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021,260
오늘방문 : 4280
어제방문 : 2757
전체글등록 : 3,841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8-21 (일) 02:3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465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갈 4:1-11)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하여 구제불능인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믿는 자들의 죄를 사하시고, 입양하셨습니다. 얼마나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분입니까? 즉 복음이, 하나님의 진리가 깨닫게 해주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는 특권,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주일 살펴보았던 3장 26절,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율법 아래서 풀려나 자유롭게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말씀에 대한 부연설명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당시 사회에서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혹은 아버지 마음에 들 때까지 아들을 종과 다름없이 키우는 예를 들고 있습니다. 아니 아버지가 죽었는데 아들이 아직 어린 경우의 예이기도 합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1-2절)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떤 아이가 재벌 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받아 유업을 이룰 자라 하더라도, 커서 능력이 될 때까지 즉 아버지가 보기에 괜찮겠다 생각되는 시간이 되기까지는 종과 다름없이 아버지가 세운 법적인 후견인(guardian) 혹은 청지기(steward) 아래서 지내게 됩니다. 아들을 대신하여 후견인이나 청지기가 모든 결정을 내리고 권리를 행사하게 됩니다. 특히 아버지가 죽고 없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아들이 마음대로 재산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직 재산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르고 낭비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유언장에) 정해 놓은 때가 되기 전까지는 후견인이나 청지기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3절) 라고 합니다. 즉 우리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 전에는, 어렸을 때에는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 종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특히 갈라디아 교인들 가운데 이방인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율법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 세상의 “초등학문(stoceia/, elemental things)”은 이 세상의 모든 기초지식을 말합니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세상의 영들 혹은 해와 달과 별 등 자연의 기본 진리, 세상 기본 규칙 등으로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당시 신들이 그런 것들을 움직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8절에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했다고 하였습니다. 혹은 어떤 성경학자는 이 초등학문이 율법의 초보(basic)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여튼 믿기 전에 우리를 주장하던 세상의 영들입니다. [1] 우리의 믿기 전의 신분은 초등학문/율법 아래 종이었다]
하지만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4-5절)고 하였습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빠져 있지만, 4절 서두에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을 말합니다. 왜 더 빨리 보내지 않으셨을까? 주전 400여년 전 말라기 선지자 때 보내셨다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것에 대한 답을 훗날 깨닫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파된 세상을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로마제국이 세계를 정복할 당시 그들은 전역에 거미줄처럼 길을 잘 닦아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왕래를 더욱 용이하게 했고, 헬라어의 사용도 로마제국 전역으로 퍼짐에 따라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진 때였습니다. 또한 많은 우상신들이 등장했고, 종교가 만들어졌을 때였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갈증을 느낄 때였습니다. Perfect timing 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소식이 오순절 성령이 강림한 이후 여러 사도들로 인하여 예루살렘에서 유다와 사마리아로, 땅끝까지 급속도로 퍼진 것입니다.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는 뜻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것을 말합니다.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신 기적을 말합니다. 죄가 없는 인간이라야 우리의 죄를 대신할 흠없고 깨끗한 어린양으로, 완전한 제물이 될 수 있었기에 율법 아래 태어남으로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유혹을 받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셔서 아무 죄를 짓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완성,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7-18)고 하였습니다.
결국 때가 되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그 피값으로 율법 아래 있던, 죄로 인하여 영원한 형벌을 받을 우리를 속량(구속)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아들의 명분은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받은 특권이 아닙니다. 명분이라 함은 아들로서의 유업을 받을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이제 후견인이나 청지기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2] 때가 되어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유업을 받을 자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보내셨습니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6절)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5-16)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양자로 삼으셨기 때문에 성령을 양자의 영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도록 감화 감동하십니다. 아버지의 유업을 받는 보증(deposit)으로서 주신 성령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3-14)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아바 혹은 아빠”는 아람어로서 가까운 친아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입니다. 영어로 Daddy 혹은 Papa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Father 라고 부르는 것보다 훨씬 친밀한 사이의 호칭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여기 6절에 “부른다(kra,zw, cry out)”는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부르짖는 것입니다. 깊은 사랑, 열정을 가지고 부르는 것입니다. 세상 초등학문이나 율법 아래의 종으로는 도저히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친밀한 관계를 갖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 모습이 그렇기 때문에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7절)고 한 것입니다. 아들이 되어 합법적인 상속자가 되어 아버지의 유업을 잇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은혜를 깨달은 아들은 진정으로 아버지의 나라를 위하여 삽니다. 그 나라와 의를 위하여 자원하여 일합니다. 돈이나 명예 때문에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 다 내 것이 될텐데 지금 받는 돈이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땅에서 어떤 명예와 비교가 안되는 왕자와 공주 아닙니까? 아니 그런 명예야 사라질 것이 아닙니까? 아바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빠가 기뻐하기 때문에 합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합니다. [3] 양자의 영, 곧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다]

이런 놀라운 특권을, 축복을 받았는데 왜 다시 초등학문으로, 율법으로 돌아가 종노릇을 하려고 합니까? 얼마나 바보 같으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8-9절)고 꾸짖고 있습니다. 예전에 하나님 알지 못할 때에 그럴 수는 있습니다.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 악한 영들에게 종노릇하였지만, 이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이 알게 되었는데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8절에 “안다(oi=da)”와 9절의 “안다(ginw,skw)”의 헬라어 원어가 다릅니다. 전자는 그냥 지식적으로 머리로만 아는 기초지식입니다. 후자는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친밀한 아들이 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고 하신 것입니다. 믿기 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은 후에는 그 은혜를 경험하게 되어 친밀한 부자관계로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 가운데 예전에 제우스나 헤르메스와 같은 이방신들을 섬기는 종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는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의 종이나 세상사람들이 만든 신들의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것인데, 왜 다시 종으로 돌아가려고 하느냐는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주인이 바뀌었는데 옛날 주인에게로 돌아가 종살이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새 주인은 아버지입니다. 종은 주인의 눈치를 보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지 않습니다. 담대히 아버지에게 나갑니다.
