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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6-16 (목) 05:27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453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벧전 1:22-2:3)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서로 비난하며 미워하고 싸우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 그들도 하나님을 믿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5)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 사탄, 마귀는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려고 늘 우리로 하여금 시기 질투하며, 서로 미워하고 싸우도록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합니다. 그것을 이겨내려면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이전 단락(1:13-21)에서 사도 베드로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면 행실이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각 사람의 속마음을, 동기를 보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워하며 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죄로 말미암아 노예로 살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값을 지불하고 사서 자유하게 되었으니, 평생 그 은혜를 잊지 말고 여러가지 시험이나 유혹이 올 때에 이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고,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겨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거룩하게 된 우리가 아직 거룩한 사람으로서의 모든 특징을 나타내 보여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성화의 과정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가 지속적으로 진리의 말씀을 순종할 때 온전함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첫 단추가 형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형제 사랑을 기초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22절)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사랑을 나타내는 두개의 헬라어 필레오(file,w)와 아가페(avgapa,w)를 사용합니다. 두 단어를 구별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오래 전에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갈릴리 바다에 나타나셔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번 물어보신 것을 생각한지도 모르겠습니다(요 21:15-17). 예수님께서 두 번을 아가페로 물어 보셨는데 베드로가 두 번 다 필레오로 대답을 하자, 마지막에 필레오로 물어보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사람은 그 영혼이 서로에 대해 거짓이 없는(sincere) 형제 사랑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으로 서로 희생적인 사랑을 하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려고, 자기 이익을 위하여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라는 것입니다. “뜨겁게(evktenwj, earnestly or deeply)”라는 부사는 육상경기에서 나온 말로 ‘온 힘을 다해 노력하다’라는 뜻입니다. ‘가볍게(lightly)’와 정반대의 뜻으로, 어려울 때라도 행하기에 힘쓰는 사랑입니다. 즉 우리가 서로에게 베푸는 사랑은 한결같고 지속적이며,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23절)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기에 새 출발하였는데, 새 출발을 입증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말씀이라는 뜻은 새 생명을 태동하게 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말씀의 능력을 말합니다. ‘항상 있는’ 말씀의 뜻은 말씀 자체의 영원성 뿐 아니라 말씀이 낳는 새 생명의 영원함도 의미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24-25절; 사 40:6-8)고 한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은 불변하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항상 존재하는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하신 하나님이 언제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고 영원하신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실망시킬 때, 우리는 하나님의 불변하신 성품을 드러내는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과 살아갈 방법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 사죄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 인도의 확신, 승리의 확신 등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2장에 들어와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1-2절)고 한 것입니다. 갓난아이들이 어머니의 젖을 갈망하듯이 순전하고(pure) 신령한(spiritual) 젖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온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말씀으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말씀으로 되었으니, 그 말씀이 속에서 역사를 하면 칭의(과거)의 구원이 성화(현재)의 구원을 거쳐서 영화(미래)의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1절에서는 영적 성장을 저해하는 5가지 죄악된 태도와 말을 지적하면서, 이런 것들을 포기하거나 던져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악독(kaki,a, wickedness)’은 미움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나 상처, 악을 행하려는 욕망입니다. 원한을 품고 악한 의도로 다른 사람을 헤치는 것입니다. ‘궤휼(do,loj, deceit)’은 배후에 숨은 동기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속이는 말과 행동을 가리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헤치는 것입니다. ‘외식(u`po,krisij, hypocrisy)’은 잘 아는대로 위선입니다. 이 단어는 연극에서 배우가 연기하면서 진짜 동기는 숨기는 사람을 뜻하는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중적인 얼굴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시기(fqo,noj, envy)’는 질투를 뜻하며, 다른 사람의 이익이나 성공을 보게 되거나 듣는 데서 생기는 불쾌감입니다. 이 시기와 질투는 종종 ‘비방하는 말(katalalia,, slander or speaking against someone)’로 표현됩니다. 누군가를 대적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헐뜯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고의적으로 공격하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지위나 명예를 헤치는 말은 무엇이나 비방입니다.
이런 5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에게서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말과 태도, 행위를 던져 버려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형제 사랑과 대조가 되는 것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되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반드시 그런 나쁜 말이나 습관,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성령을 받았기에 얼마든지 버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3절)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죄 사함의 은혜, 자비와 긍휼을 경험했기에 그런 부끄러운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선한 말과 행동의, 사랑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거듭난 우리들은 서로 시기하고 헐뜯고 미워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친 형제, 자매에게 대하듯이, 아니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서로 북돋아 주며,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누가 이혼 지경에까지 이른다고 할 때 그것으로 가십거리를 삼고 말을 퍼뜨린다면 그것은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우리 식구인데 얼마나 부끄럽고, 외롭고, 힘들까 생각하고 위하여 기도해주며, 함께 하며 사랑의 말과 태도로 다가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혹은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힘들어 하고 있다면, 함께 슬퍼하고 울어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그 분이 주 안에서의 형제, 자매의 돌봄 속에 금방 슬픔을 딛고 일어설 것 아닙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 거듭난 성도들은 다 같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한 가족입니다. 한 성경말씀으로,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믿기 전의 말과 태도, 행동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악독, 궤휼, 외식, 시기, 비방하는 말로 다른 형제, 자매들을 아프게 하지는 않습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존심, 자긍심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십시오. 제발 부끄럽게 살지 마십시오. 떳떳이, 당당하게 하나님 나라 왕자와 공주처럼 사십시오.
정말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을 사모하고 사십니까? 그렇게 사모하며 붙들고 사신다면 주위의 형제, 자매들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은혜와 사랑을 받았으니, 나누어 주십시오. 돌보며 사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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