑니다. 우리가 내린 결정에 담겨 있는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의미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조금씩, 한 발자국씩 하나님을 찾으며, 그의 뜻에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대하십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만나게 됩니다. 전심으로 참 빛을 찾는다면, 찾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연민하거나, ‘노력하는 중’이라고 거짓말하는 것을 멈추고, ‘나는 안돼,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야’ 라는 생각을 바꾸어 빛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딛기 시작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조금씩 나아갈 때에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이렇게 한 발자국씩 나아간다면 어두움을 향해 가려는 충동을 느낄 때에도 빛 가운데서 걸을 수 있게 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새해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기 원하십니까? 원하신다면 부르짖고 기도하십시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으십시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그것을 증명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을 잘 아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찾아서 한번 질문해 보세요. ‘내가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내 삶을 볼 때에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의 특징을 볼 수 있습니까?’ 사실 믿지 않는 사람조차 그 차이를 알고 있습니다. 이 분이 정말 하나님을 찾는 분인지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원하지 않으면 만나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간절히 구하고,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여러분의 마음에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변화를 받아야 하는데, 내가 고쳐져야 하는데, 나의 모습 이대로는 부족한데, 더욱 주님을 닮아가야 하는데, 선교적 삶이 되어야 하는데’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주님은, 성령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며, 주님을 찾으십시오.
또 여러분 주위에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채우십시오. 아마 아실 것입니다. 어떤 분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찾고 있는지. 진심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 친구들을 찾아내어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십시오. 가까이하십시오. 그들이 가는 곳에 가고, 그들이 하는 것을 하십시오. 그들의 모범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그들의 영향을 받아 당신도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든지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르짖고 찾으며,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훈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제게 참을성을 주십시오. 지금 당장 말입니다’ 라고 합니다. 우리는 참을성 있게 주님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다림에는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기다리는 행위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주님을 닮게 합니다. 기다리고 기도하면서 주님을 더 가까이하며, 주님을 더욱 알고자 하는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때때로 금식하면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는 것도 여러분에게 유익합니다.
부디 올 한해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하며, 전심을 찾고 찾아서 늘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은혜가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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