그런데 아직도 유대주의자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율법의 예식법을 지키라고 강조하기 때문에 안식일, 월삭, 안식년, 희년, 혹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등 절기를 지키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미신적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11절)고 하였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땀 흘려 수고하여 복음을, 진리의 말씀을 가르쳤는데 다 헛것이 될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들의 믿음이 참 믿음이 아니어서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성령을 받지 못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닐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정말 참 믿음을 가진 후에 이 믿음을 저버리고 다시 미신의 지배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로 다시 사탄 마귀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고 하셨습니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 다시 초등학문/율법 아래 종으로 살지 말라]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바로 알고, 바로 믿어야 합니다. 믿는 우리가 지금 어떤 특권을 누리며, 어떤 복을 받고 살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부자라도 어릴 때에는 그 유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들로서의 실제 특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종과 다를 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지정한 후견인이나 청지기가 그 권리를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초등학문이나 율법 아래 있을 때에는, 참 믿음이 없을 때에는 이 세상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 마귀의 영들의 지배를 받아 종살이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때가 되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하시고 완성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값으로 죄의 종으로 살던 우리를 풀어주어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유업을 받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그 보증으로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들로서, 하나님 나라의 왕자와 공주로서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유업을 다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진리를 알게 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축복입니다. 기적입니다. 더 이상 율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됩니다. 제사와 절기를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율법의 예식법(의식법)이나 시민법은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한 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라고 주신 법입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사랑해서 주신 법입니다. 다만 도덕법은 예수님의 가르침, 신약성경의 가르침에도 있기에 우리는 삶의 기준으로 알고 살아갑니다. 사랑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기에, 아니 왕자와 공주가 되었기에 더욱 그 나라와 의를 위하여 질서를 따라, 말씀을 따라, 사랑의 법을 따라 살아 가게 되었습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쁘고 즐겁게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하나님의 자녀들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375 수요설교 채찍질하고 조롱하며 때리더라 (요 19:1-3) 한태일 목사 2024-03-28 6
1374 절기설교 잘못된 믿음 (요 12:12-16) 한태일 목사 2024-03-24 29
1373 주일설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면 (막 2:18-22) 한태일 목사 2024-03-17 84
1372 주일설교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막 2:13-17) 한태일 목사 2024-03-10 176
1371 주일설교 회막을 향하여 진을 치고 (민 2:1-2) 관리자 2024-03-04 237
1370 수요설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빙 2:12-18) 한태일 목사 2024-02-29 157
1369 주일설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막 2:1-12) 한태일 목사 2024-02-25 258
1368 주일설교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막 1:40-45) 한태일 목사 2024-02-18 375
1367 수요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빌 2:5-11) 한태일 목사 2024-02-15 153
1366 주일설교 예수님의 마음은 (막 1:29-39) 관리자 2024-02-12 270
1365 주일설교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 (막 1:21-28) 한태일 목사 2024-02-04 370
1364 수요설교 하나됨을 지켜라 (빌 2:1-4) 한태일 목사 2024-02-01 110
1363 주일설교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심 (막 1:14-20) 한태일 목사 2024-01-28 117
1362 주일설교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 (막 1:9-13) 한태일 목사 2024-01-21 147
1361 수요설교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2-30) 한태일 목사 2024-01-18 102
1360 주일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과 준비 (막 1:1-8) 한태일 목사 2024-01-14 104
12345678910,,,86